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고전 읽기의 즐거움/정약용.박지원.강희맹 외 지음./신승운.박소동 외 옮김

다림영 2009. 10. 1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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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읽은 책이다. 다시 들었다. 나를 돌아보게 되는 좋은 글들이 참 많다.

내가 좋아하는 책류임에도 이번에는 도대체 며칠을 지니고 있는지 모르겠다.

추석과 여행과 이런 모든 나를 흔들리게 하는 것들로 하여 입은 곰팡이로 뒤덮였다.  

다시 몸을 추스리고 책읽기 삼매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별난 관상술/이규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관상쟁이가 있었다. 그는 관상서도 읽지 않고 관상법도 따르지 않고서 이상한 술법으로 관상을 보았으므로 사람들이 '별난 관상쟁이'라고 불렀다.

고관대작, 남녀노소가 모두 다투어 찾아가고 모셔다가 관상을 보았는데, 부귀하고 뚱뚱한 사람의 관상을 보고는

"당신은 몸이 매우 여위었으니 당신만큼 천한 이가 없겠소"

하였고, 빈천하고 파리한 사람의 관상을 보고는

"당신을 몸이 매우 여위었으니 당신 만큼 천한이가 없겠소"

하였고, 빈천하고 파리한 사람의 관상을 보고는

"당신은 몸이 살쪘으니 당신만큼 귀한 이는 드물겠소"

하였다.

 

 

또 장님 보고는 밝다고 하고. 얼굴이 예쁜 부인을 보고는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다고 하고, 세상 사람들이 너그럽고 어질다고 하는 사람을 보고는 만인을 해치는 사람이라고 하고, 매우 잔혹한 사람을 보고는 만인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가 관상을 보는 것이 대부분 이와 같았는데, 길흉화복을 제대로 말하지 못할 뿐 아니라 용모와 행동거지를 살핌이 모두 반대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사기꾼이라고 떠들어대며 잡아다가 거짓말한 죄를 다스리려고 하기에 내가 만류하기를

"말이란 처음에는 어긋나지만 나중에 가서 맞는 것이 있고, 겉으로는 가깝지만 속으로는 먼 것이 있다. 그 사람도 눈이 있는데 어찌 살찐 자, 여읜자, 눈이 먼 자를 몰라보고서 살찐 자를 여위었다고 하고, 여윈 자를 살쪘다고 하고, 눈이 먼자를 밝다고 했겠는가.

이사람은 기이한 관상쟁이임이 분명하다."

 

 

 

하고 , 목욕재계하고 단정한 차림으로 관상쟁이가 묵고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다른 사람들을 내보내고는

"그대가 아무아무의 관상을 보고 어떠어떠하다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

하고 물으니, 그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대개 부귀하면 교만하고 남을 능멸하는 마음이 자라나 죄가 쌓일 것이니 하늘이 반드시 뒤엎을 것이요, 그렇게 되면 죽도 제대로 못 먹게 될 것이므로 여위었다고 하였고, 장차 몰락하여 보잘것없는 필부가 되겠으므로 천해지겠다고 하였습니다.

 

 

빈천하면 뜻을 겸손히 하고 자기를 낮추어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닦고 반성하게 되니 고진감래라, 이는 배불리 먹을 조짐이 있으므로 살쪘다고 하였으며, 장차 만석과 십륜十輪의 부귀를 누기겠기에 귀해지겠다고 하였습니다.

 

 

 

요엄한 자태와 아름다운 얼굴을 엿보아 가까이 하고 진기한 것과 기호품을 탐내며 사람을 변화시켜 혹하게 만들고 왜곡시키는 것이 눈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헤아릴 수 없는 오욕에 이르게 되니, 이는 바로 어두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직 눈먼 사람만이 담박하여 욕심이 없고 감촉이 없어 몸을 온전히 하고 치욕을 멀리하므로 어진 이나 깨달은 이보다 나으니, 그래서 밝다고 하였습니다.

 

 

 

민첩하면 용맹을 숭상하고 용맹하면 뭇사람들을 능멸하니, 마침내는 자객이나 간당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가 붙잡혀 발에는 차꼬를 차고 목에는 칼을 쓰는 신세가 될 것이니 아무리 도망하고자 한들 되겠습니가. 그러므로 절어서 걸음을 못걷는다고 하였습니다.

 

 

미색이란 음탐하고 사치하며 교만한 자가 보면 옥구슬처럼 예쁜 것이지만, 올곧고 순박한 사람이 보면 진흙덩이와 같을 뿐입니다.그러므로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른바 어진 사람은 그가 죽을 때 어리석은 백성들이 마치 어머니를 잃은 아이처럼 사모하는 마음으로 울고불고 하므로 만인을 해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잔혹한 사람은 그가 죽을 때 거리마다 기뻐서 노리하며 양을 잡고 술을 마시며 웃느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자도 있고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치는 자도 있을 것이므로 만인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이말을 듣고 놀라 일어나

"과연 내 말대로이다. 이야말로 진짜 관상쟁이로구나. 그 말은 새겨두고 잣대로 삼을 만하다. 어찌 겉모습에 따라 귀한 상을 말할 때는 '거북무늬에 무소 뿔'이라 하고 나븐 상을 말할 때는 '벌의 눈에 승냥이 소리'라하여 왜곡에 얽매이고 상례常例를 따르며 저 잘난 체하는 무리들에게 비하겠는가."하였다.

물러나 그의 대답을 기록해 둔다. /주효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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