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중에서
아내가 문짝을 달고 벽을 부수기 시작한 것은 시골 집으로 이사오고 몇 달 지나서부터였습니다. 막연하게 동경해 온 시골에 대한 감상적 시학이 무참히 깨져 나가던 그 무렵이었습니다.
대나무 숲이며 개울물이며 온갖 수목과 꽃들과 함께 살고자 했던 아내, 하지만 막상 곁에 두고 살다 보니 대나무 숲의 바람이나 들꽃 향기에 취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모든 것들이 그게 그거였던 것입니다. 산으로 들로 나물을 뜯으러 다니고, 시원한 개울물에 발담그고 책을 읽거나 둥그나무 그늘 아래에서 이젤을 펼쳐놓고 그야말로 그림같은 풍경속에서 그림 을 그리고, 사랑방 앞뒤 문을 훤히 열어놓고 시원하게 낮잠을 즐기거나, 아궁이에 불을 지펴 아이들과 함께 오순도순 군밤이며 고구마도 구워 먹고...
그렇게 하고 싶은대로 해봤지만 하루 이틀, 한두달 지나니 별것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힘에 부쳤던 것입니다. 시골 구석에 처박혀 있는 자신이 한없이 처량하게 여겨지기까지 했던 것입니다.하소연을 쏟아놓고 싶어도 받아 줄 젊은 여편네들은 하나도 없고 걸핏하면 일손 좀 보태 달라는 노친네들뿐이었습니다. 입이 심심해 주전부리를 하고 싶어도 구멍가게가 하나 있나, 시장에 한 번 가려면 큰맘 먹고 나가야 하고..... 거기다 남들처럼 제초제 한방이면 말끔하게 해결될 것을 며칠에 걸쳐 느릿느릿 속 터지게 풀을 뽑고, 몇 푼이나 된다고 돈 주고 사먹으면 그만인 야태들을, 그것도 애들 똥오줌으로 일일이 밭을 갈아서 먹자고 하는 남편도 보기 실었던 게지요.
닭들은 여기저기 똥을 찍찍 싸대고 툭하면 걸리는 게 거미줄이고 윙윙거리는 파리에 모기에, 벌 새끼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죠. 아내가 시골 생활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이런 '환장할'마음에서 벗어나기까지 2년 이상 걸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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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생활 6년 째인 요즘, 아내는 아궁이 불을 지피기 위해 운동삼아 땔나무를 하러 다닙니다. 여름이면 세탁기보다 개울가에서 빨래방망이를 휘둘러 대는 것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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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다' 는 그 말이 꼭 맞는 것 같습니다. 세상 이치가 참으로 공평한 것 같습니다. 없이 살다가 여기 저기서 돈벌이가 생기니 허리가 아프고,새 장화까지 사 신고 기분 좋게 산에 오르니 산딸기가 별로 없었습니다. 돈벌이로 새 장화까지 사 신었지만 그 대신 컴퓨터 앞에만 앉아 산에 자주 오르지못해 건강을 잃었고, 산딸기를 잃었던 것입니다.
내가 예전처럼 적게 벌어 적게 먹을 만치 돈벌이를 했다면 산에 꼬박꼬박 다녀 허리도 아프지 않았을 것이고, 산딸기로 술을 담갔을 것입니다.그랬다면 나뿐만 아니라여러 사람이 즐거워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망하기엔 아직 일렀습니다. 산딸기를 찾다가 아주 우연히 청둥오리를 발견한 것입니다. 청둥오리는 겨울을 나기 위해 찾아오는 철새로 알고 있었는데, 장마철에 청둥오리라니, 설마 했지만 눈앞에서 날아간 그 새는 분명 갈색 깃털로 얼룩진 청둥오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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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산행을 하지 않아 허리가 아프다고 엄살을 부렸지만 , 사실 나는 어미 품에서 생명을 키워 가는 열 두개의 알을 통해 이미 치유받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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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비우지 않고서는 담을 수 없고 채워넣을 수 없다.
그러한 평범한 이치를 알면서도 끝없이 담고 끝없이 채우려는 욕심속에 우리는 부대끼며 살고 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언제면 그 하릴없는 욕심에서 벗어나 이 아름다운 가족처럼 나는 살게 될 수 있을지...
지은이는 도시의 모든 것을 접고 계룡산 갑사 부근의 시골마을로 내려간다.
한번도 시골생활을 하지 않았던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서였다.
시골이란 어쩌다 한번 가면 좋지만 한번도 시골생활을 해보지 않던 사람에겐 막막하기 이를데 없을 것이다.
이 책은 2003년도에 만들어진 책이다.
벌써 7년이 된 것이다.
그에 의하면 그때 그의 수입은 육십만원으로 한달을 살아야 했다고 한다.
땅도 자신의 것이 아니고 다만 허수룩한 집 한채 이백만원을 주고 빌린 것이었다.
그런집을 그의 아내는 온갖 폐품으로 만들어가며 각별한 삶의 기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또 어떤가..
자연속에서 그야말로 자연의 고운 아이들로 자라난다.
누구나 꿈은 꾸지만 누구나 도전하지 못하는 일을 지은이 가족은 해냈고 부족하지만 그 가운데 아름다운 삶을 일구어 나간다.
후..
모든 것이 쉽지 않은 요즘일상이다.
시골생활에 감히 도전은 하지 못하지만 마음만큼은 조금씩 비우는 연습을 하며 하루를 일구어 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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