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서문 중에서-
김인숙의 <바다와 나비>는 모든 것이 찰나적이고 한엇ㅂ이 가벼워진 이 시대에, 다시 한 번 문학의 진지함과 무거움의 정수를 보여주는 보기 드물게 상징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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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의 <바다와 나비>는 탈이데올로기 시대를 맞은 옛 이념 세대의 방황과 좌절 그리고 찢긴 날개로 삶의 거친 바다를 건너가려는 의지를 뛰어난 솜시로 묘사해 개인의 슬픔을 '시대의 아픔'으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바다와 나비 >본문 중에서
-제주 왕나비가 바다를 건너가는 순간이 카메라에 포착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보십시오. 저 작은 나비가 쉬지도 않고 수백 킬로미터의 바다 횡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리모컨을 음소거 버튼을 눌렀고, 그리고 생각했다. 나비가 바다를 건너다니.... 세상에는 저런 거짓말도 있구나. 그러자, 내가 같이 살고 있는, 그리고 내 아이의 아빠라는 남자가, 내게 기생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별것 아닌 것처럼도 여겨졌다.
세상에 존재하는 위대한 거짓말 중에, 내가 꿈꾸었던 행복이라는 이름의 거짓쯤은 별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도 가능하지 않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누군가를 그리고 바로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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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의미하고 있는 특별한 것을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그야말로 거대한 바다를 건너는 아주 작은 나비는 모든 현재의 힘든 삶을 견디고 살아가고 있는 너 그리고 나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지금 이 거대한 우주에서 이렇게 살아 오늘을 건너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어쩌면 나비는 바다를 모를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타날 꽃을 찾아 그저 날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어디쯤에서 날개가 부러질 지라도 한송이의 꽃을 찾아 끝까지 가야 하는 것...
우리도 아무것도 몰랐다. 어느날 갑자기 태어나 누군가에 의지하여 살다가 지금 이곳에 서 있게 된 것이다. 타인의 의지 혹은 우리의 의지로 여기에 왔다. 돌아갈 수 없다. 바다가 나타나면 헤엄을 치고 산이 보이면 넘어야 하고 앞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꿈을 찾아서. 어쩌면 꿈을 찾기도 하고 때로는 어디에선가 넘어져 삶을 다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비가 어느순간 카메라앞에서 날개가 부러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듯이..
그녀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어느날 불현듯 찾아온다. 그러나 또 다른 이들의 아픔을 목격한 그녀의 착한선택으로 그후 모두가 웃는 날이 가끔은 올것 같아 회색빛 소설속의 마지막은 가벼워졌다.
<바다와 나비>도 그렇지만 김인숙의 <모텔 알프스>도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의 여자를 만나며 나를 돌아본다. 살갑고 행복하던 시절이 어느날 문득 끊기고 모텔 알프스로 일을 나가야 했던 주인공, 아이도 없으면서 누워 있는 남편과 정 없는 시어머니를 버리지 못한다.
지극히 선한 사람들은 인간의 탈을 결코 버리지 않는다.묵묵히 하루를 받아들이며 살아낸다. 새싹하나 돋아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그녀가 버릴 수도 있었지만 선택해야 한다면 가끔은 그 암담함 속에서도 작은 기쁨이라도 찾아 자신을 치유하고 다시 가족에게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얻어야 하는것은 아닌가. 그들을 떠날 수 없다면 말이다. 용기를 내어 나를 사랑하기를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소설의 끝 그 뒤에는 날이 밝으면 훌훌 어디론가 남편의 모습을 지우며 떠날지도 모른다. 그것은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자라면 응당 자신을 위한 삶을 개척하고 떠나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무언가의 내재된 힘으로 절망의 한 가운데에서도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간혹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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