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초원의 바람을 가르다/신영길

다림영 2009. 9. 3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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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탕화면이었다. 내 컴퓨터의 바탕화면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바람이 다듬은 선 고운 언덕, 완곡한 에스라인의 푸른 초원과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하늘, 그리고 흰 구름.

 

 

복잡한 작업을 마치고 창을 닫으면 드러나는 곳, 그곳이 바탕화면이다. 나는 초원과 하늘이 그 바탕화면을 좋아한다. 이것 저것 바꾸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푸른 초원과 파란 하늘 그리고 흰구름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단순함으로 되돌아와 잠시나마 눈과 마음의 쉼을 얻곤 했다.

 

 

단조롭고 단순한 것. 화려하고 웅장한 것에 비해 초라해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지극한 아름다움은 단순함에 있는 경우가 더 많다. 현란한 응용기법이 난무하는 세상이지만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조용한 경구가 더욱 설득력을 얻는 것처럼.

 

 

컴퓨터에서만 보아오던 바탕화면을 그림자가 아닌 실물로 보고 있자니 기쁨이 솟구쳤다. 내 삶의 바탕화면은 무엇일가. 무슨일인가를 하다가 다시 돌아가게 되고, 다시 그곳에서부터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는곳.

 

 

사람이 겉보기에는 모두 비슷해 보이다가도 무슨일이 생겼을 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보면 의외로 놀라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사람의 밑바탕이 드러났을 때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코스모스는 한창 푸르게 짙어가는 논을 바탕으로 보아야 더 멋이 있다. 그것은 단순히 심미안의 관점을 넘어 마음속 깊이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사람도 자신을 더 잘 보이게 하는 배경이 따로 있다."

 

 

 

신영길

1958년 전북진안출생. 제약업계20년 영업. 마케팅 업무종사. 현재 진단시약 수입판매업체운영.

2006년 <고도원의 아침편지> 를 통해 바이칼 호수와 몽골에 다녀온 후 여행기<고도원의 아침편지>'신영길의 길따라 글따라'에 연재해서 큰 인기를 얻었다. 2006년 바이칼 여행기를 모아 <나는 연날리는 소년이었다>를 출간했으며, 이책 <초원의 바람을 가르다>에는 2006,2007년 몽골 여행기를 담았다. 특유의 감성으로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으며, 무명의 작가로서는 드물게 <나는 연날리는 소년이었다>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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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돈이 없다. 그래서 몸으로 때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몸으로 때우는 일이야말로 돈으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요즘, 돈만으로는 결코  살수 없는 것이다. 그나마 건강한 몸과 진실된 마음이 남아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얼마전 나의 동반자가 고교동창회에서 설악산엘 오르게 되었다. 그에게는 굉장한 소식이었고 한동안 보고 싶었던 친구를 만날수 있고 그동안 우울했던 낮은 기분들을 날려보낼 수 있는 시간이 될터였다.

 

 

대부분의  산악회가 점심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나는 남편보다  더 신이났다. 아이처럼 들뜨게 되었다. 점심은 각자가 준비해 오라는 등반대장의 엄명이 있었던 것이다.

사업의 실패로 어깨가 저 땅바닥 아래로 꺼져 있는 그의 기를 살려주고 싶었다. 그의 어깨를 세워줄 나의 각별한 기회였다.

 

 

그들의 도시락은 보지않아도 훤했고 그 이른아침에 누구도 집에서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았으리라.

나는 전날부터 별것은 아니지만 이것저것을 준비해 놓고 세시간이나 잤을까 새벽녘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고추장 양념에 재워둔 돼지불고기를 만들어 보온병에 담고, 친정엄마 밭에서 얻은 야채로 나물 대여섯 가지 만들어 색색으로 맞추어 넣고 , 찹쌀과 또 다른 두어가지 곡물을 섞어 밥을 짓고, 밥을 맛나게 비벼먹을 조금은  큰 양푼두개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노란양푼 막걸리잔까지 도시락과 함께 넣었다.<남편의 친구가 그중 하나를 가지고 갔다고 함> 기타 김치, 상추, 양념장에 데친 두부와 오이, 고추.. 기타등등을 가지런히 쌓았다.

 

 

 

한 네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을 준비한 것인데 문제는 남편이 과연 그것을 정상까지 메고 가느냐가 관건이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 않아도 정상을 오르자면 너무 힘들테니 빈가방으로 온 이에게 좀 나누라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전날 얼려두었던 막걸리만 친구가방을 빌리고,<가방에 들어가지 않아> 그무거운 짐을 고스란히 메고 끝까지 올라간 것이다.

 

 

산정상에 올라가 모두가 각자 싸온 점심을 풀어놓는데 사온김밥과 돼지족발.몇병의 막걸리.... 그것이 전부였다. 나의 남편은 너무 힘이 들고 지쳐서 아무런 생각없이 앉아 저마다 사온 김밥을 돌리는것을 받아먹고 있었고,  친구가 불현듯 가방을 풀러보라는 통에 멍석을 깔고 좌악 펼쳐 놓으니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의 주가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올라갔던 얼마전의 풍경을 그는  웃음으로 몇날 며칠을 품어댄다. 산으로 올라갈때 가방속에 있던 먹을 것들을 모두 버리고  싶었다는 얘기와 죽을 힘으로 산을 올라 정상에서 가방을 풀어 펼쳐 놓았을 때,  친구들의 그 놀라던 모습...

그렇게 쌓아오지 않은 사람은 전혀 알 길이 없는 각별함....

..

 

나의 바탕화면은 이런것이다.

돈이 아마 많이 생겨도 나는 이런일들을 고수할 것이다.  정성을 다하는 그 무엇으로 인생의 바탕화면을 깔아 두고 바꾸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문득 내 스위치를  '꾸욱' 하고 누르면  나는 멋적은 얼굴로 땀 흘린 자욱을 드러 낼 것이다.   너무나 사소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그런 모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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