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늙으면..

다림영 2010. 6. 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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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그렇게 장난을 치고 일을 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안뽕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가서 목욕탕 때밀이를 하다가 돈을 조금 모아서 고향으로 돌아와 택시를 오래 운전하다가 고엽제의 후유증으로 지금은 월남전 참전 용사 사무실을 지키며 방귀를 뿡뿡 뀌고 있다.

 

 

순창에 살며 우리 동기 동창들의 연락책을 맡고 있기도 하는 그에게 가면, 우리동창 누가 돈을 얼마갖고 있고, 어떤 놈이 누구돈을 얼마를 떼어먹고 내뺐다는 것까지 훤히 알 수 있다. 어느날 나에게 새로 나온 비아그라라며 파란 알약을 하나 주길래 간직하고 다니다가 우리 학교선생을 주었다. 물론 그 선생이 그것을 사용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음담패설을 시작하면 끝이 없고, 택시 운전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하면 또 날이 샌다.

 

 

어느날이었다. 어떤 사람이 남원을 가자고 해서 차를 타라고 했는데 한 20분쯤 가다가 뒤가 허전해서 뒷좌석을 돌아다보았더니, 손님이 없더란다. 그 손님이 뒷문을 열고 짐을 실으려고 하다 문이 닫혔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출발을 해버렸다는 것이다.

 

 

여자 손님을 모시고 가다가 일어났던 불미스러운<?> 이야기며, 시골 할머니들에게 택시비 떼어먹힌 이야기들을 지치지도 않고 털어놓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어야 한다.

인정 많고, 만나면 한 순간도 웃음을 멈추지 않게 만들어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안뽕, 그는 지금은 예순고개를 발딱 넘겼지만 방귀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순창농고 운동장을 꽝꽝 울릴 만큼 그 기가 죽지 않았다.

 

 

그는 재미있고 웃기는 놈이지만, 사실은 부지런하고 늘 실속을 챙기는 놈이다. 그러나 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기 인생이 만만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그는 작은 고을 순창 읍내, 그 읍내 정서가 만들어낸 사람이다. 적당히 음습하여 곰팡이가 된 읍내 다방처럼 술 마시며 할 짓은 다해도, 어떻게든지 아들딸은 잘 길러내려고 열을 올리는 놈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제 그 놈은 아들딸들 다 취직시키고 시집 장가가지 보내고 뱃속 편하게 살 나이에 여러 번 장과 간 수술을 했다. 자기 아들의 장을 이식받았다는 기사를 어느 지방 신문에서 보았다. 지금도 내가 신문에 나거나 TV에 얼굴을 비치면 제일먼저 전화를 한다.

 

 

파란만장은 아니더라도 그도 우리 시대 60대초반이 겪은 60,70,80,90년대를 나름대로 겪어냈다. 격랑은 아니었도 풍랑은 겪어낸 것이다.

 

늙으면 편해진다. 죽을 날이 가깝기 때문이다. 올봄 나는 일이 있어 우리들의 모교에 들렀다. 운동장을 보며 그때 그 시절 그 방귀소리가 생각나 나는 혼자 웃었다. 지나간 날들은 늘 그립고 또 아쉬운 것이다.

 

김용택의 <사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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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면 편해진다. 죽을 날이 가깝기 때문이다"...

정말일까?...

그렇다면 늙기를 학수고대하겠다.

그때쯤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저 편.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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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에 기운을 얻어 오늘을 걷는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다.

내일은 선거일이고 이런저런 분분한 이야기 속에 나도 한표를 행사해야 할 것이다.

깔끔한 마무리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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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의 책이 참 잘읽힌다. 어려운 책을 읽다가 읽다가 결국엔 손을 들고  다시 빌려야 했다. 내게 맞는 편한 이야기를 읽으면 될 것인데 욕심만 많아서 시간을 흘려보내고 말았다.

손님 없어 지루한 한낮 쏟아지는 졸음을 밀어낸 '사람'이야기에 웃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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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의 말씀처럼 지나간 시간들이 그립기만 하다.. 아쉽고 아쉽기만 하다..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본다.

눈부신 6월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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