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중에서
3월이던가. 꽃 피기 시작할 때 덮어 두었던 책을 4월 , 잎이 돋는 철에 다시 펼쳐 읽는다. 조선 후기의 문인 이덕무의 문장이 눈에 쏙 들어온다. 그는 한겨울에 열 손가락이 모두 동상에 걸린 상태에서도 책을 읽는 일만큼은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청빈하게 살았던 터라 책은 주로 빌려서 읽었는데 그 권수가 만 권이 넘었다니, 다음과 같은 깨달음이 어디서 왔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신선이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마음이 담백하여 때에 얽매임이 없으면 도가 이미 원숙해지고, 금단金丹이 거의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니, 저 허공을 날아 오르고 껍질을 벗고 변화한다는 것은 억지로 하는 말일 뿐이다. 만약 내가 잠깐이라도 얽매임이 없다고 한다면, 이는 그 잠깐 동안 신선인 것이요. 반나절 동안 그러하다면 반나절 동안 신선이 된 것이다. 내 비록 오래도록 신선이 되어 있지는 못해도 하루 가운데 거의 서너 번씩은 신선이 되곤 한다. 대저 발 아래에서 뽀얀 붉은 먼지가 풀풀 일어나는 자는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신선이 되지 못하리라.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중에서
아들아, 대부분 사람들은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어간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 말을 전폭적으로 믿지는 마라. 세상에는 승리한 사람보다는 실패한 사람이 많고, 실패한 사람 때문에 승리한 사람이 두드러져 보이는 법이란다. 지는 꽃이 있어야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너한테 늘 실패하는 인간이 되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실패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패 앞에서 기죽지 않을 용도로 때로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들아, 네 할머니가 누구시냐? 계단을 오를 때면 몇 걸음 못 가 숨을 내쉬어야 하고, 이제는 꽃으로 따진다면 바로 지는 꽃이 아니겠느냐. 그 지는 꽃 때문에 이 아비는 아비대로 세상을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고. 또 너의 키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게 아니겠느냐.
모든 사람이 작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개성 있는 문장을 쓸 자격은 있다. 글쓰기의 수련은 책읽기에서 시작된다. 책을 통해서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능력을 키우는 일도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이는 것이다. 21세기는 표현력과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을 우선 퇴출 대상자로 지목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더 많은 독서와 사색을 축적하여 자기만의 문장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나도 올 여름에는 제발 섬에서 한번 갇히고 싶다. 그래서 스스로 섬이 좀 되어보고 싶다.
섬, 하면
가고싶지만
섬에 가면
섬을 볼 수가 없다
지워지지 않으려고
바다를 꽉 붙잡고는
섬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
밀어내느라 안간힘 쓰는 것을
보지 못한다
세상한테 이기지 못하고
너는 섬으로 가고 싶겠지
한 며칠, 하면서
짐을 꾸려 떠나고 싶겠지
혼자서 훌쩍, 하면서
섬에 한번 가봐라. 그곳에
파도소리가 섬을 지우려고 밤새 파랗게 달려드는
민박집 형광등 불빛 아래
혼자 한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봐라
삶이란 게 뭔가
삶이란 게 뭔가
너는 밤새도록 뜬눈 밝혀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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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늙어가나보다. 책을 오래동안 읽으면 침침해져온다. 안쓰던 안경도 써보지만 눈에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사 안다. 지은이의 그 말씀 , 오랫동안 새겨넣고 삶의 질을 조금씩 높여야 하겠다. "모든 사람이 작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
섬에가면 섬을 볼 수 없듯이 완전히 삶의 한 가운데에서 어찌 삶을 바라볼 수 있으리.. 한 번씩 일탈을 하여 현재의 이 알수 없는 나의 삶을 바라보아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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