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장지오노/나무를 심는 사람

다림영 2009. 9. 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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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려고 한 곳에 이르자 그는 땅에 쇠막대기를 박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구멍을 파고는 그 안에 도토리를 심고 다시 덮었다. 그는 떡갈나무를 심고 있었다. 나는 그곳이 그의 땅이냐고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 누구의 땅인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는 모르고 있었다. 그저 그곳이 공유지이거나 아니면 그런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겠냐고 했다. 그는 그 땅이 누구의 것인지 관심조차 없었다. 그는 아주 정성스럽게 도토리 100개를 심었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뒤 그는 다시 도토리를 고르기 시작했다. 내가 끈질기게 물어보자 그는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 주었다. 그는 3년전부터 이 황무지에 홀로 나무를 심어 왔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는 도토리 10만 개를 심었다. 그리고 10만개의 씨에서 2만 그루의 싹이 나왔다.

 

 

그는 들쥐나 산토끼들이 나무를 갉아먹거나 신의 뜻에 따라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경우, 이 2만그루 가운데 또 절반 가량이 죽어 버릴 지도 모른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예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이 땅에 떡갈나무 1만그루가 살아남아 자라게 될 것이다.

 

 

그제야 나는 그의 나이가 궁금했다. 그는 분명히 쉰살이 넘어 보였다. 그는 자신의 나이가 쉰다섯 살이라고 했다. 이름은 엘제아르 부피에였다. 지난날 그는 평야지대에 농장을 하나 가지고 자신의 꿈을 가꾸며 살았다고 했다. 그러나 하나박에 없는 아들이 죽고 나서 아내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 뒤 그는 고독 속으로 물러나 양들과 개와 더불어 한가롭게 살아가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다. 그는 나무가 없기 때문에 이곳의 땅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달리 해야 할 중요한 일도 없었으므로 이런 상태를 바꾸어 보기로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그당시 나는 젊지만 혼자 살고 있었으므로 다른 고독한 사람들의 영혼에 섬세하게 다가갈 줄 알았다.

 

 

그런데도 나는 한 가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젊은 나이 탓에 나 자신과 관계된 일이나 행복을 추구하는 것만을 마음에 두고 미래를 상상해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느 30년 후면 떡갈나무 1만 그루가 아주 멋진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다. 만일 하느님이 30년 후까지 자신을 살아 있게 해주신다면 그동안에도 나무를 아주 많이 심을 것이기 때문에 이 1만 그루의 나무는 바다의 물 한방울과 같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벌써부터 너도밤나무 재배법을 연구해 오고 있었으며 그의 집 근처에서 어린 묘목을 기르고 있었다. 양들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쳐 놓았는데, 묘목들이 아주 아름다웠다. 그는 또한 땅 표면에서 몇 미터 아래 습기가 고여 있을 것 같은 골짜기에는 자작나무를 심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다음날 우리는 헤어졌다.

 

 

읻ㅁ해인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나는 5년 동안 전쟁터에서 싸웠다. 보병이었던 나는 나무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사실 그 옛날의 일은 나에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나는 그것을 하나의 이야깃 거리나 우표 수집 같은 것쯤으로 여겨 잊어버리고 있었다.

 

 

전쟁이 끝났을  때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군복무를 마치고 받은 아주 적은 제대 수당과 조금이라도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다는 강한 욕망밖에 없었다. 황무지로 가는 길을  다시 찾아 나섰을 때 나에게는  오직 그 생각밖에 없었다.

 

 

그곳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황폐한 마을 너머 멀리 회색빛 안개 같은 것이 융단처럼 산등성이를 덮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여기 오기 전날 부터 나무를 심던 그 양치기를 다시 생각하기 새작했다. "떡갈나무 1만 그루라면 꽨 ㅓㄼ은 땅을 차지하고 있을거야"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지난 5년동안 죽는 사람을 너무 많이 보아서 엘제라르 부피에도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20대의 나이에는 50대의 늙은이란 죽는 것 말고는 별로 할 일이 없는 사람들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그는 더 원기왕성해 보였다. 그는 생업도 바꾸었다. 양들을 네 마리만 남기고 대신 100여통의 벌을 치고 있었다.

 

 

양들이 어린 나무들을 해쳤기 때문에 치워버렸던 것이다. 그동안 그는 전쟁 때문에 불안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했다.그리고 나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흔들리지 않고 전과 다름없이 계속 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1910년에 심은 떡갈나무들은 그때 열 살이 되어 있었다.그리고 나무들은 보다 높이 자라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말문이 막혔다. 엘제아르 부피에도 말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말없이 그의 숲속을 거닐며 하루를 보냈다. 숲은 세 구역으로 되어 있었는데, 가장 넓은 곳은 폭이 11킬로미터나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아무런 기술적인 장비도 갖추지 못한 오직 한 사람의 영혼과 속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하니, 인간이란 파괴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하느님처럼 유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피에는 자기 뜻을 구준히 실천해 가고 있었다. 내 어깨에 와 닿는 너도 밤나무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떨갈나무는 들쥐나 토끼들에게 갉아먹힐 나이를 지나 빽빽하게 자라나 있었다.

 

 

만약 신이 이 창조물을 파괴 하려는 뜻을 갖고 있다면 앞으로 는 태풍의 힘을 빌려야 할 것이다. 그는 훌륭한 자작나무 숲도 보여 주었다. 5년전, 그러니까 1915년 내가 베르됭에서 싸우던 시기에 심은 나무들이었다. 땅 속에 습기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골짜기마다 자작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자작나무들은 젊은이처럼 부드러웠고 아주 튼튼하게 서 있었다.

 

 

창조란 꼬리를 물고 새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엘제아르 부피에는 그런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주 단순하게 자신이 할 일을 고집스럽게 해나갈 뿐이었다. 마을로 다시 내려오다가 나는 개울에 물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한 그 개울은 언제나 말라 있었다. 자연이 그렇게 멋진 변화를 잇달아 만들어 내는 것을 나는 처음 보았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이 말라붙은 개울에도 물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앞서 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 말했던 폐허가 된 몇몇 마을들은 옛 갈로 로망의 터전위에 세워진 것인데, 아직도 그 시대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래서 한때 고고학자들이 이곳에 와서 발굴 작업을 하다가 낚싯바늘을 찾아내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20세기에는 물을 조금 얻기 위해서도 물받이 저수통을 쓰지 않으면 안되었다.

 

 

바람도 씨앗들을 퍼뜨려 주었다. 물이 다시 나타나자 그와 함게 버드나무와 갈대가, 풀밭과 기름진 땅이, 꽃들이, 그리고 삶의 이유같은 것들이 되돌아 왔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는 아주 천천히 일어났기 때문에 습관처럼 익숙해져서 사람들에게 아무런 놀라움도 주지 않았다. 산토끼나 멧돼지들을 잡으려고 이 적막한 산 속으로 올라온 사냥꾼들은 작은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을 분명히 보았으나, 그것을 그저 땅에 자연스럽게 부리는 변덕 탓이라고만 여겼다.

 

 

그래서 아무도 부피에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가 한 일이라고 의심했다면 그의 일에 훼방을 놓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의심할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나 관리들이나 누군들 그처럼 고결하고 훌륭한 일을  그렇게 고집스럽게 계속할 수 있다고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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