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다림영 2010. 2. 28.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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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문태준시인

조선일보 2010/2/27

 

눈물은 압화押花다. 작지만 한데 뭉친 한 송이 꽃. 피겨 여왕 김연아가 매화 꽃망울처럼 맑은 눈물을 훔쳤다. 시큰해진 콧잔등을 오른손 바닥으로 가리고 뜨거워진 눈시울을 적셨다. 4분 9초동안 의 프로그램을 마친 직후였다. 벅차오르는 감격을 그녀는 투명한 눈물로 쏟아냈다.

 

 

나는 그때 동료들과 밥집에 앉아 있었다. 김치찌개를 시켜놓았지만 숟가락을 내려놓은 채였다. 김연아가 울자 나의 마음 안쪽엣도 누에머리처럼 꿈틀거리며 뭉클한 것이 확 퍼져 올라왔다. 속울음이었다. 맞은 편에 앉아 있던 동료는 김연아를 따라 울었다. 영혼의 호흡작용처럼 박수가 터져 나오는 밥집의 점심시간이었다. 어느 신문의 문구처럼 김연아와 함께 대한민국의 국민이란 사실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얼마나 가슴을 졸였겠어?" "정말, 어린 나이에 장하네. 장해." "오늘 처음으로 심장이 뛰었네!" 13년 만에 꿈을 이룬 김연아를 지켜보면서 밥집에 함께 둘러앉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찬사의 말을 보탰다. 아사다 마오의 스케이팅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혼신을 다해 마친 김연아의 연기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계속 펼쳐지고 있엇다.

 

 

그녀의 몸동작은 옹골차고 야무지고 유연했다. 때로는 허공을 들어올리듯이, 때로는 스다듬듯이 하는 손동작, 유연함과 박진감, 회전과 점프와 질주, 그리고 감정에 몰입한 눈매와 표정. 그 모든 움직임은 인간의 몸이 얼음 위에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이 감격의 연장은 은행의 한 지점 텔레비전 앞에 모인 사람들에게도, 그보다 더 비좁은 구두 수선집의 작고 낡은 텔레비전 앞에 모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시상식장 제일 높은 곳에 선 피겨의 여왕을 보면서 나는 그녀가 한 자서전에서 밝힌 내용을 다시 상기했다.

 

 

"13년 동안 훈련을 하면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엉덩방아를 찧었고, 얼음판 위에 주저앉아 수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런 고통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에 한 걸음 한 걸음 올라설 수 있었을 것이다."라던 그 고백. 아침저녁으로 찬 얼음 위에서 수만 번의 점프를 하면서 그녀는 올림픽 금메달으 꿈을 꾸었고 그리고 마침내 눈부시게 이뤄냈다.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녀의 인터뷰 내용이었다. 믿어지지 않지만 큰 짐을 내려놓앗고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그케 떨리지 않았다고 했다 1990년생 갓 스물을 넘긴 신세대의 첫 말로는 아주 통이 큰 말이었다. 나에게는 나만ㅇ이 유일한 라이벌이라는 그런 의미의 울찬 말이었다.

 

 

"이루어야 할 꿈이었기에 헤쳐나갔고 힘든 날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었다"고도 했다. "누구에게나 우연을 가장한 '기회'가 찾아온다. 하지만 그것을 붙잡아 행운으로 만드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라고 그녀는 익히 밝혔던 터였지만, 그리고 그녀가 강한 심장의 소유자라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피겨 여왕에 등극한 선수라고 하기에는 겸손했고 옹심이 없었고 내내 의연한 기품의 면면面面을 보여 주었다.

 

 

김연아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 적이 있다. "자유와 평범을 꿈꾸며 단순하고 쿨한 0형에 안먹는 거 빼곤 다 잘 먹는 꿈 많고 소탈한 스무 살의 피겨 스케이터" 다섯 살 꼬마 때 처음 친척이 얻어다 준 빨간 색 피겨 스케이트를 신었다는 그녀. 열네살에 최연소 국가 대표로 발탁되었던 그녀. 나는 그녀의 겁 없고 끝없는 도전의 성장과정을 보면서, 그리고 목에 건 금메달을 들어 올리며 환하게 웃게 된 그녀를 지켜보면서 어떤 에너지 같은 것이 나에게로 서서히 전파되어 오는 것을 느꼈다.

 

 

봄기운이 차가운 공기 덩어리를 밀어내고 우리의 허리 둘레를 온화하게 감싸듯이. 이런 느낌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이 나라 온 국민의 그것일 것이다. 아버지가 낫으로 나무를 깎고 칼날을 꽂아 눈썰매를 만들어 주던 옛기억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꽝꽝 언 한강에서 얼음을 지치던 사람들에게도.

 

 

또한 그 에너지는 여왕이 흘리던 눈물의 힘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고된 일을 막 긑내고 속이 다 후련하게 손을 탁, 탁 터는 희열의 순간에 캄캄하고도 고되었던, 막장 속에 갇혀 있었던 것만 같았던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물결 쳐 밀려오는 것을 몸소 체험해 본 사람은 그 눈물의 의미를 통절하게 이해할 것이다.

 

 

나는 밥집으로부터 각자의 일터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등작 뒤를 한 번 힘껏 밀어주는 김연아의 눈물의 힘을 보았다. 가슴을 쿵쾅쿵쾅 뛰게 하고, 다시 각자의 가슴속으로 들어가 어떤 의지를 들썩들썩하게 하는 피겨 여왕의 눈물. 시인 김현성은 눈물을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라고 했는데, 나는 피겨여왕의 눈물을 보면서 그녀가 오늘을 사는 많은 이들의 가슴에 봄기운을 확 끌어당겨 주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까 그녀의 눈물은 옥토에 떨어진 봄의 씨앗 같은 것일 터였다. 그리고 그 씨앗은 머잖아 움트고 여린 잎을 내밀고 줄기를 올리고 꽃을 피울 것이다. 오래오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 온존하면서, 적어도 4분 9초의 짧은 드라마를 한 번 더 떠올리면서 우리의 옥토에 떨어진 그녀의 눈물로 푸르고 자랑스러운 우리의 미래를 길러 나가자. 다가오는 봄을 뛰는 심장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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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먹을 불끈 쥐고 에너지를 받으며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 같았다.

한방울의 눈물을 함께 떨구며 무한한 어떠한 감동속에서 나도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새날. 다시 시작하는 오늘, 휴일임에도 출근하여 읽었던 책을 다시 또 읽으며 밑줄을 그어보기도 하던 중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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