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다시 시작하기

다림영 2010. 2. 2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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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들어온 이메일 목록 중 '다시 시작합니다'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어디에선가 내 글을 읽고 가끔씩 소식을 주는 고등학생 기준이의 메시지였다. 원하던 대학에 불합격해서 내년을 기약하고 다시 시작하기로 햇고, "그런 저의 결정이 올바른 것이기를 기도합니다. 선생님 격려해 주십시오"라고 적고 있었다. 비장한 각오이지만 어쩐지 자신없고 슬프게 들렸다.

 

나는 "잘 결정했군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다시 시작해 보세요. 오히려 좋은 기회로 삼으세요"라고 짤막한 답을 적어 보냈다.

그러나 사실 지금 기준이에게 그런 메시지는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립서비스로만 들릴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다시 시작할 의도도, 필요도 없는 사람의 여유 있는 호기로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래전 나는 정말 뼈아프게 '다시 시작하기'의 교훈을 배웠고, 그 경험은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기억중 하나이다.

 

1984년 여름 뉴욕 주의 주도 올버니에 있는 뉴욕 주립대학교에서 6년째 유학 생활을 하던 나는 학위 논문을 거의 마무리 짓고 심사만 남겨 놓은 채 행복한 귀국을 꿈꾸고 있었다. 지도교수 거버 박사가 워낙 깐깐하고 정확한 분인 데다가 논문 주제가 '물리적 세계와 개념 세계 사이의 자아 여행'이라는 너무나 추상적인 것이어서, 2년간 그야말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심사를 얼마 안 남기고 , 당시 LA에 살던 언니가 아프다는 소식이 왔다. 나는 어차피 곧 떠날 것이므로 차제에 기숙사 방을 비우고 LA로 가서 언니와 함께 있기로 했다.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해 그동안 책상 위에 높이 쌓였던 논문 초고들을 과감하게 다 버리고<당시만 해도 워드프로세서가 시작 단계였고 기계치인 나는 모든 작업을 전동 타자기로 해결했다>

 

 

내 전재산-옷 몇 벌, 책 몇십 권 그리고 논문 최종본-을 모조리 트렁크 하나에 집어 넣었다. LA에서 마지막 원고 수정을 한 후 논문 심사 날짜에 맞춰 돌아올 셈이었다.

그러나 내가 LA에 도착하자마자 언니는 한국에 가서 쉬었다 오기로 결정하고 서울로 떠났고, 같은 날 나는 다시 뉴욕행 비행기를 탔다.

 

 

케네디 공항까지 마중 나와 준 친구는 올버니로 가기 전에 차나 한잔하자며 나를 그린위치 빌리지에 있는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그 친구 집에 들어가서 한 10분쯤 지났을까. 막 커피를 마시려는데 열 살짜리 친구 딸이 들어오 도둑이 차 트렁크를 열고 내 짐 꾸러미를 몽땅 훔쳐 달아났다고 전했다.

 

 

내 논문, 내 논문.... 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어떻게 올버니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없다. 친구가 함께 와준다는 것을 뿌리치고 깜깜한 밤에 기차를 타고 어찌어찌 기숙사로 돌아와서 방문을 잠갔다. 전화도 받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채 꼬박 사흘 밤낮을 지냇다.

 

 

두꺼운 비닐 커튼은 내가 닫고 간 그대로였고, 8월 중순이었으니 무척 이나 더웠을 텐데 더위나 배고픔을 느낄 기력도 없이 그냥 넋이 나간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목발을 짚고 눈비를 맞으며 힘겹게 도서관에 다니던 일, 엉덩이에 종기가 날 정도로 꼼짝않고 책을 읽으며 지새웠던 밤들이 너무나 허무해 죽고 싶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외롭고 힘들어도 논문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만을 희망으로  삼고 살아왔는데, 이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셈이었다.

 

 

닷새쯤 되는 날 아침, 눈을 뜨니 커튼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스며들어 어두침침한 벽에 가느다란 선을 긋고 잇었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호기심이 일었다. 잃어버린 논문과는 상관없이 사람이 닷새동안 먹지 않고 누워 있으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지금의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어지러움을 참고 일어나 침대 발치에 있는 거울을 보았다.

