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3인행/김정길/돋을새김

다림영 2010. 11. 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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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지은이가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본 성공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언제나 그렇듯 높은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다른이들보다 몇배의 노력과 뼈를깎는 고통으로 그 자리에 오른다.

모든 사람은 똑 같은 축복속에 태어나도 빛나는 위치에 서게 되는 사람은 극히 일부분이다. 그것은 웬만한 노력으로는 이루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고 있었거나 몰랐던 훌륭한 이들의 이야기를 옛이야기처럼 편안히 넘기며 지은이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책도 언젠가 읽은 책인데 난 또 읽으며 처음 읽는 이야기처럼 각별한 감동을 받는다.

 

 

'삼인행<三人行>...세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좋은 것은 본 받고 나쁜것은  살펴 스스로 고쳐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모든 이들은 나의 스승이겠다. 텔레비젼에 나오는  이들에게서도 , 가끔 인사를 하는 이에게도, 열심으로 오로지 바닥만 보며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에게도 내가 배울 일들이 참 많다.

 

사람들이 별스럽지 않게  밟으며 지나는 넓은 바닥...그러나 아주머니는  매일 아침 보물처럼 빛나게 닦고 닦는다. 그 아주머니에게서 각별한 느낌을 받으며 시작한 하루다. 언제나 밝게 인사를 하시고 주저없이 앉아 일을 하신다.  언젠가 멀리 아는 시인께서 그분을 '성자'라고 표현했던 시가 얼핏 떠오른다.

 

어느새 11월이 열렸고 해가 저물었다. 몇명의 사람을 만나며 오늘의 배움을 생각해 본다.

겸손해야 하겠다. 말을 줄여야 하겠다. 늘 밝아야 하겠다. 매일 다만 몇 줄이라도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읽어주어야 하겠다.

 

 

본문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평화는 마음의 평화라고 말하면서도 그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조건으로 편안한 환경을 얻으려 한다. 하지만 진정한 마음의 평화는 외적인 조건과는 상관없이 누리는 것이어야 한다. 바울은 아마도 이런 평화를 누렸던 사람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마음의 평화가 어느 한순간에, 아무런 노력 없이 주어진 것 같지는 않다. 바울은 강력한 종교적 체험을 한 후 개종했으며 그  새로운 진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진리에 도달한 삶을 살 수는 없었다.

 

그는 인간적으로 완벽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고백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나는 속사람으로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 속ㅇ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고 ,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에다 나를 사로잡는 것을 봅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주겠습니까?"<로마서 7장 19-24절>

 

종교적으로 확고하게 무장되어 누구보다 강하고 빈틈이 없을 것처럼 보이는 바울의 내면에도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괴로웠던 나머지 자신은 '비참한 사람'이라고 탄식한다. 그는 인간적으로든 종교적으로든 흠 없는 성인으로 포장되길 원치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자신의 부족함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바울의 진실한 면모에 깊은 감명과 위로를 받는다. 그가 모든 고뇌를 초월한 성인이 아니라 극복되지 않는 고뇌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진리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타이르며 진리를 추구해 나갔던 인간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

 

 

 

위대한 사람이 되지 못해도 좋으니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게 요즘 사람들의 가치관인 것 같다. 그래서 '가족들과 누리는 행복한 시간'을 행복의 최우선 순위에 둔다. 또한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기보다. 작더라도 지금의 행복을 충분히 즐기고,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삶을 선호한다.

이런 기준으로 보자면 원만하징 낳은 가족관계에 평생 모욕적인 독설을 퍼붓는 정적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자신 역시 유명한 독설가였던 처칠이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보기는 어려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칠의 생애가 불행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그는 일찍 정계에 나갔으나 수상과 장관직에서 네 번이나 실각했다. 공직에서 떠나 있었던 10여년간은 실업자로 지내면서 경제적인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자신이 직접 참여하거나 지휘했던 전쟁에서 여러 번 패했으며, 몇 번이나 보수당과 자유당을 오가면서 당적을 바꾸었기 때문에 양쪽에서 배신자라는 낙인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불행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 그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았기 때문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용기있기 수행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했고, 자기 확신에 의해 선택한 일에 대해서는 세간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도전은 수없이 실패했지만 그는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아무리 중요하거나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명예와 현명한 판단에서가 아니면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상대의 힘에 눌려 포기하지 마라. 상대가 아무리 압도적으로 우세한 힘을 가졌더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1941년 자신의 모교인 해로 고등학교에서 한 연설이다. 숱한 고난을 겪은 그가 "포기하지 마라"고 외치는 것은 , 수월하게 목표를 이룬 사람의 말보다 큰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가진 많은 문제들이 오히려 그를 포기를 모르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우리가 가진 문제 가운데는 가능한 신속하게 해결해야 할 것도 있지만,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시간에 맡겨야 하는 것도 있다. 지금 생각하는 해결 방식이 짧은 생각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생각해 보라. 그때는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선택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성급한 마음에서 나온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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