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려움을 통해서 그걸 딛고 일어서는 새로운 창의력을, 의지력을 키우라는 우주의 소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성인이 말씀하기를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고 했다. 장애가 없는 건 어디에도 없다. 한평생 세상을 살다 보면 무수한 장애물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 자리에 오면서 얼마나 많은 장애물을 헤치고 왔는가. 그러므로 인생이란 일종의 장애물 경주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경주이다.
해탈이란 무엇인가. 그런 장애물을 넘어서 안팎으로 자유로워진 상태, 안팎으로 홀가분해진 상태, 이것을 해탈이라 부른다. 장애라는 것은 해탈에 이르는 디딤돌이다. 발판이다. 그런 장애가 없으면 해탈도 있을 수가 없다.
장애 없길 바라선 안 된다. 장애는 해탈의 길로 이어진 길목이다. 그러므로 장애를 거부하지 말고 그걸 받아들이라고 옛성인은 말하고 있다. 장애 없이는 해탈이 불가능하다.
또 성인은 말씀하기를 '작은 이익으로써 부자가 되라'고 하셨다. 작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행복의 비결은 결코 크고 많은 데 있지 않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 어떠한가. 모두가 입만 열면 경제 이야기만 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경제만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 그런 일에만 치우치고 있다.
오늘날 경제가 어려운 것은 일찍이 우리가 큰 그릇은 만들어 놓지 않고 자구 욕심껏 담기만 하려고 한 결과이다. 이 불황은 우리들 마음이 그만큼 빈약하다는 증거이다.
그릇을 키우려면 눈앞의 이익에 매달리지 말고 마음을 닦아야 한다. 개체를 넘어서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소욕지족少欲知足.적은 것으롰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그래야 넉넉해 진다.
저마다 자기 나름대로의 꽃이 있다. 다 꽃씨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옛성인이 말했듯이 , 역경을 이겨내지 못하면 그 꽃을 피워낼 수가 없다. 하나의 씨앗이 움트기 위해서는 흙속에 묻혀서 참고 견디어 내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바세계, 참고 견디는 세계라는 것이다.
여기에 감추어진 삶의 묘미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사바세계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하기 바란다. 극락도 지옥도 아닌 사바세계, 참고 견딜 만한 세상, 여기에 삶의 묘미가 있다.
어떤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그것을 전체로 생각해선 안된다. 막다른 길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우리 전생애의 과정에서 볼 때 그것은 통과해야 할 하나의 관문이다. 한생애를 두고 그런 관문이 한두 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몇 고비가 있다. 그런 관문을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정신적인 연륜이 쌓여가는 것이다. 육체적인 나이만 먹는 것이 아니고 그런 어려운 관문을 거칠 때마다 정신적인 나이가 쌓여간다. 그것을 통해 새로운 눈이 열린다. 그래야 인간이 성숙해진다.
눈앞의 일만 갖고 너무 이해관계를 따져선 안된다. 전생애의 과정을 통해서 늘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고뇌에서 벗어나려면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우선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작은 것을 갖고도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의 행복은 큰 데 있지 않다.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조그만 데 있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자작나무 의 잎에도 행복은 깃들어 잇고, 벼랑 위에 피어있는 한 무더기 진달래 꽃을 통해서도 하루의 일용할 정신적인 양식을 얻을 수 잇다.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 속에 행복의 씨앗이 들어 있다. 빈 마음으로 그걸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크고 많은 것에 정신 파느라고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잘 살려고만 했기 대문에 작은 것을 갖고는 만족할 줄 몰랐다. 무엇을 갖고도 만족할 줄 모른다.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이 가진 대로, 적게 가진 사람은 적게 가진대로 만족할 줄 모른다
고뇌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먼저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만족할 줄 아는 것은 부유학 즐거우며 평온하다. 그런 사람은 맨땅 위에 누워 있을 지라도 지극히 편안하고 즐겁다. 그러나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설령 극락이나 천상에 있을 지라도 흡족하지 ㅇ낳을 것이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겉으론 가난한 듯하지만 안으론 부유하다. 왜냐하면 자기 현실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똑 같은 상황 속에 살면서도 어떤 사람들은 만족할 줄 알고 어떤 사람들은 늘 불만을 갖는다. 만족할 줄 알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모든 게 긍정적으로 일이 풀렷다. 그러니 ㅁ나족할 줄 모르고 거기서 다시 또 뭔가를 하려고 하면 자기 앞에 돌아온 몫가지도 걷어차 버린다.
하나가 필요할 때 하나로써 ㅁ나족해야지 둘을 가지려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된다. 그건 허욕이다. 하나로써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은 그 하나 속에 있다. 둘을 얻게 되면 행복이 희석 되어서 그 하나마저도 잃는다.
흔히 이렇게 말하면 그러다 언제 잘 살겠느냐고 하겠지만, 이런 어려운 시대에는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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