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다시 읽는 우리 수필 /김종환 편저/을유문화사

다림영 2010. 11. 19.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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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박연구, 전혜린, 유병석, 손광성, 박완서 님의 수필이 실려있다.

몇번씩 읽은 것도 있고 한번도 안 읽은 것도 있었다. 

요즘같은 쓸쓸한 가을이면 이러한 책 한권 가방에 넣어 어디로든 떠나면 참 좋겠다.

길을 나선후 어느 낯선곳 카페에서 오래토록 앉아  뜨거운 커피를 앞에두고

한편정도 쉽게 읽으며 가을이 내리는 창 밖을 한참  바라보면 정말 좋겠다.

 

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수필이 가장 쉬운 글인줄로만 안다.

그러나 수필은  결코 쉽지 않은 글이다.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내기도 하고

읽는이로 하여금 각별한 깨달음을 얻게도 하는 글이다 .

언젠가 책을 많이 읽는다던 한 여자와 얘길 하게 되었다.

그녀는 수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냥 물흐르듯이 쓰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그러나 그녀는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단순한 그러한 글이 아닌 것을...

 

 

본문중에서

 

유병석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은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몇 년 전부터 가끔 읊조려보는 고뇌의 시인 이산 김광섭 선생의 <저녁에>라는 만년의 소곡이다.

소년기 이래 장년에 이르기까지 망국의 지성인으로서 준열하게 일제에 항거했으며 광복 이후에는 나라의 중추임을 자부하며 동분서주하였으나  만년에 이르러 병고와 싸우느라 심신이 노소해짐을 느낀 이후의 이산 선생의 관달한 심경을 직접 대하는 것 같은 친근감이 든다.

 

 

밤이 어두워짐에 따라 별들은 더욱 초롱초롱 빛나고 '나는'그에 반비례하여 어둠 속에 사라지는 것이다. 소멸하는 모든 것은 아름다운 것인가. 아름다운 모든 것은 쉬이 소멸하는 것인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하는 결구가 그렇게 가슴을 파고들 수가 없다. 별만이 나와 헤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와 인연이 맺어졌던 것들, 내 주위의 모든 것들, 그들과 나는 헤어지는 것이다. 헤어지는 모든 것은 슬픈 것인가. 슬픔은 모든 헤어짐에서 오는 것인가.

 

 

사랑했건 증오했건 무덤덤했건 간에 나와 관계지어진 모든 사람들을 나는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며 회자정리라 헤어지게 되는 것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야말로 절창의 가구다. 그러기에 수화 김환기 화백이 만년에 이역에서 그린 회심의 대작에 이것으로 표제를 달았고 젊은 작가 최인훈은 연극 작품 이름으로 삼았을 것이다. 이산과 수화 다같이 다난한 이 나라의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예도의 진인들, 두 분 모두 이미 고인이 되었구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두 분은 다시 만나고 있을까. 만남이란 무엇일까. 그저 우연이겠지.

 

 

내가 낳았다는 애들 3형제를 볼 때 그 애들이 내 소생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소위 과학적.생물학적 인과율을 모르는 바 아니요, 병원으로부터 강보에 싸서 안고 온 사실을 잊은 바 아니로되 이렇게 내가 그들을 생성했는가 싶어진다. 아득한 몇억 광년의 광대무변한 허공에서 까마득한 몇억 겁의 시간 동안 헤매던 수많은 알맹이들 중 어느 하나가 어쩌다가 내 아내의 몸속으로 들어와 호흡을 얻게 된 것이 아닐까. 우주가 생성되던 태초의 성운 속에 이 알맹이는 이미 존재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알맹이들은 해변의 모래보다 많고 대양의 포말보다 무수하며 태산의 티끌보다 많았을 것이다. 그 중에서 어느 하나가 나와 인연을 맺은 것은 아닐까.

