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여행생활자/유성용

다림영 2009. 10. 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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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오면 이 마을을 떠나 나는 또 다른 어딘가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 샨티스투파에 올랐던 다른 이들도 어딘가로 떠날 것이다. 하지만 어느 곳으로 향하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생활에 찌든 자들은 산정으로 올라야 하고 죽음에 찌든 자들은 마을로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분명 그 길은 넓게 열려 있어야 한다. 그 길을 막아두고 자동펌프처럼 생활의 의욕만을 자꾸 밀어붙이는 사회는 참으로 무서운 사회일 것이다. 그대가 생활에 붙박여 있다면 마음속에나마 저만의 산정 하나쯤 마련해두길 바란다. 그곳에서 언제라도 세상 끝으로 다가가 다시금 길을 잃을 수 있도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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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대부분은 밋밋하고 지겨운 일상이다. 우리를 온통 적시는 소나기는 평생에 몇번 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잠시 반짝이고 사라지는 것을 좇아 일생을 사는 일은 그리하여 삶의 대부분을 배반하는 위험한 짓은 아닐는지. 기나긴 기다림의 순간에는 의심스런 의지만으로 견디고 그리워하며 외로웠지만 그보다 늘 맘이 아린건, 내 삶의 허방한 터전을 깨우치는 충일의 순간이다. 내 부끄럼의 일번지가 되는 곳에서 나는 그만 사고가 멈추고 만다.

 

 

밤바다는 우직하게 짙푸렀다. 어둠을 집어 삼킨, 저 짙은 푸른빛.

저 바다는 어떻게 저 광폭한 정신의 소나기들을 아무말도 없이, 아무 감격도 없이, 회한도 없이 다 맞아낸단 말인가. 바다는 가장 저급하거나 혹은 가장 완벽한 여행자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같이 해질녘이면 포구에 나가, 또 다른 소나기를 기다리곤 했다. 내 삶이 점점 더 거짓스러워지는 두려움을 견디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곳에 머무는 동안 그때와 같은 소나기는 다시 내리지 않았다. 다만 오후의 찬연한  햇살 속에서 하얗게 빛을 발하는 어느 늙은 어부의 주름진 경륜과 나는 자꾸만 눈이 마주쳐야 했다. 그러면서 이런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잠시 반짝이고 사라지는 것들은 어쩌면 정말이지 잠시 반짝이고 사라져야 하는 것들이 아닌지.

 

나는 왜 그걸 좆아 일생을 살려 하는가. 나는 이국의 어느 불편한 침대에 누워 잠을 못이루고 나의 업보와 욕망을 넘어서는 자리에서 심각하게 고민해본다. 잠시 반짝이고 사라지는 것들을 좆아 일생을 사는 일. 이것은 그저 내 욕망의 흐름인가 아님 내 삶의 가치인가. 내 설령 마지막에 내 생의 가장 진실한 뼈아픈 후회를 남길지라도 후회는 후회고 그것은 박수 받을 만한 일이 아닌지.

 

여행이 생활이 되는 것만큼 거짓스러운 게 세상 어느곳에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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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간에 걸터앉아 있는 동안 나는 수백명의 경건한 얼굴을 보았다. 그들의 두 손이 가슴팍에 합해질 때마다 그들의 낯빛과 함께 밝혀지는 꽃불 하나하나의 흔들림을 나는 어떻게라도 읽어보고 싶었다. 그들이 무엇을 기원하는지 알 수 없지만 마음 속 아득한 것들을 두 손 합장에 모아내는 그들의 진지한 기술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박하지만 나도 기원의 기술을 하나 안다. 자주 되뇌고, 암송하고, 잊지 않을 것. 내가 아는 유일한 기원의 기술은 이토록 아주 간단하다.

