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괜찮아 네가 있으니까/안도현, 김연수, 문태준, 정끝별, 김인숙, 박민규외

다림영 2010. 6. 15.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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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나를 지킨다는 것/문태준

 

언제부턴가 내 아이들이 집안에서 애완동물을 기르자고 졸라댔다. 강아지를 데리고 살자고도 했고, 기니피그 한 쌍을 사자고도 했다. 또 어느날은 고습도치를 사자고 했고, 대형할인마트에 가면 가재 한 쌍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우선 강아지부터가 그랬다. 시골서 자라 오면서 늘 잡종의 강아지를 보아 온 터라 강아지는 으레 산으로 뛰고 들길로 뛰고 석양까지 가서 뛰다 단출하게 홀몸으로 제 살던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지 그것을 방에 들일 만하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게다가 강아지는 아무 데서나 배설물을 흘려 놓지 않는가 말이다.

 

물론 나도 어릴 때는 강아지를 무척 좋아했다. 토끼를 몇년 동안 길러 그것을 시장에 내다 팔았고 그렇게 마련한 목돈으로 강아지를 샀다. 그러나 농사로 치면 강아지 농사는 나에게 흉년이었다. 이듬해 겨울 한파와 함박눈에 눌려 내가 키우던 강아지가 동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날의 충격은 괘 오래 나를 지배했다. 나는 밥먹는 것을 밀쳐놓고 사나흘을 훌면서 보냈다.그리고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기니피그도 나는 싫었다. 역시 나의 개인적 체험의 영역 때문이었다. 시골집 천장을 요란스럽게 달리던 쥐의 눈빛을 닮았다는 단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나는 쥐의 또랑또랑한 눈빛이 징그러웠다. 구멍을 드나들다 나의 눈빛과 딱 마주쳤던 쥐의 눈빛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나는 기니피그가 집 안으로 들어와 동거하게 된다면 내가 집을 나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굳이 동물을 집 안에 들인다면 유순한 물고기 쪽을 택하자고 했고, 아이들은 그렇다면 거북이를 사자고 했다. 협상은 종료되었다. 천칭 저울이 좌우로 흔들리다 멈춰 서듯이, 그래서 우리 집에 거북이 두 마리가 들어왔다.

 

 

아주 작은 두 마리의 거북이였다.  거북이는 조용조용했다. 고정된 물체처럼 혹은 면벽수행이나 묵언 수행을 하는 수행자의 기풍이 있었다. 단단한 등때기도 마음에 들었다 저 큰 짐을 지고 사느라 얼마나 힘이 들까 측은 한 마음까지 생겨났다.

 

 

하루는 물 속에 돌을 하나 놓아 주었다. 앉을 데를 내주었다. 침묵이 생겨나는 것만 같았다. 거북이들은 돌을 하나 놓아주자 번갈아 물돌 밑에 살았다. 몸짓은 여전히 굼뜨고 굼떴다. 작은 산돌을 주워다 돌을 하나 더 놓아 주었다. 거북이들은 돌을 하나씩 소유했다. 그들은 여전히 침묵했다.

 

 

거북이의 주름진 목도 나는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물 바깥에서 거북이를 보고 있을 때 거북이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 천천히, 지극히 천천히 목의 주름을 접으며 주머니에 손을 넣듯 목을 숨겼다.오그라드는 그 시간의 지속이 나는 너무 좋았다. 천천히 발을 빼는 것 같은 그 완행의 속도가 좋았다. 그리하여 나는 거북의 침묵과 거북의 느림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던 토요일 오후의 일이었다. 내가 텅 빈 집에 막 들어섰을 때 나의 거북이 작은 산돌 위에 올라 앉아 있었다. 물돌 밑에 살던 거북이가 처음으로 돌 위에 올라선 모습을 나는 목격하게 된 것이다. 거북이는 작은 돌 위에 올라앉아 사방으로 다리를 벌려 몸을 말리고 있었다. 마른 빛이었다. 마치 축축한 시간을 말리고 있는 것 같았다. 물의 시간을 말리고 있는 것 같았다. 물속에 사느라 늘 젖어 있던 배가 마르고 있었다.

 

 

거북은 자기 살림의 질서를 나름대로 갖고 있었다. 한가하고, 욕심을 적게 부리며, 기다릴 줄 알며, 서두르거나 조급하지 않으며, 침묵을 즐기는 고아한 성품이 있었다. 나는 그의 그 품성이 마음에 들었다, 말하자면 거북은 자기를 지킬 줄 아는 처세가 있었다.

 

다산 정약용의 배다른 맏형인 정약현은 자신의 방에 '수오제守吾齋라고 써 붙였다고 한다. 나를 지키는 방이라는 뜻이었다.다산의 글을 보면 다산은 이 수오에 대해, 자신을 보전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오직 '나' 만은 지켜야 한다. 내 밭을 떠메고 도망칠 수 있는 자가 있을까? 밭은 지킬 필요가 없다. 내 집을 머리에 이고 달아날 수 있는 자가 있을까? 집도 지킬 필요가 없다. 유독 이른바 '나'라는 것은 그 성질이 달아나길 잘하며 들고남이 무상하다.

 

잠깐이라도 살피지 않으면 가지 못하는 곳에 없다. 이익과 벼슬이 유혹하면 가 버리고, 위세와 재앙이 두렵게 하면 가 버리고, 궁상각치우의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흐르는 것을 들으면 가 버리고, 푸른 눈썹 흰 이를 한 미인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면 가 버린다.

 

가서는 돌아올 줄 모르니 잡아도 끌어올릴 수가 없다. 그러니 천하에 '나'처럼 잃기 쉬운 것이 없다. 굴레를 씌우고 동아줄을 동이고 빗장으로 잠그고 자물쇠를 채워서 굳게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자기를 지킬 줄 아는 거북과의 동거는 나에게 큰 선물이 되었다. 세상의 이익에 초연할 줄 알고 성질을 조촐히 하여 가히 담박한 것이 거북에겐 있었다. 그것은 무심이라고 말해도 좋은 것이었다. 강아지와 기니피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강아지 대신 거북, 이 협상은 최근 내가 한 협상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협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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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절실하게 깨달았다가

또 어느날인 좁디 좁은 내가 되기도 한다.

매일같이 나를 닦으며 지키기를 밥먹듯 해야 하겠다.

 

참 좋은 말씀이 많은 책이다,

훌륭한 작가들의 각별한 이야기가 꽃을 피우는 책이다,

누구에게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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