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고전에서 발견한 삶의 지혜/이택용

다림영 2009. 11. 2. 21:12
728x90
반응형

 

나는 옛 선인들의 지혜로움이 가득 들어 있는 이런류의 책을 좋아한다.

약기운으로 졸음이 쏟아지는 속에서도 넘겨지는 책이다.

작년다르고 올해다르단 말씀을 절감하는 나날이다.

쉬이읽혀지는 책을 고르게 되고  잘 읽혀지지 않는 어려운책은 기피하고 있다.

책과의 거리가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하루가 온통 책이었던 처음을 돌아본다.

잊지 말아야 하겠다.

 

바람은 차기만하고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손님의 내왕도 자연 줄어들 것이다.

신종플루의 초비상으로 사방이 고요하다.

졸음속에 하루가 흘러간다. 책을 덮는다.

 

.......

 

君子以同道爲朋

小人以同利爲朋

 

군자는 도를 같이 함으로써 벗이되고,

소인은 이해를 같이함으로써 벗이 된다.

 

군자는 벗을 사귐에 사람 그 자체를 본다. 그의 인격과 세계관을 보는 것이다.

군자는 이얷이 부합하는 사람을 벗으로 삼는다. 하여 군자의 벗은 도반道伴이다.반면 소인은 친구를 고르는 데도 사귐의 이반利伴을 벗어나지 못한다.

 

벗을 고르는 기준을 보면 그가 추구하는 바를 알 수 있고, 그가 추구하는 바를 알면 그의 사람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人生何處不相逢

 

인생이란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르는 것이다.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된다. 세상사 늘 양지만도 없고 영원한 음지도 없는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내가 칼자루를 쥐고 있지만 내일 저 자리에서는 내가 칼날을 쥐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인생이다.

 

 

이렇듯 수시로 입장이 변하는 인생이니 모름지기 박하게 살 일이 아니다.

처하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접을 상대에게 베풀 수 있으면 좋다. 설령 최선의 대접은 못할지라도 상대의 가슴에 못을 박지는 않을 일이다. 다음에 다른 자리에서 그가 칼자루를 쥐었을 때, 나에게 은혜를 느끼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적개심을 갖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벼슬자리에 있다고 해서 늘 귀하지도 않고 일반 백성이라 하여 언제까지나 비천하지도 않다. "

 

입장이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의 갑甲이 내일의 을乙이 될 수 있다. 을이 갑에게 잘하는 것은 능력이다. 반면 갑이 을에게 잘하는 것은 덕德이다. 능력만이 아니라 덕도 갖출일이다. 자기 보호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以責人之心責己

恕己之心怒人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나를 꾸짖고

나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한다.

 

스스로를 꾸짖음에는 소흘하고 남을 꾸짖음에는 엄격한 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성정이다. 나의 대과大過는 이해가 되지만 남의 소과小過는 참을 수가 ㅇ벗다. 오죽하였으면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 제 눈속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 라는 성서의 말씀이 있겠는가. 인간 세계의 분열과 갈등의 원인은 인간의 이러한 본능적인 공정성결여에 있다.

 

 

하늘의 이치인 '관계의 공정함'을 취하는 것이 인간 세계의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는 길의 첫 단계이다.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구약성서 <잠언>."성서의 하느님ㄷ 공정함을 기뻐하신다.

 

 

어떻게 공정함을 취하는가? 너와 나를 재는 자尺가 같아야 하는 것이다. 즉 너와 나를 같은 기준으로 대하면 되는 것이다. 나를 잴 때는 인치inch자를 쓰고 남을 잴 때는 미터meter자를 써서는 공정할 수 없는 것이다.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나를 꾸짖고 나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는 것, 바로 이것이 인간관계의 공정함을 담보하기 위한 전제인 것이다.'

 

"남의 잘못에 대하여 관대하라. 오늘 저지른 남의 잘못은 바로 어제 나의 잘못이었던 것을 생각하라."

 

남과 나를 같은 자尺로 재어보면 남의 잘못에 관대해질 수 밖에 없다는 세익스피어의 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