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단순한 기쁨/피에르 신부/마음산책

다림영 2011. 4. 30.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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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신부:

프랑스인들 사이엣 금세기 최고의 휴머니스트라고 일컬어지는 피에르 신부는 1912년 프랑스 리융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19세에 모든 유산을 포기하고 카푸친 수도회에 들어갔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한 투사였으며, 전쟁후에는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엠마우스'라는 빈민구호 공동체를 만들어 평생을 집 없는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함으로써 '살아있는 성자'로 불리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그는 내 가족, 내 나라, 내 민족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뛰어 넘어 '타인과 공감하는 자'로서 배타적이고 편협한 인종주의로 서로 싸우는 걸 볼 수 없어 참전했다. 그는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스위스의 험준한 산을 넘기도 했고, 게슈타포에겝 ㅜㅌ잡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전쟁후 정치적 힘을 바탕으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그는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활동했지만, 곧 한계를 깨닫고는 직접 그들 속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빈민구호 활동을 펼친다. 1949년 한 사회 운동가아 함께 파리 근교에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집 없는 사람들과 부랑자, 그리고 전쟁고아들의 안식처를 마련하는데, 이것이 오늘날 전세계 44개국, 350여개의 단체가 활동하고 있는 엠마우스 운동의 시작이다.

 

그의 일생을 다룬 영화<겨울 54(un Hiver 54)는 1989년 세자르 영화상을 수상했는데 집 없는 사람들, 실업문제를 사회적인 이슈로 끌어들이는 기폭제가 되기도 하였다.

세상의 빈곤과 불평등과 불의에 맞선 그의 행동은 거침없었다.

교회와 성직자가 범한 오류를 가감히 질타하고, 고통받는 약자들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세상에 대해 분노하고 생각한 바를 행동으로 실천하였다.

2007년 1월 ,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현재 프랑스 북부 작은 마을 에스떼빌에 잠들어 있다.

 

 

본문 중에서

 

희망은 우리 스스로 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생겨난다.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느끼지 않는 사람에게 '구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곤경에 처했다는 의식이 있을 때에만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다. 이러한 의식은 두 가지 국면에서 생겨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우선 우리는 열망들을 품는다. 알고자 하는 열망, 사랑하고자 하는 열망, 주고자 하는 열망, 받고자 하는 열망, 열광적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열망,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고자 하는 열망, 이 열망들을 이루지 못한 채 몇십년 동안이나 품고만 지냈다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실패했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럴 때, 부정적 의미의 환멸로부터 구원이 필요하다. 우리가 환상과 더불어 열광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현실과 직면하지 않으려고 환상 속에 안주할 수도 있다. 불행히도 이는 자주 있는 일이다.

 

..

 

명석하게 보지 못할 때 인간은 자기자신조차도 속이고, 만족스럽다는 환상이나 또는 잘못된 방식으로도 만족에 이를 수 있으리라는 환상 속에서 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만족을 느끼는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겠는가?

 

 

 

삶이란 지고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거대한 작업장과도 같다. 희망이란 우리 안에서 빈 자리로 호소되는 것 모두를 하느님께서 채워줄 것임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최선을 다해 사랑을 베풀려고 애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성프란체스코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나누어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국가의 원수이건, 회사의 우두머리이건, 또는 노동조합 책임자이건, 교사이건, 매일 저녁 '나의 능력과 특권과 재능과 학식을 가지고 약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위해 무얼 했는가?'라고 자문했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렇게 자문하는자가 마음이 가난한 자인 것이다.

 

 

 

사랑은 타인의 자유에 대한 절대적 존중을 전제로 한다. 사랑하도록 강요받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거기에 내 믿음의 세번째 확신이 있다. 인간에게는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수십억 개의 은하계로 구성된 거대한 이 우주에서 우리가 알기로 인간만이 자유를 부여받은 유일한 피조물이다.

 

거대한 우주에 비춰볼 때 너무도 미미한 존재일지라도 인간은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인간이 자유를 가진 존재이며, 이 자유가 그 로 하여금 사랑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에 인간의 존엄성이 있다.

