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셰익스피어 배케이션/김경/웅진지식하우스

다림영 2010. 12. 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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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제주로 이십여일 여행을 떠났던 동생이 돌아왔다.

녀석은 사진을 찍는다. 그것을 업으로 하고 있다. 벌이는 시원치않지만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머리는 질끈묶고 정체불명의 옷을 잔뜩 끼워입고 그렇게 떠났는데 무척 재미있었나보다.

특별한 사람들에 대한얘기가 끝날 줄 몰랐다.

그곳에서 만난사람중에 제일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제누이인 나와 같단다. 그녀는 일본에서 20년을 살았는데 일본을 다 돌고 제주올렛길을 걷는다고 했다.  며칠 많은 얘길 나누었는지 연락처도 알아두었다고 한다.

 

동생은 제주를 그렇게 걸어 그림같은 풍경 몇 천 장을  카메라에 담고 추자도로 진도로 해서 올라왔다.

저 하고 싶은데로 여행을 하며 풍경과 사물을 카메라에 담고 인터넷으로 무언가를 하는것이  그녀석의 직업이다.  참 베짱좋다. 장가도 가지 않고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에 결혼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친정엄마만  속을 끓이고 나는 그저 부러워만 한다.

 

동생말에 의하면 길을 나서보면 자기 같은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늘 똑 같은 일 속에 다람쥐 체바퀴를 돌듯 그렇게 사는 사람들만 보아왔는데 녀석은 또 제 세상에서 그런사람만 보이나 보다. 추자도인가 어디에선가에서는 그곳으로 여행왔다가 버스를 운전하며 한동안  머무는  어떤 특별한 사람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정말근사하게 사는 사람들 얘기에 솔깃해져서 나는 또 언제 그렇게 떠날 수 있을까 하고 창밖만 내다보며 되뇌였다.

 

언젠가는 떠나는 것만이 대수인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날 어디에 있든 그곳에 충실하고 몰입하는 것이 '도'임을 ... 하는 스님의 얘기를 읽고 나는 떠나는 마음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여행은 가슴에 심어져 있는 푸른 한 그루의 나무이다.

 

 

prologue중에서

 

한때 나의 보스가 세종이나 빅토리아 여왕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양에서 가장 현명한 임금 세종은 사가독서賜暇讀書라 하여 젊은 선비들에게 긴 휴가를 주어 집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게 했고, 서양에서 가장 통큰 여자 빅토리아 여왕은 셰익스피어 휴가Shakespeare Vacation라 하여 공직자들에게 3년에 한 번 꼴로 한 달 남짓의 유급휴가를 주었다고 한다. 장기 독서 휴가라니, 이 얼마나 멋진 제도인가? 하지만 우리의 보스가 독서를 위한 군고사직이라면 모를까 독서휴가를 허락할 턱이 없다.

 

길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여름휴가를 독서휴가로 용도 변경하는 거다. 생각해보면 아쉬울 것도 없다. 피서, 그러니까 더위를 피해 자리를 옮긴답시고 산과 강을 찾아가는 길은 얼마나 지루하고 고생스러운가? 천신 만고 끝에 목적지에 도착해봤자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인파 속에서 달리 할일도 없다. 그 와중에 끔찍한 도로 정체에 시달려야 하고, 성수기 바가지요금에 분개해야 하고, 소변을 보기 위해 수영복을 입은 불편한 차림으로 30분씩 줄을 서야 한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또 어떤가? 내야 할 돈이 전달보다 두 배쯤 많아진 신용카드 고지서와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업무가 나에게 종용할 뿐이다.

..

..인간이란 자기가 정해놓은 테두리 안에서 그럭저럭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 모두 책상이나 장식장 위에 놓여 있는 오브제가 아닌지라 가끔 그 테두리를 박차고 나가서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누군가는 여행을 하고 누군가는 책을 읽는다.

..

 

이상한 일이지만 제아무리 전력을 다해 공들여 일군 삶도 떨어진 철골이라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우연에 의해 산산조각날 수 있다는 사실에 직면한 그 사내의 이야기를 읽고 나는 이제 떠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여행을 하고 싶었고 한가롭게 책도 읽고 싶엇다. 10년 넘게 쉼없이 달려왔으니 재충전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 내가 가진 걸 다 걸고라도, 그리하여 회사를 그만둘 작정이었으나 , 무슨 상사 복이 그리 많은지 너그러운 나의 보스의 은혜로운 처사로 1년 무급 휴가를 받았다. 이른바, 셰익스피어 배케이션, 두드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Blessing You!

