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방랑시작/재연스님 산문집

다림영 2010. 5. 7. 18:55
728x90
반응형

 

 

 

 

본문중에서

 

 

"아름다움이란 게 뭘까?"

이 밑도 끝도 없이 막연한 질문에 쉬이딸은 마치 진즉부터 준비해두고 누군가 물어오기를 기다린 철학자처럼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무언가 있을 자리에 있을 때 아름다운 거야."

 

나는 한동안 말을 잃고 어린아이의 눈을 빤히 들여다 보았다. 사실 엉뚱한 대답을 기대하면서 던진 질문이기는 했지만 그리 쉽사리 그토록 엄청난 대답이 나오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문득 아름다움이라는 우리말의 어원을 '자기다움'이라고 설명한 한 시인이 생각났다. 어떤 것이 자기다울 때, 즉 돼지가 돼지다울 때, 사내가 사내 다울 때 아름답다는 말인데 쉬이딸의 대답 또한 그에 못지 않은 것이었다.

 

..

 

내가 아는 수행이란 특정한 견해의 틀을 벗고, 사실을 있는 바 그대로 보고자 하는 온갖 형태의 노력을 통칭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연기법과 무상의 다른 이름이다. 또 연기법과 무상의 안경이란 색깔과 도수, 테와 틀을 모조리 부수고 없앤, 그래서 곰팡버섯을 곰팡버섯으로, 제비꽃을 제비꽃으로 보는 맨눈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식의 수행이 불교도만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 어찌 보면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정상적인 인간의 지극히 이지적인 행위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의 과정과 열매가 곧 자비에 바탕을 둔 실천이어야 된다는 붓다의 가르침 속에서 이것은 비로소 수행이 되며, 불교는 헤아리기 어려운 깊이와 넓이를 더한 종교가 된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이와 같은 실천의 대상은 나를 포함한 모든 존재이며, 수행이란 다시 나 자신의 객관화, 나 아닌 다른 것들의 주체화, 나아가 그러한 구별이나 흔적조차 모두 넘어서는 길이다.

 

 

이땅에서 인도인들과 어울려 사는 한 나는 인도라는 거울을 통해서 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때로는 안타깝고, 밉고,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따듯하게 안아주고자 스스로를 어르고 다독거린다. 굳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고 가끔 날 나무라던 도반 현음 스님의 말을 되새기지 않더라도. 

 

..

 

어느 세월에

베풀 만큼 갖출 날 오리

지금 가진 그만큼으로

나누어 쓰세

 

행운이 왔을 때 베푸세

락쉬미 또 채워줄 테니

행운이 시들 때 또한 베푸세

어차피 죄다 없어질 것을

 

또 다른 시인이 말한다.

 

덕은 쌓아둔 재물에서 나오는 게 아니요

베풂으로 얻어지는 것

구름은 드높고, 바다 낮지 않던가?

 

여기 구름과 바다라고 옮긴 것은 산스크리트payo-da와 payo-dhi인데 직역하면 '물을 주는 것'과 '물을 간직하는 것' 이라는 뜻이다. 비를 뿌려주는 구름은 고결한데, 물을 품고 있는 바다는 못나고 지저분하다는 것이다. 요샛날 소유와 분배의 평등 어쩌고 핏대 세워 떠들었다가는 이미 갈 데를 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꼭 그게 두려워서가 아니라도 똑같이 나누자거나 베풀며 살자고 설득할 생각은 없다.

 

 

다만 락쉬미를 사랑하되 끌어안는 방법이 바른 것이어야 하고, 쓰되 남 눈치도 좀 살피며 쓰자는 것이다. 그리고 옳지 않게 그러모아 옭아쥐고 있는 사람은 까락까락 챙겨서 벌주는 세상이어야 한다. 벌은 주지 못해도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게 만들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사실 돈독은 그것 자체로 무서운 벌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느긋하게 "내버려두어도 다음 생에 빌어먹게 될 거니까 마음 쓰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이 싫다. 독사에 물린 사람은 저 혼자 죽고 말겠지만 돈독에 든 사람은 애꿎은 사람들을 죽이기 때문이다.

 

 

-------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중 하나를 포기해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행사를 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을 포기하며 그 금액만큼으로 어려운 아이들을 돕기로 하는 것이다.

 

좋은 프로그램을 들으며  스님의 글을 덮게 되었다.

스님은 인도에 계시면서 그곳의 일상들을 산문으로 모았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고 읽고 또 읽어야 할 이야기도 많다.

누군가 나를 보면 말끝마다 '수행중' 이라고 이야기하고는 했다.

부끄럽다.

..

언젠가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에 단 한명의 어린이라도 굶어죽어가고 있다면 배부르게 먹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죄악이라고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