 

 

헝클어진 머리에 창백한 유령같은 모습이 나타났다.가만히 내 눈을 들여다 보았다.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내 속 깊숙이에서 어떤 목소리가 속삭이는 것이었다.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기껏해야 논문인데 뭐. 그래, 살아 있잖아..., 논문 따위쯤이야.'

 

 

선택의 여지가 없어져 본능적으로 자기방어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랏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절체절명의 막다른 골목에 선 필사적 몸부림이 아니었다. 조용하고 평화롭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일어서는 순명順命의 느낌, 아니, 예고 없는 순간에 절망이 왔듯이 예고 없이 찾아와서 다시 속삭여 주는 희망의 목소리였다.

 

 

나는 이제 지구상에 내게  남은 단 한 가지 소유물인 내 손가방을 뒤져 보았다. 껌 두개, 조카에게 주려고 LA공항에서 샀던 레이커스 농구팀티셔츠, 체크북 그리고 손지갑 속에 든 20달러 한 장이 전부엿다. 우선 샤워를 하고 레이커스 티셔츠로 갈아입은 다음 캠퍼스 스낵바에 가서 닭튀김을 한 열조각쯤, 거의 토할 지경까지 먹었다. 그리고 나서 논문 지도교수인 거버 박사를 찾아갔다.

 

 

미리 연락드려 사정을 알고 잇었던 거버 박사는 두 팔 벌려 반갑게 맞아주셨다.

"오늘쯤 올 줄 알았다. 아닌 게 아니라 웨스트부룩 박사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영희는 그대로 주저앉을 사람이 아니라고, 곧 올 거라고 얘기했었지. 넌 뭐든 극복하는 사람이니 <You're a survivor>. 이제 경험이 많으니까 더 좋은 논문을 쓸 수 있을거야."

 

 

거버박사는 올버니로 오는 기차안에서 울다가 잃어버린 콘택트렌즈를 새로 사라고 100달러를 주셨다.

거버박사의 주선으로 과에서는 다시 강사 자리를 주었고, 도서관에서는 잃어버린 몇십권의 책 반납을 면제해 주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정확히 1년후 나는 다시 논문을 끝냈다.

 

15년이 흐른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가슴이 내려앉을 정도로 힘든 경험이엇다.그러나 그 경험을 통해서 나는 절망과 희망은 늘 가까이에 있다는 것, 넘어져서 주저앉기보다는 차라리 다시 일어나 걷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끝낸 내 논문은 이제 반짝거리는 젊은 학자들의 논문에 비하면 내놓을 만한 것이 못될지 모르지만, 맨 첫 페이지만큼은 누가 뭐래도 자랑스럽다. 헌사에서 나는 '내게 생명을 주신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께 이 논문을 바칩니다. 그리고 내 논문 원고를 훔쳐가서 내게 삶에게 가장 중요한 교훈- 다시 시작하는 법을 가르쳐 준 도둑에게 감사합니다'라고 적었다.

 

 

누군가 지금 기준이처럼 불합격과 실패의 좌절을 안고 다시 시작하면서 슬퍼하는 사람이 잇다면, 도둑에게 헌정한 내 논문을 보여 주면서 "인생이 짧다지만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1년은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말해 주고 싶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장영희 에세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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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읽었던 류시화의 인도여행기의 한 말씀이 생각난다.

아마도 지은이가 죽을뻔 했었던가..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 수레를 끌던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너때문에 죽을뻔했다면서...

..

인도의 아이는 이렇게 말했던가..

"당신은 이렇게 살아있다. 무엇이 문제냐?..."

 

나는 살아있다. 오늘을 느끼며 올림픽 중계를 보며 함께 약간의 눈물방울을 비치기도 하면서 생생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무엇이 문제인가!

절체절명의 순간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나 다시 시작하는 아름다운 이의 투지를 스승삼아 최선을 다하는 나의 하루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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