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아프게 짝사랑 하라/장영희

다림영 2010. 6. 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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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기가 시작되어 캠퍼스는 다시 북적대고 활기에 넘친다. 생기에 넘쳐 빛나는 얼굴들, 희망과 기쁨에 찬 화사한 미소들, 단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해 보이는 젊은이들을 보며 나는 다시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

 

 

어김없는 계절의 순환 속에서 속절없이 세월은 흐르고, 나는 어느덧 그들의 젊음이 부러운 나이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어느 시인이 말하기를, 인생 행로에 있어 청춘을 마지막에, 즉 60대 뒤쯤에 붙이면 인간은 가장 축복받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육체가 가장 아름답고 왕성한 힘을 발휘하는 청춘에는 미래에 대한 방향 설정과 불확신으로 고뇌하고 방황하며 어설프게 지내고, 이제 어느 정도 인생의 깊은 맛으로 고뇌하고 방황하며 어설프게 지내고, 이제 어느 정도 인생의 깊은 맛을 알게 될 때는 이미 몸과 마음이 시들 대로 시들어 참된 인생을 즐길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인생이 깊은 맛을 아는 청춘, 삶에 대한 모든 답을 가지고 초연하고 담담하게 회심의 미소를 짓는 청춘-어쩐지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는다.

 

삶에 대한 끝없는 물음표를 들고 방황하며 탐색하는 모습이 있어 아름다운 시기가 청춘이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두려움이 공존하기 때문에 더욱 극적이고 신비스러운 시기가 청춘이기 때문이다.

 

 

영작문을 가르칠 때 나는 언제나 학생들에게 영어로 일기를 쓰게 하고 한달에 한 번씩 걷어서 점검한다. 자유로운 주제로 편하게 쓰는 글이라 그런지 학생들의 문장은 영문 보고서의 작위적이고 현학적인 문체보다 훨씬 더 유려하고 자연스럽다.

 

 

내가 학생들로 하여금 일기를 쓰게 하는 데는 조금이라도 영어를 더 많이 쓰게 하려는 교육적인 목적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순전히 이기적인 목적도 있다.

한 학기 동안 눈을 마주치는 나의 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생활을 하는가를 알고 싶기도 하고 , 그들을 통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나의 청춘을 대리 경험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읽을 것을 전제로 하는데도 학생들은 아주 솔직하게 자기 표현을 하고, 일기 대신 편지로 직접 내게 상담을 구하기도 한다. 그들의 일기는 대부분 몇 가지 주제-공부에 대한 어려움, 전공에 대한 회의, 동아리 생활, 가정생활, 그리고 물론 사랑이야기-들로 겹쳐진다.

 

 

그 중에서도 자주 대하는 것은 짝사랑에 대한 고뇌와 슬픔 또는 좌절감이다. 남보다 잘생기거나 예쁘지 못해서, 키가 작아서 , 집안이 가난해서, 성격이 너무 내성적이라거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혼자 누군가를 짝사랑 하면서 괴로워하거나 지독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학생들에게 어떤말을 해준들 위로가 되겠는가만은, 내가 안타깝게 느끼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의 슬픔에 취해서 자신들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짝사랑이야말로 젊음의 특권, 아니 의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도 그 나이에는 짝사랑을 하면서 슬퍼하고 깨어진 꿈에 좌절하면서, 마치 이 세상의 모든 번민은 모조리 내 가슴속에 쌓아 놓은 듯 눈물까지 떨구어 가며 일기장에 괴로운 속마음을 토로하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어 하루하루를 그저 버릇처럼 살아가는 지금 그 '괴로운' 짝사랑들은 가슴 저리는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어느덧 불혹의 나이를 넘긴 나, 이제는 어느 정도 여유롭게 삶에 대한 포용력을 가지고 조금은 호기를 부릴 수도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렇지만 '불혹<不惑>'-보고 듣는 것에 유혹받지 아니하고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함- 이란 말은, 따지고 보면 슬픈 말이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격하지 않고, 슬픈것을 보고 눈물 흘리지 않고, 불의를 보고도 노하지 않으며, 귀중한 것을 보고도 탐내지 않는 삶은 허망한 것이리라.

그것은 즉 이제는 치열한 삶의 무대에서 내려와 그저 삶을 관조하는 구경꾼으로 자리바꿈했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아니, 어쩌면 '불혹'이란 일종의 두려움, 삶의 한가운데로 다시 뛰어들 용기가 없는 데에 대한 슬픈 자기 방어를 말하는 지도 모른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짝사랑이란 삶에 대한 강렬한 참의의 한 형태이다. 충만한 삶에는 뚜렷한 참여 의식이 필요하고, 거기에는 환희뿐만 아니라 고통 역시 수반하게 마련이다. 우리 삶에 있어서의 다른 모든 일들처럼 사랑도 연습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짝사랑이야말로 성숙의 첩경이고 사랑연습의 으뜸이다. 학문의 길도 어쩌면 외롭고 고달픈 짝사랑의 길이다. 안타깝게 두드리며 파헤쳐도 대답 없는 벽 앞에서 끝없는 좌절감을 느끼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는 자만이 마침내 그 벽을 허물고 좀더 넓은 세계로 나갈 수 있는 승리자가 된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이여, 당당하고 열정적으로 짝사랑하라. 사람을 사랑하고, 신을 사랑하고, 학문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저푸른 나무 저 높은 하늘을 사랑하고, 그대들이 몸담고 있는 일상을 열렬히 사랑하라.

 

 

사랑에 익숙지 않은 옹색한 마음이나 사랑에 '통달'한 게으른 마음들을 마음껏 비웃고 동정하며 열심히 사랑하라. 눈앞에 보이는 보상에 연연하여, 남의 눈에 들기 위해 자신을 버리는 사랑의 거지가 되지 말라.

 

 

창밖의 젊은이들을 보며 나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불혹'의 편안함보다는 여전히 짝사랑의 고뇌를 택하리라고, 내가 매일 대하는 저 아름다운 청춘들을 한껏 질투하여 나의 삶을, 나의 학문을, 나의 학생들을 더욱더 열심히 혼신을 다해 짝사랑하리라.

 

 

언젠가 먼 훗날 나의 삶이 사그라질 때 짝사랑에 대해 허망함을 느끼게 된다면 미국 소설가 잭 런던과 같이 말하리라. "먼지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재가 되겠다" 고 . 그 말에는 무덤덤하고 의미없는 삶을  사는 것 보다는 고통을 수반하더라도 찬란한 섬광 속에서 사랑의 불꽃을 한껏 태우는 삶이 더 나으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명수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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