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산에는 꽃이피네

다림영 2009. 11. 11. 15:00
728x90
반응형

가난한 삶

 

산에서 살아 보면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겨울철이면 나무들이 많이 꺾이고 만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덕않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면 꺾이게 된다.

 

 

깊은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들이 꺾이는 메아리가 울려올 때 우리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정정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에 넘어지는 그 의미 때문일까.

산은 한겨울이 지나면 앓고 난 얼굴처럼 수척하다.

-법정스님 수상집<영혼의 모음> 중에서

 

 

십년 전 내가 법정 스님을 뵈러 불일암으로 찾아갔던 것은 사실 어떤 깨달음의 말슴이나 진리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이미 인도와 외국의 여러 가르침들로 머리가 포화 상태였고, 사실 무지의 문제가 아니라 과다한 지식의 문제에 걸려 넘어지고 있었다. 이제가지 해오던 명상서적 번역일도 그만둘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문득 차를 타고 남도 지방으로 내려갔고, 발길을 그분의 처소로 돌린 것이다. 경지를 시험하기 위한 선문답이나 심도 깊은 사상 철학을 논하기 위해 그 무더운 여름날에 그곳까지 찾아간 것은 물론 아니었다.

 

 

나는 다만 오두막 옆 밭둑에 서 계신 스님 모습이나, 방문 앞 섬돌에 놓인 그분의 신발 정도를 한번 보고 싶었을 따름이다. 한 인간이 가진 존재와 향기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고자 한 것이다.

 

 

유태교 신비학파의 한 수도자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내가 메즈리츠의 늙은 랍비를 찾아갔던 것은 그에게서 율법을 배우고자 함이 아니었고, 다만 그가 신발끈을 매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스님께서도 어느 글에선가 운문사에 다녀오신 뒤 그곳의 섬돌위에 놓여 있던  백서른 켤레의 흰 고무신들을 인상 깊게 적으신 적이 있다. 어찌보면 백마디의 설법이나 현명한 발언보다 문 앞에 놓인 그분의 신발 한 켤레가 더 많은 속내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

 

 

그 동안도 그렇고, 이 책을 엮으면서도 여러 차례 스님을 뵙는 자리에서 나는 사실 그분으로부터 어떤 삶의 지혜로운 경구나 개달음의 설교를 장황하게 들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오히려 그분이 들고 다니는 오래된 가방, 겨울이면 쓰시는 낡은 털모자, 정구화처럼 생긴 검은 색의 단순한 신발로부터 더 많은 걸 느낀다.

 

 

 

한 번은 서울 길상사에 오셔서 식사를 하시고는 반찬의 많은 음식이 아니었다. 그리고 누군가 요즘 절에서는 다  이렇게 먹는다고 하자 , 그분은 세상의 모든 절이 그렇다 해도 이곳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단호히 못박으셨다.

 

 

인간은 최소한 얼마 만큼을 소유해야 인간으로 살아 갈 수 있을까. 또 역설적으로 얼마만큼  이상을 소유하면 인간성을 상실하게 되는 걸까. 스님을 만나면 이 매우 중요한 질문에 대한 살아 있는 척도를 보는 듯하다.

 

 

랍비의 신발끈 얘기를 했던 그 수도자는 자신의 스승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보라. 저기 경전과 율법보다도 더 살아 있는 경전이 오고 있지 않은가.'

감히 말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넘쳐나는 것은 경전과 율법이며 우리에게 턱없이 부족한 것은 그 경전과 율법이 그대로 실천된 삶이지 않은가.

-엮은이

 

 

가난한 삶

아기예수의 탄생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볼 기회입니다. 탄생은 한 생명의 시작일 뿐 아니라, 낡은 것부터 벗어남이긷 합니다.

 

 

가난한 자와 버림받은 자들 곁에 계셨던 그분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임을 우리는 상기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온갖 시련과 고통, 그리고 갈등과 분열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그 누구도 아닌 우리들 자신이 뿌려서 거두고 있는 분수 밖의 욕심. 바로 그 열매입니다.

 

 

우리는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넓은 껍질을 벗고 새롭게 움터야 합니다. 낡은 껍질을 벗고 새롭게 움터야 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고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본래 무일물本來無一物.마음의 문이 열려야 그 안에서 영혼의 메아리가 울립니다.

 

 

오늘 우리 곁에 오신 하느님의 아들께 비옵니다. 마음 속  깊이 좌절의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 위로를 주시고, 오만해 지기 쉬운 이들이 겸손과 포용의 덕을 지니도록 깨우쳐 주소서. 그리고 이 나라가 지금 겪고 있는 시련과 고통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아멘<성탄메시지 중에서>

 

 

나는 이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어떤 절이나 교회를 물을 것 없이, 신앙인의 분수를 망각한 채 호사스럽게 치장하고 흥청거리는 것이 이 시대의 유행처럼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절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안으로 수행하고 밖으로 교화하는 청정한 도량입니다. 진정한 수행과 교화는 호사스러움과 흥청거림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병들기 쉽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이 평화를 이루게 하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합니다.

 

 

이 길상사는 가난한 절이면서도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었으면 합니다. 불자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부담없이 드나들면서 마음의 평안과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길상사 개원 법문에서>

 

 

 

신앙생활은 끝없는 복습이다. 신앙생활에는 예습이 없다. 하루하루 정진하고 익히는 복습이다. 영적인 체험은 복습의 과정을 통해 얻어진다. 종교적인 체험이란 하루하루 비슷하게 되풀이되는  복습의 과정을 통해서 얻어진다.

 

 

복습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어제의 정진은 어제로서 끝나고 오늘은 오늘대로 새로운 시작인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사바세계라고 한다. 사바세계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산스크리트에서 온 것으로, 우리말로 하자면 참고 견뎌 나가는 세상이란 뜻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참는땅'이라는 것이다.

 

 

참고 견디면서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에 거기에 삶의 묘미가 있다. 모든 것이 우리 뜻대로 된다면 좋은 것 같지만 그렇게 되면 삶의 묘미는 사라진다. p67

반응형

'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에는 꽃이피네  (0) 2009.11.19
산에는 꽃이피네  (0) 2009.11.14
산에는 꽃이 피네  (0) 2009.11.09
산에는 꽃이피네  (0) 2009.11.04
산에는 꽃이 피네   (0) 2009.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