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노파가 있다. 꼭 다문 입술, 쑥 들어간 눈, 쭈글쭈글한 목살과 흰 머리카락, 희망이라고는 전혀 남아짔지 않은 듯한 눈빛. 그러나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는 어쩔 수 없이 먹고 살아야 하는 육체를 가진 인간이기에 오늘도 동냥 그릇을 들고 길을 나서는 처연함.
이 작품은 장조화 <1904-1986>가 1937년에 그린 것으로 제목은 <걸인노파>다. 중국의 거리는, 1931년 만주사변 이후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유랑민들과 걸인들로 넘쳐났다. 어제까지 집에 살던 사람이 오늘은 유랑민의 무리에 합류했고 아직까지 집을 떠나지 못한 사람도 유랑민처럼 살아가지는 마찬가지였다.
장조화의 <걸인노파>는 이렇게 넘쳐 나는 유랑민들을 그린 작품 중하나다. 그의 작품에는 무수히 많은 유랑민이 등장한다. 앉은뱅이, 맹인, 혹부리영감등 장애인을 비롯하여 눈 먼 점쟁이, 구걸하는 아이, 넝마주이 등하루를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고단한 인생들이 묘사되어 있다. 말이 좋아 유랑민이지 모두 걸인이다.
그중에서 특히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그림은 어린아이와 노인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사회에서 가장 약하고 힘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걸인노파>를 보는 순간 어떤 말로도 표현 할 수 없는 스산함이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노파는 비록 말이 없지만, 동냥 그릇하나와 지팡이에 의지하여 목숨을 연명해 가야 하는 걸인의 삶을 이보다 더 절절히 보여주는 작품이 있을까.
거친듯 하면서도 부드럽고, 진한 듯 하면서도 연하게 풀어지는 먹 속에서 감정과 느낌을 가진 생명이 탄생한다. 채색을 전혀 쓰지 않고서 오직 먹 하나만으로도 한 사람의 모습을 온전하게 그려 낼 수 있다는 것을 <걸인노파>는 말해준다.
그 당시 많은 화가가 걸인과 유랑민을 그렸지만 장조화의 작품이 감동을 주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장조화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병으로 세상을 뜨자 집을 나와 유랑민이 되엇다. 그리고 열여섯 살 때까지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녔다. 이때의 체험이 그림의 밑바탕이 되었다. 스스로 유랑민으로 살았던 만큼 유랑민의 생리에 대해 장조화만큼 잘 아는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그 생활이 단순히 체험을 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상황이고 벗어날 수 없는 생활이었다면 그 참담함은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꿈을 잃지 않았다. 열여섯 살 때 상해에 가서 안 해본 일이 없을 만큼 혹독하게 살았지만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다. 그 실력을 밑천삼아 초상화와 광고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결국 스물다섯 살 되던 해 전국 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화가로서 인정받았다. 다음해인 1930년 에는 남경중앙 대학 미술과 조교수가 되었다.
1943년 9월 . 장조화는 자신의 쓰라린 과거이자 끊임없이 그림의 주제로 삼았던 유랑민의 완결판 <유민도>를 완성한다.
서른아홉 살때였다. 이는 지금도 '위대한 그림은 역사의 판단으로 부터 자유롭고 시대를 초월한다'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중국 근대 회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만약 그가 유랑민으로 인생을 끝냇더라면 우리는 <유민도>같은 위대한 작품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가 자신의 과거를 숨기려 했다면 시대를 초월하는 명작의 탄생은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그는 꿈을 잃지 않았다. 지금은 비록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지만그 믿음은 꿈은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존엄한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확신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결국 그는 자신의 믿음대로 그 고통의 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군가 장조화에게 , 성공의 비밀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열심히 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비밀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누군가 힘든 사람이 있다면 장조화를 떠올려 보자. 모든 것은 끝이 있다. 기쁨도 끝이 있는데 고통이라고 끝이 없겠는가. 장조화만이 고통의 끝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그 끝이 몇 발자국 앞에 다가와 있는지를.
-좋은생각2009년 1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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