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중에서
부족해도 넉넉하다/김정국
서울에서 자네가 쉬지 않고 집을 짓는다는 소문을 들었다네. 남들이 전하는 말이 정녕 사실이라면 그런 짓을 그만두고 조용히 살면서 하늘의 듯에 다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70세를 산다면 정말 장수했다고 한다네. 나와 자네가 그렇게 장수하는 복을 누린다고 해도 남아 있는 세월이라야 겨우 10여년에 지나지 ㅇ낳네. 무엇 대문에 노심초사하며 말 많은 자들의 구설수에 오를 것을 사서 한단 말인가?
내 이야기를 함세. 나는 20년을 가난하게 살면서 집 몇 칸 장만하고 논밭 몇 이랑 경작하고, 겨울에는 솜옷. 여름에는 베옷 몇 벌을 갖고 있네. 잠자리에 누우면 남은 공간이 있고, 옷을 입고도 남은 옷이 있으며, 주발 바닥에는 먹다 남은 밥이 있다네. 이 여러 가지 남은 것을 자산으로 삼아 한세상을 으스대며 거리낌 없이 지낸다네.
천 칸 되는 고대광실 집에다 십만 섬의 이밥을 먹고, 비단옷 백벌을 갖고 있다 해도 그따위 물건을 내게는 썩은 쥐나 다를 바 없네. 호쾌하게 이 한 몸둥어리를 땅에 붙이고 사는 데 넉넉하기만 하네.
듣자니 자네는 옷과 음식과 집이 나보다 백배나 호사스럽다고 하던데 어째서 조금도 그칠 줄 모르고 쓸데 없는 물건을 모으는가?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있기는 하네. 책 한 시렁, 거문고 한 벌, 벗 한 사람, 신 한 켤레,잠을 청할 베개 하나, 바람 통하는 창 하나, 햇볕 조일 툇마루 하나, 차 달일 화로 한 개, 늙은 몸 부축할 지팡이 한 개, 봄 경치 즐길 나귀 한 마리가 그것이네. 이 열 가지 물건이 많기는 하지만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되네. 늙은 날을 보내는 데 이 밖에 구할 게 뭐가 있겠나.
세상사 분주하고 고단하게 꾸려가는 중에 저 산수 간에서 열 가지 물건과 보낼 재미를 생각하기만 하면 어느새 돌아가고픈 기분에 몸이 훨훨 날 듯하네. 그러나 몸을 빼내어 돌아갈 방법이 없으니 어쩌면 좋겠나. 벗이여! 이 점을 잘 헤아리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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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비의 말씀을 가슴에 새긴다.
영화로움을 탐내지 않으며 맑은 영혼으로 은은하게 늙어갈 수 있기를 ...
그런 자존심으로 세상을 관조할 수 있게 되기를....
화기<和氣>가 모이는 문
유도원
집화문<集和門>은 남간<南間>초가집의 중간에 있는 작은 문이다. 높이는 허리를 구부려야 들어가고, 넓이는 쟁반을 받들고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이며, 문설주는 자귀로 다듬지 않아 거칠다. 이렇듯이 보잘 것없고 거친데도 불구하고 멋진 이름을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으로는 기쁨을 표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계를 하기 위해서다.
나는 아들 셋을 두었다. 며느리를 얻엇는데 모두 유순하고 어질어서 동서들 사이가 가깝고 다정했다. 비록 죽을 때까지 함께 산다해도 틀림없이 다투는 말이 없으리라. 단지 집은 좁고 식구는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분가시킬 계획을 세웠다. 일찍이 아내와 상의하여 10여칸 집을 지어서 둘째와 셋째 아들 며느리를 함께 살도록 했다.
계획이 다 완성되었는데 아내가 불행히도 세상을 떴다. 나 홀로 고심하고 노력하여 겨우 집을 세웠다.
동쪽 다섯 칸은 둘째의 집으로 하고 서쪽 네 칸은 막내의 집으로 했다. 앞 두칸은 마구간 두 채를 만들었고, 마구간 위에는 머슴방을 만들었다. 동서의 중간에 작은 문을 만들었는데 이 문이 바로 집화문이다. 나는 두 아들 며느리가 이 문을 오가면서 화기애애하게 서로 즐겁게 지내면서 끝가지 화기<和氣>를 잃지 않기를 바랐다.
화기를 잃지 않는 방법은 다른 것이 없다. 병이 생겼을 때 서로 구완하고, 재물이 없을 때 서로가 도와가며, 가난하고 부유함이 같지 않아도 상대를 부러워하지 않고, 재능이 각자 달라도 서로 시기하지 않는 데 있다. 이렇게 지낸다면 화목하지 못할 일이 있으랴? 이것이 집화문이라 이름 지은 까닭이다.
집을 나누는 날 내가 보니 며느리 셋이 그릇을 서로 양보하느라 서너 번씩 오가기를 그치지 않았다. 풍속이 타락한 세상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어찌 이문에 함부로 이런 이름을 붙였겠는가?
그러나 옛말에 이르기를, "처음이 좋지 않은 사람은 없으나 끝까지 좋은 사람은 드물다"고 했다. 그러니 처음이 좋다는 이유로 끝까지 잘되리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아들과 며느리들은 이 점을 명심해서 노력해야 하리라. 그래서 이 기문을 지어 문 위에 걸어둔다. 기축년 늦여름 하순에 병든 남간옹<南澗翁>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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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간사한 동물인지라 모를일이다. 처음과 끝이 같기는 하늘에 별따기이다. 아마도 어느누구든 그러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고 인생말미까지 유유히 늙어갔다면 성공한 삶이다.
형제들이 언제까지 화목하게 우애를 지키며 한 세상 다정한 삶을 이어가게 되는 것이 부모의 가장 큰 기쁨일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가정을 꾸려 가다보면 이웃보다 먼 것이 형제이기도 하다.
옛선인들을 책으로나마 자주 접해 마음자세를 닮으려 노력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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