 

사람들이 내게 "왜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는 걸까요?" 라고 물으면 나는 그저 이렇게 대답한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이지요" 이 우주 전체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어딘가에 자유를 가진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행성에 사는 미미한 존재에 불과한 인간은 우주에 짓눌려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파스칼이 말한 것처럼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사랑하면서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우주보다 위대하다. 사랑이 있기 위해서는 대양과 빙하와 별만으로는 족하지 ㅇ낳으며 자유로운 존재들이 있어야만 한다 . 인간의 자유는 때때로 두려움을 줄 수 있을지언정 소멸될 수는 없다. 다행히도 우리에겐 은총이라고 부르는 하느님의 도움이 있다.

 

 

 

삶에 대해 몽상하지 말자. 삶을 만들어가자. 공허한 말에 만족하지 말고 사랑하자. 그리하여 시간의 어둠에서 빠져나갈 때, 모든 사랑의 원천에 다가서는 우리의 마음은 타는 듯 뜨거우리라.

 

 

누군가 우리에게 잘못을 했을 때에는 항상 이렇게 자문해보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지 않을까?"

역으로 우리가 잘못을 저질러 비난받을 때, 그리고 우리의 잘못이나 서투름이나 실수로 인해 상처받았을 이들에게 용서를 구하기로 결심했을 때는 실제로 우리가 잘못햇다고 여긴 것보다 훨씬 많은 잘못들이 우리에게 부과되기도 한다.그럴 때는 우리가 범한 죄에 대해 솔직히 용서를 구할 줄 아는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 용서를 구하는 일 앞에서 절대로 물러서서는 안된다. 그것은 인간적 열정들이 억제되지 않고 폭발할 때 그것을 진정시키고. 한층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일탈행동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옮긴이의 말

 

강자들이 약자들을 짓밟는걸 두고보거나 고통받는 약자들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세상의 저열함에 분개하는 그는 '더불어 살기'를 외친다. 사르트르에게 '타인'이 지옥이라면 피에르 신부에게는 '타인 없는 나'야 말로 지옥이다. 타인 없이 나 혼자 행복할 것인가 타인과 더불어 행복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가 날마다 내려야 할 근본적인 선택이라고 그는 말한다.

안락한 삶을 버리고 고통받는 약자들 편에 서서 넝마를 줍는 피에르 신부. 그의 삶은 우리가 얼마나 부정과 부패와 불의와 불평등에 무감각해져 있으며, 굶주리는 이웃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을 가졌는지를 일깨운다.

<백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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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기쁨...

단순한 기쁨...

단순한 기쁨이 가장 귀한 기쁨일 것이다. 큰 것을 향하다가 주변 언제든 주울수 있는 것들을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것들은 귀하지 않다고 보통 생각조차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를...

가족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학교가는 아이들을 배웅하고 이웃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오랜만이라도 친구와 밥한끼 나누는 일 , 그리고 작고 작은 일터, 그곳에서 얻어지는 소중한 재물, 그리고 식탁의 저녁 등불.. 혼자서 차를 타고 책을 보고 가게문을 열고 거리를 구경하고 지나가는 노인에게 인사를 하는 ...

신부님은 이런것을 얘기하신 것은 아니지만 나는 <단순한 기쁨>이라는 책을 처음 만났을 때 그런 주변사소한 모든 것에게 사랑을 느끼며 귀하게 대접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밀려들어왔다.

 

말일이어서 이런저런 셈을 해보았다. 도무지 맞지 않은 계산이다. 그래도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다. 밥도 먹고 빵도 먹고 어쩌다 한번 고기도 먹고 사람들도 만나고 멋도 부려보고...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있을까 . 아는이가 문득 어느이의 연봉을 얘기했다. .. 나도 옛날에 그랬는데..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기뻐해 주지만 속은 아득하기만 하다. 주변사람들과의 거리가 문득 느껴졌다. 그러나 난 오늘 이렇게 건강한 삶을 일구고 있다. 아주 작고 단순한 것에 중심을두고 기쁨을 한껏 느끼며 집에 전화를 한다. 그가 비도 오는데 김치부침개라도 부쳐 막걸리 한사발 나누자고 일찍 오란다.

 

문득 일정한 시일이면 찾아오는 한 다리없는 장애우가 생각났다. 그에게 너무나 작은금액을 건네고 있다. 그러한 금액에도 감사하며 휠체어에서 고개가 땅에 닿을듯이 인사를 내게 한다.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5월부터는  마음을 조금 더 실어야 하리라. 멀리 찾아가는 도움은 실행하지 못해도 내게 오는 이들에게 그 손을 못본척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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