 

 

기원을 자주 되뇌고, 암송하고, 잊지 않으면, 기원이 또한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한다. 그러면 기회가 나를 스쳐 지나가지 않는다. 그것은 준비된 마음을 견지하는 것. 내 몸 구석구석 기원의 연상거리들을 포진시키고 깨어 있는 동안 늘 나의 기원을 잊지 않도록 애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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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원을 이루어낸다'는 말은 어쩌면 적당하지 않은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극진히 기원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무언가를 기원한다는 것은 다름아닌, 자신의 기원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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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하는 동안 스스로 제가 기원하는 것들의 정체를 묻지 않을 수가 없고 그것은 곧 나를 묻는 것에 가까워지지 않을 수 없다. 기원을 이해하면 그 순간 기원은 이루어지고 동시에 사라진다.

 

하지만 굳고 단단한, 극진한 기원일수록 오래도록 암송하고 되뇌어도 그 속내를 읽어내기는 더 힘이 드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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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이 아름답다고들 한다. 사람들이 가난해서 아름답다는 말인가. 가난해야 아름답다는 말인가. 아님 단지, 가난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인가. 마음이 먼저 가난 앞에 숙연해진다 해도 여전히 가난과 아름다움의 관계를 말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사실 가난하면 염치를 잃고 굴욕과 복종 속에 살기 쉽다. 그래도 그들의 단출한 가난 곁에 있으면 명확해지는 것들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꿈은 소박하고, 늘 현실 곁에 있으며 결코 막연하지 않다는 것. 생존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꿈은 군더더기가 덜하다.

 

가난이 왜 아름다운지 나는 설명할 바가 없다. 하지만 나는 늘 그들 곁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세상의 궁색해진 뻔한 행복 말고 우리가 무언가 다른 꿈을 꾸어야 한다면, 가난 속에서 나는 그것을 시작해야 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한다. 가난의 고통은 세상의 한가운데 있지만, 가난은 또한 이 세상의 한계를 일깨우는 '세상의 끝'에 있다. 그곳에서라면 다른 세상으로 나가는, 세상 끝 감각을 놓치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른

다.

 

여행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지만, 여행자가 그 말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을 때에야 그 말은 간신히 유효하다. 알아도 모른척하며 제 밖에 드러나는 길들을 오롯이 걷는 일이야말로 여행의 근간이다.

 

여행의 장소들에는 자연과 도시와 문명이 있고, 또 그 속을 살아내고 싶어서 심장이 팔딱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여행 내내 늘 그런 어느 곳인가에 있다. 그곳은 하나같이, 나의 해석과 이해 혹은 경솔한 개입과 섣부른 동정의 감정이입을 넘어서는 엄연한 장소다.

 

여행이 길어질 수록 헛된 '나'를 줄이고 차라리 이렇게 묻는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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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드디어 떠나기로 했다.

늘 집을 떠나있긴 하지만

이렇게 멀리떠나는 일은 근간에 있어처음이다.

내게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조금씩 더 멀리가는 꿈을 꾸게 되었고

드디어 행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것은 내게 있어 꿈같은 일인 것이다.

드디어 올레를 밟게 되는 것이다.

후-

 

어떻게 김포공항에 가서 체크해야 하는 것인지..훗!

혼자서 멀리가는 일이란 설레임과 두려움이 섞여 아이가 되는일인것 같기도 하다.

내가 아주 작아지는 것 같은 일인가보다.

모든 아무렇지도 않을일들이 산처럼 다가온다.

게스트하우스가 궁금하다.

내가 그곳에 도착할때면 깜깜한 밤일터인데

나는 잘 찾아 가게 될까..

아니 나는 어른이지.. 나이든 사람인것을 잠깐 잊었었다.

여행은 무엇인가?

..

그것은 다른 세상을 보고 오는 것이고 넓은곳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두려움속에 혼자가 되는 것이고 그것은 다녀오면 나를 몽땅 환기 시키는 일이고  또 그것은 아주 새롭게 태어나는 일이니까 어쩌면 그것은 아주 젊어지는 일이다.

이렇게 이렇게 두렵기도 하고 설레이기도 하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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