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살아 있는 날의 선택/유호정

다림영 2010. 12. 5.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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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정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 동대학 철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음. 미국케이스 웨스턴리저브 대학 생명윤리학과 연수. 중등교원, 서울대 강사, 연세의대 의료윤리 담당 펠로우 등 역임.

철학과 윤리학 주제의 많은 논문. <의료문제에 대한 윤리와 법의 통합적 접근:의료법윤리학서설><공저><고통에게 따지다>등의 책을 썼습니다. 죽음 문제에 관심을 갖고 <떠남 혹은 없어짐-죽음의 철학적 의미>라는 책을 출간. '안락사''치료중단','죽음의 기준','임신중절','자살','사형'등에 관한다수의 논문과 글을 썼음.

 

본문 중에서

 

구하되 집착하지 않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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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신은 초연하게. 남을 대할 적에는 화기애애하게. 일이 없을 때는 물이 맑듯이. 일이 있을 때는 과단성 있게. 뜻을 얻었어도 담담하게. 뜻을 잃었어도 태연하게.

<경주 최부자집에서 내려오는 가훈>

이렇듯 구하되 집착하지 않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외적으로 무엇을 성취했는가와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 않고 담담하게 인정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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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뽁쿠리 지<꼴깍사寺>'라는 절이 있다고 합니다. 연로한 할머니들이 그 절에 가서 "꼴깍 죽는'소원을 성취하게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는 빠르고 편안한 죽음에 대한 소망을 비는 절인 것이죠.

그렇다면 무엇이 편안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가능하게 해 줄까요. 인생의 다른 시기에 운수가 적지 않은 작용을 하듯이 죽음의 시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죽음에 이르도록 만든 병이나 부상이 우연히 어떤 종류의 것인가에 따라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을 가능성이 크게 달라집니다. 그래서 죽음 복'이라는 말도 나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지 운수가 아니라 각자의 노력에 의해서도 죽음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중요합니다. 가령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 분노하고 절망하기보다는 담담히 인정하고 지금까지의 삶에 감사하는 태도가 품위 있는 죽음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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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포기한 상태는 '절망'일 수도 있지만 '담담한 달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 많은 말기 환자들은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을 때 심적인 괴로움과 절망에 빠지기보다 오히려 마음의 평화를 되찾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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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한다고 해서 이것이 더 이상 아무 희망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실현 가능성이 훨씬 높은 다른 희망들을 찾아내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으니까요.

그런 희망으로 먼저 삶의 완성에 대한 희망을 들 수 있습니다. 떤 일이든 끝이 없다면 완성도 불가능합니다. 화가가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붓을 놓아야 하듯이 삶 역시 죽음에 의해 비로소 완성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좀 더 훌륭한 것으로 완성시키겠다는 희망으로, 마치 예술가가 작품 마무리에 온 힘을 쏟듯이 삶의 남은 시간을 최선을 다하며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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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련해서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자기의 뜻과 의사를 분명히 밝혀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유언장과 함께 자기가 원하는 죽음의 방식과 의료조치에 대해 미리 선택해 두는 문서들을 제시했습니다. 서구에서는 이미 법적으로 병원에서 이런 문서들을 작성할 기회를 주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러지 못하니 우리 스스로라도 마련해 두어야지요.

...

 

죽음은 우리 삶을 완성짓는 매듭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걸이 줄을 뚝 끊어 버리는 칼처럼 평생 노력하여 꿰어 둔 인생의 보석들을 이리저리 흩어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죽음 문제에 대한 대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어차피 죽을 텐데 죽음에 대해 무슨대책이나 계획이 필요할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것은 어차피 내려오기는 마찬가지이니까 그냥 굴러서 산을 내려오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죽음의 정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쉽지만 억울할 것 없는 일

.고통 대신 편안할 수 있는 일

.슬프지만 감사한 일

.두렵지만 설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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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잊고 있던 죽음의 모습과 그 이후의 가족들의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조만간 매일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기록하는  노트에  일종의 유언을 기록해야 하겠다. 날짜와 서명또한 적어야 한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쓰게 해야 하겠다 . 호흡기에 의지해야만 생을 유지할 수 있다면 더이상의 삶의 유지는 의미가 없다.  그러한 사실에 대해서도 언급을 해야 한다.  훗날 아니 언제라도 나 때문에 가족이 그나마 지니고 있던 모든 것을 잃고 비극으로 떨어지는 일은 막아야 할 것이다. 언젠가 그러한 문제로 가족과 병원의 법적공방에  대한 이야기가 세간에 떠돌았다.끝이 보이지 않는 병원에서의 죽음같은 삶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삶은 자신의 의지대로 모든 것을 행 할 수 있을때 그 의미가 있으며 아름다울 것이다.

 

이 책에서는 많은 실례를 들으며 건강하게 살고 있는 현재 고귀한 삶의 끝을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풀어 놓았다.  정신이 온전할 때 아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우리에게 펼쳐질 삶을 준비하듯 죽음도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죽음은 우리가 살고 있는 것처럼 누구에게도 찾아오는 것이다. 그것이 언제일지 우리는 아무도 모르며 오늘도 늘 살아 있을 것처럼 죽음을 외면하고 있다.

 

친구 남편이 불시에 하늘로 가게 되었다. 가족모두가 교통사고를 당했고 남편만이 죽게 되었는데 그의 남편은 죽음을 준비한 사람 같았다. 그에 대한 그 어떠한 문제도 없었다고 했다. 하물며 책상서랍조차 너무나 단정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고 스스로 보험에도 들어놓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해 놓았던 것이다.   오랫동안 슬픔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웠지만 남편의 사전의 생활의식들이 가족에게 가족의 곁을 떠나서도 훌륭한 가장의 모습을 간직하게 해 주었다.  또 한 친구의 남편은 남은 가족의 모든 것을 앗아가버렸다. 나의 친구는 맨몸으로 길바닥에 나앉아야 했다. 그는 아무런 준비없이 죽음을 무시했고 외면했으며 가족들은 고스란히 떠안고 암흑에서 헤매야 했다.

 

많은 쓸쓸한 죽음들을 본다. 의외로 불시에 생명을 잃는 이들이 많다.  젊을때부터 무언가 나의 꿈을 위해 도전하고 계획하는 것처럼,노후를 대비하는 것처럼 죽음도 대비해야 한다.서류상으로 나의 생각을 적어 차후 불행한 일이 나도 모르는 사이 불어닥쳤을때를 위해 가족에게 힘이 되어야 한다. 현명한 부모의 모습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지은이의 말씀처럼 그림을 완성 하듯 삶도 죽음으로 아름다운 완성을 맺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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