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작은 것의 아름다움 /남공철/안순태 옮김

다림영 2010. 7. 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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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남공철<1760-1840>

자는 원평元平,호는 금릉金陵,본관은 의령이다.부친은 영조때 양관 대제학을 지낸 남유용이다. 정조에게 총애를 받아 홍문관 벼슬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규장각 초계문신으로 선발되기도 하였다. 문체 문제 때문에 정조에게 잠시 배척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순조대에는 영의정에 이르는 등,74세까지 순탄한 벼슬길을 걸었다. 박지원.박제가.최북.이단전 등과 폭넓게 교유하였으며 불우한 이들을 위하여 전傳이나 묘지명 짓는 일에 힘썼다. 문집으로는 금릉집을 비롯하여 <영옹속고, 영옹재속고.귀은당집> 등이 있다.

 

옮긴이 안순태

충남 청양출생으로 홍익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홍익대.서경대등에 출강하고 있으며 방송대 조교로 재직중이다.

 

 

본문 중에서

붓끝으로 사람 끌어안기- 남공철론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 미인의 꽃시절도 잠시뿐이고 찬란했던 유물도 세월 앞에서는 다시 강물이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윽한 아름다움을 풍기는 것도 있지만 결국 모든 존재는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불과 수십, 혹은 수백 글자안에 사람의 정신과 모습을 그려내 그 글을 쓴 사람은 죽었어도 숨소리는 거둘수 있다는 데에 글의 묘미가 있다.

훤칠한 키에 자도子都<중국 고대의 미남자>를 닮은 눈매, 깨끗하게 차려입은 관복,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한번쯤은 되돌아보는 사람, 온화한 표정의 이 미남자가 바로 남공철이다. 그러한 모나지 않음에 그와 사귄 이들이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다. 그 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얼른 알 수 있는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김조순, 최북 같은 이들이 있다.

남공철은 영조때 관각문인이지 정조의 사부이기도 했던 남유용의 아들이다. 정조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남유용은 이 훗날의 군주를 무릎에 앉히고 가르쳤다. 남유용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 아들은 그의 나이 스물넷에낳은 공보이고 둘째 아들은 예순넷에 낳은 공철이다. 공보와 공철은 아버지는 같았으나 어머니가 달랐다. ..

 

 

 

<어떤 사람이 칠칠에게 산수화를 그려줄 것을 요구하자 칠칠은 산만 그리고 물은 그리지 않았다. 그사람이 이상하게 여기며 그것을 트집잡았다. 그러자 칠칠이 붓을 던지고 일어나며 말했다.

"아, 종이 밖이 모두 물이잖소!"

-종이 밖이 모두 물이잖소 중-

 

종이에 그려진 산만 보고 무슨 산수화에 물이없냐고 따지는 사람에게, 종이 밖이 모두 물인데 어째서 산수화가 아니냐고 버럭 화를 내는 장면이다. '산수화'라는 이름에 얽매여 눈에 잘 보이는 것, 화려한 것, 중심부만 보고 얼핏 보면 보이지 않는것, 주변의 것을 보지 못하는 것에 화가 난 것이다. 최북은 하루하루 그림을 팔아 생계를 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그림 파는 일에 매달리지는 않았다.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만 그렸고,

 

그런 그림이 팔리지 않아도 그만, 굶는 한이 있어도 그림 사는 이의 비위 맞추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림 좋아하는 남공철이, 최북의 눈엔 호사스런 취미를 즐기는 대갓집 도령 정도로 보였을 법도 한데, 최북은 배가 고프거나 술 생각이 간절하면 서슴없이 남공철을 찾았다. 그리고 밤새워 함께 술을 마시며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으니 , 남공철이 진심으로 그를 포용하고 그의 재주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별의 순간

 

한벽루寒碧樓에서 이별할 때 슬퍼서 넋이 빠져나가는 듯하였답니다. 말을 타고 남문 밖 사오리를 벗어나왔는데도 여전히 생황과 노래 소리, 피리소리, 북소리가 오래도록 끊이지 않고 들려왔지요. 붉은 누각의 굽은 난간에서 단아하게 화장하고 곱게 차려입은이가  서 있는 사람은 티끌만 하고 말은 콩알만해서, 고개 돌려 뚫어지게 보다가 부채로 응답하였다오. 언덕과 숲을 돌아가니 누각이 숨어 보이지 않았고.

