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배우다

구안능지<具眼能知>

다림영 2010. 12. 1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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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0일 금요일

정민의 世設新語

 

요네하라 마리의 '교양노트'<마음산책출판사>에 '사소해 보이는 것의 힘' 이란 글이 있다. 건축가를 꿈꾸던 젊은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마을을 설계하고 싶었다. 그는 오랜 시간 고치고 다듬어 도면을 완성했다. 흡족했다. 목수를 찾아가 자랑스레 그 설계도를 내밀었다. 한참을 보던 늙은 목수가 조용히 말했다.

 

 "이건 기쁨과 행복의 마을이 아니라 슬픔과 불행의 마을이로군." "그럴리가요?" "확실히 애써서 만든 설계도일세. 도로와 건물의 위치, 소품의 배치도 완벽해. 하지만 자네가 간과한 게 있네. 그림자일세. 건물에 그림자가 어떻게 지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군. 햇빛을 받지 못하는 마을은 어두침침한 회색 마을이 되고 마네.사람들은 우울해지지. 젊은이, 명심하게나. 그림자를 얕봐선 안 되네. 그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닐세."

 

 

어떤 사람이 중국에서 그림을 사왔다. 낙락장송 아래 한 고사<高士.뜻 높은 선비>가 고개를 들고 소나무를 올려다보는 그림이었다. 솜씨가 기막혔다. 안견<安堅>이 보고 말했다. "고개를 들면 목덜미에 주름이 생겨야 하는데, 화가가 그것을 놓쳤다." 그 후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그림이 되었다.

 

신묘한 필치로 일컬어진 또 다른 그림이 있었다. 노인이 손주를 안고 밥을 먹이는 모습이었다. 성종께서 보시고 이렇게 말했다.
"좋긴 하다만, 아이에게 밥을 떠먹일 때는 저도 몰래 자기 입이 벌어지는 법인데, 노인은 입을 벌어지는법인데, 노인은 입을 꽉 다물고 있으니 화법을 크게 잃었다. "

 

그 후로는 버린 그림이 되었다. 유몽인<柳夢寅.1559~1623>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나온다. 그는 이렇게 부연한다. "그림이나 문장도 다를 게 없다. 한번 본의를 잃으면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워도 식자가 취하지않는다. 안목 갖춘자라야 이를 능히 알 수가 있다.<具眼者能知之>"

 

의미는 늘 사소한 데 숨어 있다. 기교는 손의 일이나, 여기에 마음이 실리지 않으면 버린 물건이 되고 만다. 가짜일수록 그럴싸하다. 진짜는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하는 법이 없다. 덤덤하고 질박하다. 꽉 다문 입에 손주에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고픈 할아버지의 마음이 달아나 버렸다. 목뒤의 주름을 놓치는 바람에 소나무의 맑은 기상을 우러르는 선비의 마음이 흩어졌다.

젊은이! 명심하게. 사소해 보이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말게. 그림자를 얕봐선 안 되네.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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