본문 중에서
영혼을 갉아먹는 듯한 참을 수 없는 외로움으로 고통스러웠던 청춘의 한대수는 방황을 거듭하다가, 마치 싯다르타가 그랬던 것처럼 울타리밖 가난의 고통을 체험한다. 그래서 행복의 나라를 연상하게 되었고, 울고 웃고 싶소 그랬다.
'행복의 나라로'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집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이 곡을 만들었을 때 그의 나이 불과 만 열여섯, 놀랍지 않은가, 열여섯에 어떻게 이런 노래를....
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번 또 느껴보자
가벼운 풀밭 위로 나를 걷게 해주세
봄과 새들의 소리 듣고 싶소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주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접어드는 초저녁
누우 공상에 들어 생각에 도취했소
벽에 작은 창가로
흘러드는 산뜻한 노는 아이들 소리
아 나는 살겠소 태양만 비친다면
밤과 하늘과 바람안에서
비와 천둥의 소리 이겨 춤을 추겠네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고개 숙인 그대여
눈을 떠 보세 귀도 또 기울이세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 찾을 수 없이 밤과 낮 구별 없이
고개 들고서 오세 손에 손을 잡고서
청춘과 유혹의 뒷장 넘기며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르러요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떠돌이였던 어린 시절, 항상 혼자라는 상황은 그를 낙원으로의 탈출을 꿈꾸게 했지만 좀처럼 실현되지 않았다. 마음의 평화도 오질 않았다. 사는 게 화가 나서 물 좀 달라고 소리친 것은 그가 스무살 대였다. '물 좀 주소'는 김민기의 '친구','아침이슬',송창식의 '고래사냥',신중현의 '미인'등과 더불어 미쳐버릴 것만 같았던 통제와 단속의 시대를 살고 있던 젊은이들에게 해방구 같은 위안을 준 명곡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 노래는 물고문을 연상한다고 중앙정보부에 의해 금지곡이 되고, 그로 말미암아 한대수는 오랫동안 가수 생활을 접기도 했다. 한대수는 불꽃같이 정열적이지만 현실을 깊이 통찰하는 진지한 이성과 아픈 자들을 향한 따뜻한 배려도 잊질 않았다. 무릇 고독을 아는 자만이 고독한 자를 치유할 수 있는 것. 그의 삶은 어쩌면 외로운 이들을 위한 증언자이자 치료사였던 것은 아닌지...
그런대 한대수의 고독과 낭만은 그가 늘 그리워하던 고향 부산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한대수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송도바닷가에서 멍게 따먹는 것'이 제일 먼저 기억난다고 했다.
..
..
부산의 바닷바람은 필연적으로 진한 외로움을 느끼게 하면서도 한편으론 귓전에다 나직이 속삭인다. '인간의 외로움은 숙명이니 징징대지마라. 술과 노래가 있어 살아갈 만하잖아.'
그래 그런거지. 그래서인가 부산은 늘 술 마시기 좋은 도시. 부산 영도다리가 보고 싶다. 부산으로 가야겠다. 나는 지금 장막이 걷힌 행복의 땅 부산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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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나의 오늘 점심메뉴는 김치전이었다. 집에서 후다닥 고추와 깻잎을 많이 넣고 부쳐왔다. 비오는 날 막걸리 한 잔과 함께 하는 김치전은 그 어떤 좋은음식과 비교할 수 없다. 다른 어느것도 필요치 않았다.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거리를 오가는 건강한 이들이 아름답게 비춰졌다. 삶의 문제들이 산재해 있지만 그래도 이러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대부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나는 때마다 풍요로워지려고 노력한다. 혼자 있다고 절대로 아무거나 먹지 않는다. 그날그날 분위기에 맞추며 음악도 조율하고 먹는것 또한 그렇다. 늘 그날이 그날이고 특별할 것 없지만 비가 오니까 그것에 초점을 맞추고 혼자 어울리려는 것이다.
막걸리는 커피잔으로 딱 한 잔이다. 음미하며 마신다. 김치전과 함께... 생각하면 웃기는 일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어떻게든 삶을 즐겨야 할 필요성이 있으니까. 나를 에워싼 삶의 복잡한 문제들은 때로 접어 서랍속에 넣어둔다. 우리가 절실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은 고작 4%라고 들었다. ....
그러고보니 비가 그쳤다. 앞 건물에 자장면집이 결국 문을 닫고 술집이 들어오나보다. 드디어 새 간판이 걸렸다. 그렇게 또 누군가는 희망을 안고 시작한다. 모처럼 빛나는 햇살이 눈부시다. 이제 막 시작하는 그들이 햇살처럼 오래토록 이거리의 풍경속에서 반짝이길 바래본다.
막걸리 연가를 다 읽었다. 비가 오는 내내 꽤 괜찮은 책읽기였다. 비와 막걸리는 얼마나 어울리는 가. 생각만으로도 유쾌해진다. 밤이 내리고 다시 비가 쏟아진다. 건너편 술집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어울리고 싶은 풍경이다. 누군가는 잔을 비우고 또 따르며 오늘의 시름을 잊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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