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중에서
..
자존심은 있어서 낡아가지 않고 늙어간다고 변명한다. 낡아가는 것은 썩고 녹슬어 소멸되어가는 것이지만, 늙어가는 것은 흰머리와 주름살 속에 보석 같은 지혜의 사리를 앙금지게 하는 것이라고.
당장에 바다에게서 삶의 확실한 정답을 들을 수는 없다. 나는 발길을 돌린다. 바다는 또 나에게 숙제를 내준다.
나의 파도는 왜 쉴 새 없이 산봉우리처럼 울뚝불뚝 융기하는 줄아느냐, 해류 때문이고 바람때문이다. 네 속에 쉴 새 없이 해류가 생기게 하고 바람이 불게 하여 파도가 거세게 일어나게 하거라. 살아 있음이란 파도처럼 융기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사나운 파도가 너를 더욱 빨리 지치게 하고 빨리 죽게 한다는 것을 명심하거라. 파도를 거세게 일으키되, 그것을 고요하게 잠재우거라. 그러기 위해서는 참선 같은 침잠이 필요하다. 산이나 별이나 달이나 해와 우리의 얼굴이 투영되도록 거울처럼 고요해지는 해수면, 해인海印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
..
"삶은 산처럼 무겁고 사랑은 새털처럼 가볍다"고 누군가가 토굴앞 모래밭에 낙서를 해놓은 적이 있다. 삶이 산처럼 무거운 것은 탐욕으로 말미암아서이다. 탐욕이 내 발에 쇠붙이 천만 근으로 된 철군화를 신겨놓았다. 이 철군화를 반드시 신고 다녀야 한다고 우기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들어 있는 영악한 쥐새끼 한마리이다. 사람의 탈을 쓴 그 쥐새끼의 논리와 주장은 이러하다. 섬에서 나고 자란 한승원이인 것은 자기가 신겨준 철군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
..그러나 깨달음에 이른 데 있어서 결혼하는 것과 결혼해서는 안된다는 계율쯤은 문제되지 않을 수도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결혼을 한 바 있고, 아들 라울라 스님을 두었다. 원효도 요석공주와 살림을 차려 산 적이 있고, 아들 설총을 두었다. 만해에게도, 경봉에게도, 청담에게도, 성철에게도 자식이 있다.
문제는 저 세상으로 돌아갈 때는 호주머니 없는 옷을 입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맨손 맨발이 되려고 노력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끝까지 철군화를 신고 있으려고 몸부림치고 발버둥치느냐 하는 차이이다.
..
선과 악도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국가도 사회도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두 얼굴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두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다.
전기를 편리하게 쓰면서도 전기를 생산하는 원자력의 폐해는 싫어한다. 전기를 생산하는데서 나온 쓰레기나 찌꺼기는 내 집 내 마을 옆에 두고 싶지 않다. 원자력으로 만든 전기를 이용한 지하철이나 전철을 편리하게 타고 싶기는 하지만 폐기물 창고는 상대하고 싶지 않다. 먹고 마시는 시설인 부엌은 만들려고 하는데 배설하는 시설인 화장실을 만들지 않으려 하는 모순된 두 마음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은 영광으로 부터 받아 누린 빛에 대한 빚을 지고 있다. 가령 장흥 탐진댐에 저장되어 있는 물을 끌어다 마시는 사람들이 장흥 사람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듯이.
내가 쓰는 만큼의 빛의 요금과 쓰는 물값을 내가 다 넉넉하게 물고 사는데 무슨 부채감을 더 느끼라는 것이냐고 반문하는가.
다른 대안이 없다면 원자력이라는 괴력, 방사선이라는 살인광선과 가장 가까이 살고 있는 영광 사람들에게 우리는 아직도 얼마든지 더 많은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가시적인 빛과 비가시적인 빛 사이를 화해하게 하는 일이고 우리의 평화와 안식을 위해 온당한 일이다.
---------
지은이의 고향 주변 남도에 대한 이야기이며 여행기이다.
집을 떠나지는 못해도 이렇게 글로 만나며 언젠가는 가야지 하고 그곳의 역사와 아름다운 이야기속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풍경속에서 직접 느끼는 것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곳의 산과 강과 바다와 그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만나보는 여행지는 각별한 느낌으로 전해질 것이다.
언젠가 어느 수필월간지에 글을 기고했을 때 그분이 나의 글에 대한 평을 해 주셨다. 너무 감사했고 나는 마음속으로 불끈 주먹을 쥐었다.
한참 글에 대해 열을 올렸고 문학회에 발을 들여 놓기도 했고 매일 되지도 않는 글이지만 열심으로 고치고 고치던 무렵이었다. 얼마나 힘이나고 즐거웠던지...
돌아보니 내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문학회 친구들은 어디론가 모두 뿔뿔히 흩어졌고 내 사정도 급격히 나빠졌다.
새삼스러이 그때의 일들을 떠올리며 읽게 되었다. 언젠가는 꼭 지은이가 말씀하셨던 곳으로 떠나게 될 것을 믿으며...
'책 만권을 읽으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리학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강현식 (0) | 2010.08.20 |
---|---|
속상해 하지 마세요/서혜정 (0) | 2010.08.18 |
빨간머리 앤/루시모드 몽고메리/김양미 옮김 (0) | 2010.08.11 |
로맨티시스트 인간을 공부하다/박인철 (0) | 2010.08.05 |
소풍 /성석제 산문집 (0) | 2010.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