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방에 관한 기억/서성란

다림영 2010. 6. 9.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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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중에서

 

스무살이 되면 가장 먼저 기차를 타고 바다를 보러가고 싶었다. 대학 시절 나는 계획도 없이 불쑥 밤 기차에 오르곤 했다. 주머니안에는 오고 갈 차비와 한끼 식사를 하기에도 빠듯한 돈이 들어 있엇다. 밤 기차를 탄 대가는 혹독해서 일주일 넘게 날마다 한끼씩 걸러야 했다. 편안하게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졸면서 여행을 할  때도 잇었지만, 객실 맨 뒤 좁은 틈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힘들고 불편하게 여덟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바다를 보기 위해 떠나왔지만 정작 바닷가에서 머무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발목까지 푹푹 빠져드는 모래사장을 거닐다가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면 다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언제든 찾아올 수 있었기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그다지 무겁지는 않았다.

 

서른이 되면 좀 더 오래 그곳에 머물 수 잇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두운 차창에 비친 내 모습만 들여다보았던 스무살과 달리,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시간에 쫓기지 않으며 어두워진 바닷가를 걷고 싶었다.

 

이제 나는 계획 없이 불쑥 기차를 타는 대신, 떠나기 위해 날짜를 정하고 주변을 정돈하고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고 짐을 꾸린 뒤에도 정작 떠나지 못하고 다시 날자를 헤아린다. 내가 없으면 불편해할 가족 때문에, 시간에 쫓기면서 해야 할 일 때문에 , 일정하지 못한 수입 때문에, 하룻밤을 새우고 나면 이틀을 앓아야 하는 몸 때문에 더 이상은 밤 기차를 타지 못한다.

 

쉽게 떠날 수 없기에 나는 자주 지도를 펴놓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도시를 두리번 거린다. 그곳에서 마주치게 될 낯선 풍광, 사람들, 냄새, 언어를.

 

소설을 쓰는 일은 무거운 짐을 부려 놓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삶이 만족스럽다고 느껴질 때 나는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했다. 노래를 잘 불렀거나 누군가와 이야기 하는 걸 좋아했다면 소설을 쓰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초등학생 대 아버지를 졸라샀던 스피드 스케이트는 빙판위를 달리는 즐거움보다는 발목을 죄는 아픔을 주었고, 키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농구선수가 될 수는 없었다.

 

한밤중이나 새벽, 무심코 고개를 돌렷다가 창에 비친 얼굴을 보게 될 때, 긴 시간 의자에 앉아 있던 탓에 마치 남의 몸에 들어간 듯 불편하게 걸음을 뗄 때, 소설이 결코 나를 가볍게 해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해설 중에서 /황광수 문학평론가

 

그는 일상이 되기에는 너무도 무겁고 어두운 주제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만 보더라도, 그는 고립 속에서의 자족조차 불가능할 만큼 훼손된 몸과 마음을 가진 채 비인간적으로 일그러진 삶의 조건 속에 내던져진 사람들의 일상, 그 삭막한 땅에 보습을 들이대고 자신의 영토를 개척해 가고 있다.

 

 

그런데도 그의 소설들에는 심리적 굴절이나  종교적 초월은 보이지 않는다. 여성 작가들의 소설들에 흔히 나타나는 페미니즘적 저항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의 소설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아무런 이념적 매개없이 극복하기 어려운 물질적 조건에 맞닿아 잇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의 엄숙성에 조응하고 있는 그의 문장들은 정확하고 간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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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가난'과의 줄기찬 투쟁과정을 줄거리로 삼고 있다. 가난은 자본주의 사회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극복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자연 착취의 사슬을 귾을 유일한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소비의 최소화'를 체질화할 가능성이 내포되었다는 점에서 가난의 체험은 그 자체로서 소설적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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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존재의 결핍이나 문명적 조건도 살아내면서 극복할 것! 이것이 심리적 굴절이나 종교적 초월을 허용하지 않는 서성란의 소설 윤리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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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걷히지 않을 그런 그늘이 잔뜩 서려있는 내용의 단편 모음이다.

현실은 간혹 그렇지만 소설은 대부분 극적이고 도무지 평범한 사람이 없다.

극적인 삶을 살지 않아서

어쩌면 현실과 동떨어진 이유로

나는 잘 읽지 못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번엔 잘 읽혔다는 것이다.

언젠가 문학회 수업때 선생님이 그러셨다.

쉽게 읽히는 글이 잘 쓴 글이라고...

 

여름장마때면  빗물이 뚝뚝 떨어져 양동이를 가져다 놓아야 했고

잠을 청할 때면 고요한 밤의 허공을 울리던 쥐들의 행진..

아버지의 소주병과 만화책을 바꾸고 한나절 엎드려 낄낄거리던..

종일 해가 들기도 했던..

오랜옛날 우리방이 긴시간 생각났다.

무언가 이야기를 쓸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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