 

본문중에서

 

 

 

부라노에서는 이미 16세기에 결정된 색의 배열이 아직까지도 유지되고 있었으며, 자신의 집을 다시 칠하려 할 때에는 시청에 찾아가 지정된 색 중 하나를 골라 칠해야만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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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다. 책속에는 조금더 선명하다.  벽돌색옆에는 황토색 황토색 옆에는 녹두색 그 옆에는 ..허름한 건물이지만 그림하는 사람이 색을 칠한 것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우리나라의  엄청나게 크고 혐오스러운 간판은 때마다 안타까움을 안겨준다... 언제쯤 작고 귀하고 예술적인 간판과 건물들이 서로 조화로워 눈길을 끌게 될지...

 

 

본문중에서

 

한국에서의 삶은 이미 모든 게 결정 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더 좋은 아파트를 차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삶, 그래서 좋거나 싫거나 돈을 벌 목적으로 모두 아파트에 사는 삶. 그 삭막한 콘크리트 도시에서 평생 치열하게 노동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너무나 뻔한 인생. 그 특이한 '아파트 공화국'에서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게 나의 새로운 인생 행로다.<얼마나 특이했으면 발레리 줄레조라는 프랑스 지리학자가 10년동안  '한국의 아파트'를 연구해서 박사논문까지 썼을까?>

 

이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는 내가 종종 서울에서는 결코 이룰 수 없을 거라고 절망했던 꿈같은 시간들, 일상들을 보냈다. 새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고, 커다라 아치형의 나무창문을 열면 그 신선한 계절의 기운에 내 몸의 모든 숨구멍들이 희열한다. 내가 먹고 마시고 잠드는 공간은 오래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고 집 밖에는 천지가 출렁이는 초록의 기쁨으로 넘실거린다. 인터넷이 안 되는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나는 아침이면 그날 지필 장작을 패고 그날 마실 물을 뜨러 간다. 때때로 식탁에 놓을 꽃을 꺾기 위해 들판을 헤매고 밤이면 촛불을 준비한다 .

그리고 휴일엔 옆 동네 마을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기 위해 걸어서 산을 넘고 양말을 벗은 채 강을 건넜다. 그리고 너무나 단순하지만 너무 황홀한 , 내 평생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시골 레스토랑의 그 라비올리의 순수한 깊은 맛에 감동했다. 아, 산다는 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나는 서울에서 감히 상상조차 못했다.

 

 

세익스피어나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살았을 것 같은 이 사랑스러운 타워이 한 달 렌트비가 겨우 600유로 안팎이다. 게다가 가구와 식기가 다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살 필요가 없다. 그보다 더 좋은 건 그 어떤 것도 소유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내가 소유한 것들이 내 삶을 결정짓는다. 무서운 일이다. 나는 그것에 지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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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나 추자도 도심에서 벗어나 산골로 들어가면 빈집이 많고 그 집을 일년 살려면 이백만원정도면 빌릴 수 있다고 한다.도심과 가깝거나 좋은 집은 조금 더 비싸다고  동생이 알려주었다.

막연한 시골에 대한 꿈을 지니고 있는 나는 솔깃해 하지만 당장은 떠날 수 없는 형편이다. 가끔 텔레비젼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불현듯 시골행을 결심하고 아름다운 흙과의 만남을 이루며 사는 사람들을 본다.  이웃조차 별반 없는 캄캄한 밤을 지닌 그곳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을 터득한 사람들을 만날때면 늘 입을 있는데로 벌리며 그들의 삶을 나는 동경한다.  그들은 누구나 마음을 비우면 된다고 웃으며 이야기 하지만  도시의 삶을 버리기란 우리의 삶에서 하늘에 별따기일 것이다.

 

나는 내가 꿈꾸던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었고 각별한 삶에 발을 들여놓을 수도 있었다.  돌아보니 언제나  낯선 삶의 용기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뜨거운 젊음을 재산으로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어느곳에 서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꿈을 쟁취한 이들은 모험을 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각별한 삶에 과감히 자신을 던진다. 이제와서도 나는 어떤 삶을 동경하면서 생각만으로 가득차 있고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이런핑계 저런 이유로 지금을 합리화 시키며 모험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혼자 길을 떠나는 것 또한 작은 용기가 필요하다. 언제나 그 자리 그 주변에서 맴돌며 새로운 풍경을 그리워하면서도 쉽게 나서지 못한다. 언젠가 제주도 올렛길에 오르면서 혼자 비행기를 타야 했던 나는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던지... 친구가 깔아놓은 멍석에도 간신히 올랐던 것이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을 읽으니 주렁주렁 매달린 욕심의 가지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조금 가지고도 작은것으로도 행복을 일구고 있었다.

텔레비젼을 틀어놓고 있었다. <산너머 남촌에는>이라는 연속극이었는데 그곳에서 이런말이 흘러나왔다.

"안 해본거 해 보는 것이 사는 맛 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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