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머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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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을 가듯 시간의 한 부분을 툭 끊어서 길을 떠났다. 예전에 지나갔던 음식점, 익숙한 냄새와 사람을 다시 한번 만나며 다니는 길은 행복했다. 뭘 맛본다는 것, 맛을 기억하며 소요逍遙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이고 방심한 상태에 스스로를 처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도 밥 먹을 때는 건드리지 말라는 말이 있는지도 모른다.
먹고 살기에 급급한 때가 있었다. 살기 위해 먹는 처지에 좋은것과 나쁜것, 마음에 들고 들지 않고를 가릴 형편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해서 음식을 먹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서 맛을 본다는 건 바로 소풍같은 것이다.
가기 전날부터 가슴이 설레고 살짝 땀이 배도록 걸어서 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며 담소를 나눌 동무들이 있으면 더욱 좋다. 보물찾기처럼 예상치 않았던 것을 얻는 행운을 만날 수도 있다.
음식을 만들고 나누고 먹고 이야기 하는것, 이 모두가 '음식'이라는 말로 뭉뚱그려진다고 할 때 음식은 추억의 예술이 눈.귀.코.혀.몸.뜻<眼耳鼻舌身意>의 감각 총체 예술이다. 음식에 관한 기억과 그에 관한 이야기는 필연코 한 개인의 본질적인 조건에까지 뿌리가 닿아 있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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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삿밥의 변형이라는 전주비빔밥은 젓가락으로 비빈다고도 한다. 이렇거나 저렇거나 다 좋다. 왼손으로 비비고 오른손으로 비비고...이미 입안은 침으로 홍수가 났다.
한입 그득할 만큼 밥이 담긴 놋숟가락이 덤벼온다. 온 몸이 입이 된다. 혀가 삶이다. 한 순간이 눈 내린 들판의 달빛처럼 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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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날, 나는 서울의 어느 자그마한 시장에 갔다가 깔끔한 포장에 마개에 숨쉬는 구멍이 뚫여있는 서울막걸리를 만나게 되었다. 바깥의 포장에는 단 한마디, '살아있는 효모의 맛'이라는 간명한 문장이 씌어 있을 뿐이었다. 내 입에서는 절로 "요런, 요런 깍쟁이들!"이라는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맛은 어땠느냐. 내가 마셔본 최고의 막걸리에는 그런 문구마저도 없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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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라면에 나트륨이 너무 많아서 문제라는게 알려지기 시작해서 시민단체와 라면회사 사이에 공방이 있었다. 이를테면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하루나트륨 섭취량은 1968밀리그램 정도이고 미국은 1500밀리그램, 한국은 3500밀리그램인데 라면 한개 에 들어 있는 나트륨이 평균 2075밀리그램이라는 것이다. 나트륨도 문제지만 MSG의 해악은 이전부터 유명했다.
1970년대 미국에서 중국음식 붐이 일었는데 일부 중국음식점에서는 식탁에 MSG를 담은 통을 두고 손님 입맛에 따라 마음껏 요리에 넣어먹게 했다. 이처럼 MSG를 대량으로 먹은 뒤에 마비와 가슴떨림, 두통, 복통 증상이 나타났고 알레르기나 천식환자는 적은 양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태아나 갓난아기의 경우에는 글루타르산이 뇌에서 신경전달물질로 기능해서 뇌로 가는 혈액을 차단, 뇌와 신경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에 MSG는 유아식에 넣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고혈압, 저혈압, 알츠하이머, 뇌졸중, 당뇨병 환자에게도 MSG가 문제될 수 있다.
건강한 사람도 공복에 MSG3그램을 먹으면 MSG관련증상을 보이는데 보통 우리의 한끼니에 0.5그램이 들어 있다고 한다.
MSG가 명찰을 달고 '나 들어가 삽니다'하고 인사 차린 뒤 들어가 있는 경우보다는 '맛소금'의 '맛'이나 '가수분해 식용 단백질'같은 어려운 이름으로 슬며시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우리가 먹게 되는 MSG의 양은 생각보다 많다. 감자칩. 조미 땅콩. 사출방식의 과자, 라면 , 김치는 물론이고 값싸게 손님이 원하는 맛을 내야 하는 대부분의 식당음식에 들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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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나는 이 책을 언제 읽은 것 같다.
내용은 기억이 안나고 표지만 낯이 익은 것이다.
참 기막힌 나다.
늙어간다는 것은 이런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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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맛에 대한 소풍같은 산문집이다.
아주 유익한 책이었다. 특별한 지식도 얻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꼭 알아야 할 부분을 읽게 했다. 백날 엄마가 잔소리로만 얘기한들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여유가 좀 있고 집에 있는 사람이라면 마음이 메워지지 않을때면 훌쩍 집을 나서서 그가 말씀한 곳을 찾아 소풍처럼 가볍게 다녀온다면 그것보다 더 행복한 삶은 없으리라..
여행을 떠나면 항상 그곳의 유명한 맛집이 따라온다. 여행과 맛은 따로 놓고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때엔 다른것은 모두 잊고 오직 그 어떠한 맛때문에 그곳이 특별히 기억난다.
다만 맛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은 것으로 안다.
요즘 나는 아이들 먹을거리에 부쩍 정성을 담는다. 그때문에 출근시간이 자꾸만 늦어진다.
가급적이면 아이들에게 정성과 영양을 살핀 음식을 먹이려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예전같으면 조금은 심술을 부리며 했을지도 모르는데 요즘은 땀을 흘리고 시간이 걸려도 즐겁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어쩌면 도를 닦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다 접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오직 음식의 영양가와 맛만을 생각하며 만들기 때문이다.
무언가 깊은 마음으로 그것에만 몰입을 하고 나를 잊으니 말이다.
먹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군침이 돌고 아이처럼 신이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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