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배우다

섬마을 선생님

다림영 2010. 12. 1.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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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월 10일 수요일 /조선일보

유재인 /흑산초등학교 東분교장 부장교사

 

 

내가 신안의 흑산초등학교 소속분교장으로 간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벌써 분교장分敎場이 됐다니 축하한다"고 했다. 그때마다 웃으며 "어른 장<長>이 아니고 마당 장<場>이에요" 라며 일일이 설명을 해야 했다. 신안은 우리나라 섬의 3분의 1인 1004개의 섬이 있어 '천사의 섬'이라고 하고, 흑산초등학교만도 작은 배움터인 분교장이 7개나 된다.

 

 

목포에서 쾌속선으로 2시간 걸려 도착한 흑산도에서 다시 작은 배로 20여분 가니 대둔섬이란 작은 섬이 나왔다. 대둔도에는 수 <천>리 ,도목리, 오<정>리 세 마을이 있다. 오리에서 내가 근무할 흑산동분교장이 있는 수리까지 20여분이나 걸렸다. 그리 작은 섬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섬길이 산으로 나있고 깎아지르는 듯한 해변 언덕 풍경은 정말 반할 만했다.

 

 

흑산동 분교는 전교생이 11명으로 유치운 아이들가지 합쳐 모두 20명이다. 내가 부임한 첫날 아이들은 나에게 말을 걸지도 못하고 내 주변만 맴돌앗다. '섬마을 아이들은 어떻게 공부하고 있을까. 축구팀조차 만들 수 없을 정도로 학생 수가 적은 데 체육시간은 어떻게 하나, 가정환경은 어떨까.' 섬에서 만난 아이들과의 첫 대면은 도시에서 경험 할 수 없었던 서로 간의 호기심이었다.

 

 

우리 반에는 5학년이 2명, 6학년이 3명이다. 이렇게 한 교사가 두 개의 다른 학년을 동시에 가르치는 것을 '복식수업'이라고 부른다. 말로만 듣던 복식수업을 하게 되었을 때 걱정도 많았다. 한 학년에 매달리면 다른 학년의 아이들에게 충실하지 못하고, 도시처럼 한꺼번에 가르치자니 수준이 달라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선택한 것이 개별화 교육이었다. 우리반의 경우, 다섯 아이들의 수준이 각기 다르다 보니 과학 등 과목에 따라 한 두명씩 짝짓기도 하고 수학은 다섯 명을 각각 따로 가르친다.

 

 

섬엔 100가구가 있지만 학부모는 고작 8가구이다. 젊은 사람들은 보기 힘들어 1학년은 학생이 아예없다. 이 섬엔 페루에서 시집온 이도 있고 베트남 3명, 중국에서 온 교포도 3명이 된다. 학교 선생님이라며 갓 잡은 성게 알을 입에 넣어주기도 하고, 손질하던 생선을 불쑥 내밀며 "이거 지져 먹으면 맛있어요. 갖다 드세요"라고 건네주기도 한다.도시에서 느껴보지 못한 정이 흠뻑 느껴진다.

 

 

대 운동회날은 학생들보다 어른들이 더 많아 언제나 시끌벅적하다. 주민 대부분이 이 학교 졸업생들이어서 모교를 찾아와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분교가 아니라 흑산도 동국민학교여서 400여명이나 됐는데..."라며 아쉬워하면서 함께 웃고 한바탕 잔치를 벌인다.

 

 

자연을 벗삼아 지내는 아이들의 눈에는 바닷가의 많은 생물들이 탐구 대상이다. 얼마전 TV프로그램인 1박2일에 소개되었던 '배말'이라고 불리는 삿갓모양의 조개, '장아'라 불리는 작은 새우, 가두리 양식장에서 기르는 우럭과 전복등....,이런 여러 해산물에 대해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 아이들은 커서 무엇이 될까. 나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도와주어야 할까.

나는 아이들에게 과학원리가 포함된 조작활동과 로봇 만들기를 가르치며, 발명에 대한 관심을 심어주려고 했다. 아이들의 열정은 내가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 호우주의보가 내릴 정도로 많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날에도, 밤늦게까지 아이들은 작품을 뜯었다 붙였다 하며 열심히 만들었다. 우리 반 아이 5명은 모두 전남학생발명품경진대회에 작품을 내 두 명이 은상과 동상을 받았다. 아이들이 무척이나 대견스러웠다.

 

 

여수에서 열린 전남과학축전에서도 상을 받아 밤에 아이들과 목욕탕에 함께 갔다. "선생님, 얘는 이런 목욕탕을 처음 봤대요.""얘는 여수도 처음 왔대요"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모습을 보고, 내가 이곳에 와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에 피로가 일순간에 사라졌다.

 

 

얼마전에는 유치원 아이들을 합쳐 13명의 학생을 데리고 여수 엑스포 건설현장과 중국의 상하이 엑스포를 다녀왔다. 아이들은 엑스포를 가기전과 사뭇 달라졌다. 처음엔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이곳저곳 두리번 거리며 힘들다고 투정부리던 아이들이 "우리나라는 전기차를 언제부터 팔아요?" 라며 미래사회의 변화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요리사, 선생님, 경찰관 같은 소박한 꿈을 꾸던 아이들이 세계적인 금융전문가나 사회에 공헌할 기업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수십 번의 설명이나 소개보다 한 번의 체험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꼈다.

 

 

내가 이 학교에 발령받은 올 초 우리 가족들도 모두 이곳으로 이사왔다. 교사인 집사람은 인심 좋고 경치가 멋진 이곳을 맘에 들어 했고, 섬에서 함께 근무하고 싶어했다.

내 아이들도 학교 운동장과 바닷가를 놀이터로 생각하고, 낮에 잡은 공벌레와 게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곤 한다. . 사교육에서 벗어난 행복한 생활을 여기 아니면 어디서 해 볼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가 된 지 벌써 1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학교를 옮길 때마다 '더 잘 할 수 었을 텐데', '더 잘 했어야 했는데'라는 아쉬움이 늘 남는다. 별처럼 투명하고 맑은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 소박하고 때묻지 않은 섬마을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희망을 주고 있는 것일까. 오늘도 밤늦도록 교실 불을 환히 밝히며 아이들을 위해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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