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크고 아주 여려보이는 여자가 내 눈과 마주쳤다.
지나는가 싶더니 양산을 접고 유리문을 밀고 들어왔다.
반갑게 맞이했는데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내게 카드 하나를 만들란다.
나는 아이처럼 말없이 고개만 흔들었다.
여자는 금방 나갈 듯 했다.
그러더니 돌아서서 그냥 한번 만들어주면 안돼냐고 재차 묻는다.
나는 다시 고개를 흔들고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래도 여자는 나가지 않았다.
그때까지 나도 손님 한 분 맞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혼잣말로 '너무힘드네' 하며 벽을 한참동안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는 꼭 이름같이 해 놓았네 하며 엷게 웃는다
왈칵 무언가 밀려왔다.
카드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여자의 말에는 진심이 묻어있는듯 싶었다.
그러나 나는 카드를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일을 하는 여자들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늘 보던 여자들과는 많이 달랐다.
여자는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들었을까 조용하고 눈이 깊었다.
여자에게있어 나는 어쩌면 굉장히 화려한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잘못알았다.
나는 한여름에도 두개의 긴 바지로 견디고
계절상관없이 신는 한개의 검은 구두로 여름을 나는 사람이다.
저녁에 나의 가게에는 항상 친정어머니가 내려오신다. <남편이 없을때>
그때 어머니는 붓글씨 연습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연속극을 보시는데
어디 대회에 나갈때면 항상 큰 시계 뒤에 걸어놓고 내게 평을 해 달라시는데..
그때 걸어놓은 붓글씨 두점이 걸려 있다.
불현듯 그것에 눈을 맞추더니 여자는 내게 붓글씨도 쓰냐고 물었다.
나는 친정어머니가 쓰신것이라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어머니의 나이를 묻고 글귀에 대한 얘기를 하며
참 좋은 어머니시다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런 어머니이니 딸의 모습이 그렇단다.
마침 애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들어도 마음이 뭉클해지는 그런 음악이었다.
종일 나는 파도소리와 갈매기 소리가 실린 그 음악만 듣고 있었다.
어쩌면 음악이 그녀에게 분위기를 가라앉게 만들었을지도 몰랐다.
여자는 갑자기 돌아서더니 눈물을 떨구는 것이다.
나는 오늘따라 왜그렇게 매정한지 왜그러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다른때 같으면 차 한잔을 권한다던가 어떠한 영업과 상관없이 사연을 물었을 것이다.
그러며 좋은친구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지간히 삶의 때가 단단히 묻은 모양이다.
'엄마가 생각나서...'
여자는 눈물을 닦으며 묻지도 않는 나를 보며 웃으며 말한다.여자에게는 각별한 어머니였나보다.
...
여자가 인사를 하며 나갔다.
여자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 을 비추며 말을 하는데 나는....
폭염주의보가 내린 더운여름날 가게마다 돌아다녀보아도 실적은 별반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여자에게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지도 모르고
여자에게 나는 조금이라도 나은 입장이었을지도 모른다.
작은 웃음이라도 선물했어야 했다.
그것이 성공이라고 했는데...
단 한사람에게 환한 웃음을 선물하는 것...
그런것이 성공이라고 어느 詩에서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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