 

 

우단같이 보드라운 큰아이의 머리칼, 우유같이 투명한 둘째의 살결, 인형같이 기다란 막내아이의 속눈썹, 이것들을 어찌 우리 부부의 능력과 피와 살로 조성했단 말인가. 바람둥이 탕아 아들을 둔 김유신어머니의 아픈마음을 같이 아파하는 큰 아이의 마음, 제비처럼 날아가는 공을 토끼같이 팔짝 뛰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잽싸게 잡아내는 둘재아이의 순발력, 간혹 엄마와 아빠 사이에 한갓된 감정의 분출로 일어난 어색해진 분위기를 눈치채면 괜스레 너스레를 떨어 무마시키려 애쓰는 막내아이의 작위, 이런 것들은 어찌 우리 부부의 능력과 욕심으로 가르쳤다 할 수 있는가. 그들과 나와는 생명을 따로 가진 다른 알맹이, 여기서 부자되어 잠깐 만나고 있는 것을 .

 

 

벌써 몇 해 전인가. 천지 창조 이래 사람의 발길이 몇 번 스치지 않았을 것 같은 깊은 산 속을 아내와 단 둘이서 어두운 밤중을 걸은 적이 있다. 조그만 바위에 걸터앉아 짐승의 울음소리와 물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지친 다리를 쉬고 있었다. 깊은 산 속에 오롯이 둘이 앉아 잠시 아무 말도 없었던 순간, 천지에 미만한 적막이 주위를 휩싸는 진공의 순간, 발 밑 1m쯤 앞에 반짝이는 별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어린애 발자국만 한 웅덩이에 고인 물에 별이 비쳤던 것이다.

 

 

유독 빛나는 별 하나 도대체 몇 광년 밖의 허공에 뜬 별이 이 순간, 울창한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바로 요 손바닥만 한 물거울에 비쳐 있을까.

여기 앉아 쉬지 않았더라면, 아니 아내와 자리만 바꾸어 앉았더라면 이 별은 나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이었다.

 

 

몇천 년 혹은 몇만 년에 한 번 이곳을 지날지 모르는 별의 운행과 일생에 단 한 번밖에는 지나치지 아니할 나의 자리, 또 거기에 내 눈과 그런각도로 존재하는 물거울, 이 3자의 인연을 도시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곁에 앉아 있는 이 여인은 또 어찌하여 나의 아내가 되어 있는가. 젊음의 고뇌와 암담한 시대와 헛된 욕망으로 이지러졌던 어느날 우연히 종로 거리를 나갈 일이 없었더라면, 그 다음 초여름 어느 날 저녁 광화문 거리를 그나 나 둘 중 하나라도 지나지 않았더라면, 아니 한 번 다이얼을 돌렸을 때 그쪽 전화기가 통화중이기만 하였더라도 나는 이 여자와 아무 관계없이 혹은 상면 한 번 하는 일 없이 내 인생은 궤도를 그대로 굴러 갔을 텐데.

 

 

어찌하여 나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이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며 나는 그의 반쪽, 그는 나의 반쪽이 되어 있는 것일까. 어찌하여 나의 기쁨이 그의 기쁨이며 나의 아픔이 그의 아픔이 되어 있는 것일까.

 

 

선인들의 지혜로도 설명할 길이 없어 운명이라 연분이라 인연이라 일렀던 것은 아닐까. 나에게 와서 잠시 호흡을 빌렸던 세 아이들, 나와 소중한 모든 것을 공유하는 아내, 그리고 가난하고 유순한 우리 이웃들,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시구를 뇌어본다. 우리 모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우리 모두 어디선가 다시 만날 때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제대로 걸어와서 만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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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스님의 글에서 그런말씀이 있었다.

만나게 될 인연이라면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다고....

그러니 억지로 만남을 부추킨다고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나게 될 사람은 언제라도 우리가 모르는 각별한 인연으로 그 어디선가 부딪치게 되어 있는것이리라.

지금 내가 이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그냥 앉아 있는 것 또한  아닌 것이다.

내가 그 누군가와 그 언젠가 함께 자리를 하고  웃으며 술 한잔을 나누었다면 그것 또한 그냥 어쩌다보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모든 일들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운명과 인연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오늘은 어떤 손님도 내게 도움을 주지 않으셨다. 참 신기한 것은 특별한 애를 쓰지 않아도 수입이 많은 날이 있는가 하면 제아무리 용을 쓰고 최선을 다해도 연이 안닿는 날이면 내내 종일 그렇게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

글을 거듭  읽어본다.

..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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