 

우리들은 모두 젊고 건강하니 나중에 얼마든지 다시 만날 수 있을 텐데도 오히려 이렇게 이별에 연연해하니 만약 나이가 들게 되면 어떠하겠소 강통江通이 "봄풀은 푸르고, 봄물은 푸른 물결 이루는데 남포에서 그대 보내니 이 슬픔을 어찌할까"라 하였으니 예로부터 이별의 순간은 슬펐다오.

 

순조때 판돈령을 지낸 이언식에게 보낸 짧은 편지다. 한벽루는 제천 청풍의 한벽루인듯하다. 벗과 이별하고 떠나오는 길에 벗의 모습은 티끌만큼 작아진 데 반해 흥겨운 풍악소리는 여전히 귓가에까지 이르고 있다고 해서 이별의 슬픔을 고조시키고 있다.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친 오래 전 친구와 머쓱한 분위기에서 서로 근황을 묻고 연락처를 주고 받는다 한들 과연 다시 예전처럼 자주 만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는 세월이라는 바다에 제각각의 조류를 타고 흘러가는 존재다.

 

어지간한 인연이 아니면 같은 조류를 타고 흐르기도 어려울 뿐더러 같이 흘러가는 듯하다가도 돌아보면 어느새 서로 다른 조류에서 흐르고 있다. 그러나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난 옛친구에게, 다음에 다시 한 번 꼭 만나자고 기약하는 것은 반가운 마음을 달래는 부질없는 기약 이상이 되기 어렵다.

 

 

우리가 사는 동안 과연 몇 번이나 그들을 더 만날 수 있겟는가. 어쩌면 다시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면 이별의 순간은 당연히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슬퍼지기 마련인 것이다. 하물며 나이가 들어 살 날이 줄고 만날 날도 줄어든다면 어떻겠는가?

 

 

제대로 유람하는 법

 

화림동화花林洞은 삼진三眞 가운데 하나다. 나는 아직 그곳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곳을 두고 지은 시가 있어 그곳 산수의 경치가 이미 마음 속에 갖추어져 있다.

세상에서 제대로 노닐 줄 모르는 사람은 번번이 기이하고 그윽한 곳을 다 찾아 헤매면서 눈 힘과 다리 힘을 다 소진한 이후에 "연일 계속되는 유람이 상쾌하고나"라고 한다. 비로소 하나의 선경仙境을 다 보고 또 다른 아름다운 곳으로 떠나면서도 그가 앞서 떠나온 곳이 선경임을 알지 못한다. 그에 반해 아름다운 곳의 한 가운데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득의하는 사람도 있으니 이 사람이 바로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 만하다. 또 짓는다.

 

 

이미 지나온 곳이 더없이 좋은 곳인 줄 알지 못하고 또다른 명승지를 찾아다니며 기운만 소모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곳이 어떠하리라 마음 속으로 느끼는 이도 있다. 금강산을 두고 지은 시문 가운데 실제로 가보지 않고 지은 것이 더 뛰어난 평가를 받는 것을 보면 남공철의 이 말도 장난 삼아 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일찍이 중국의 임어당<1895-1976>은 그릇된 여행을 다음 세가지로 들고 있다. 첫째는 정신향상을 위해 떠나는 여행이고, 둘째는 나중에 이야깃거리를 얻기 위한 여행이며, 셋째는 미리부터 구체적인 일정을 짜놓고 떠나는 여행이다.

 

고행을 해서 득도해야 하는 수행자가 아닌 이상 여행은 일상에서의 해방이니 일상에서 정신향상에 힘써야 할 일이지 굳이 여행을 하면서까지 정신향상을 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 현대인들이 흔히 저지르는 잘못가운데 여행후의 이야깃거리를 위해서 여행을 하는 경우가 많은 데, 이 또한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구체적인 여정을 그대로 실천하는 여행도 일상의 각박함을 여행에까지 적용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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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명나라 말기 문인 도륭은 "여행이란 이목耳目을 열고 혼을 활짝 펼치기 위하여 하는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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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는 생각한다.

분명 나의 전생은 화가였거나 글쟁이였거나... 조선시대에 가진것 없고  마음만 수려한 어떤 한량이 아니었을까 하는...

이런 선비들의 이야기가 요즘 이야기보다 좋은 것을 보면 그들의 친구는 아니었을까 하는 웃기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훗..

 

"여행이란 耳目을 열고 혼을 활짝 펼치기 위하여 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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