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검은고양이

다림영 2009. 7. 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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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잔인무도한 행위를 저지른 바로 그날 밤 나는 불이야, 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침대 커튼이 불길에 싸여 있었고, 집 전체가 활활 타고 있었다. 아내와 하인과 나는 간신히 불더미 속에서 피해 나왔다. 집은 폭삭 타버리고 말았다. 내가 가진 건 재산이 날아가버리자 나는 절망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 재난과 잔학 행위 사이에 인과관계를 찾아내어 내세울 만큼 약한 인간은 아니다. 그러나 사건들을 연결하고 있는 사슬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지-있음직한 고리를 불완전하게 놓아두고 싶은 생각은 없다. 불이 난 다음날 나는 불탄 자리로 가보았다. 벽은 한쪽만 빼놓고 모두 주저앉아 있었다. 예외가 된 이 벽은 집 한가운데즘 서 있는 그다지 두껍지 않은 칸막이 벽으로 나의 침대 머리맡에 있던 벽이었다.

 

 

이 벽이 상당한 정도로 불길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횟가루를 칠한 덕이었다. 그것도 바른 지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이 벽 근처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이 특이한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 같았다.

 

 

 

"이상한데!" "희한하군!" 하는 소리와 그 비슷한 말들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나는 마치 하얀 벽 표면에 얕게 새긴 것 같은 거대한 고양이 모양이 나 있는 것을 가까이 가서 보았다. 그모양은 정확해서 정말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그 짐승의 목둘레에는 끈이 매여 있었다.

 

 

처음 내가 이 불가사의한 현상을 보았을 때-왜냐하면 그것을 망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나의 놀라움과 공포심은 극도에 달했다. 그러나 마침내 반성을 하고 마음을 달랫다. 내 기억으로는 고양이를 집과 맞붙어 있는 정원에 매달아 놓았던 것이다.

 

 

 

불이야, 하는 소리에 정원에는 당장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 중 누군가가 그 짐승을 나무에서 떼어내어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해 방 안에다 내던졌음이 틀림없다. 아마도 이런 것으로 나를 잠에서 깨우려 한 것이리라. 다른 벽이 무너지면서 새로 회칠한 벽에 내가 가한 잔인성의 제물을 짓눌러버렷던 것이다.

 

 

 

불길로 탄 회와 시체에서 나온 암모니아가 뒤섞여 내가 본 것과 같은 형상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내가 방금 이야기한 놀라운 사실에 대해서 양심에가지 걸릴 것은 없으나 이성적으로 이런 식으로 설명이 되어 나의 공상에 깊은 인상을 적지 않이 준 것만은 사실이었다.

 

 

몇달동안을 나는 고양이의 환영을 물리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에 내 마음 가운데는 회한 비슷한, 그러나 실은 그것도 아닌 묘한 감정이 일어났다. 이 짐승을 잃어버린 것을 후회한 나머지 요즈음 버릇이 되다시피 자주 가는 그 지긋지긋한 장소에서 그놈과 같은 종류이거나 그와 비슷한, 그놈 대신 방망이로 들이세울 동물을 찾기 위해 내 주위를 살펴보았다.

 

 

어느날 밤 치욕스럽기 이를 데 없는 소굴 속에 얼큰하게 취해서 앉아 있으려니까 이 집의 주요 가구로서  널려 있는, 진과 럼 주를 담는 거대한 통들 중 하나위에 시커먼 물체가 엎드려 있는 것이 별안간 내 마음을 끌었다. 나는 이미 이 통 꼭대기를 한참 동안 계속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상한 사실은 내가 진작 그 물체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나는 가까이 가서 그것을 손으로 건드려보았다. 그것은 검은 고양이였다.  아주 큰 놈이었는데 -플루토만큼이나 덩치가 큰데다 한 가지만 빼면 모든 것이 그놈과 꼭 닮았다. 플루토는 몸 전체 어디를 막론하고 흰 털이라곤 없었는데 이 고양이는 거의 가슴패기 전체가 뚜렷하지는 않지만 큼직한 흰 점으로 덮여 있었다.

 

 

놈을 건드리자 그 고양이는 당장 일어나더니 가르릉 소리를 크게 내며 내 손에 몸뚱이를 비벼댔다. 아는 척을 해 주어서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동물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놈을 사겠다고 주인한테 제의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그 고양이를 알지도 못하고-전에 본 일도 없다면서- 그놈에 대한 아무런 권리도 없다고 했다.

 

 

 

나는 계속 쓰다듬어 주었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니까 그놈은 나를 따라나설 눈치를 보였다. 나는 따라오게 놓아두었다. 나는 가면서도 때때로 몸을 굽혀 토닥토닥 해주었다. 집에 이르자 그놈은 금방 길이 들고 아내에게는 바로 굉장한 애완동물이 되었다.

 

 

얼마 안 있어 내 마음속에서 그놈을  싫어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것은 내가 예기했던것과 정반대 현상이었다. 그러나 그 놈이 나를 대놓고 좋아하는 것이 도리어 불쾌하고 귀찮은 이유를 알 방법이 없었다.

 

 

차츰 이러한 불쾌감과 귀찮은 감정은 심한 혐오감으로 바뀌고 말았다. 나는 그 놈을 피했다. 뭔가 창피한 생각이 들고 그전의 잔인한 행동이 떠올라 손을 써서 그놈을 때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몇 주일 동안 그놈을 때린다든가 그 밖의 난폭한 짓은 하지 ㅇ낳았다.

 

 

그러나 서서히-아주 서서히-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지겨운 마음으로 그놈을 바라보게 되엇고, 염병에 걸린 인간에게서 피해버리듯 그 보기 싫은 존재만 보면 말없이 도망치고 말았다.

 

 

이 짐승에 대한 나의 혐오감을 부채질한 것은 의심할 바 없이 그놈을 집으로 데리고 온 다음날 아침 플루토처럼 그놈도 눈알 하나가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부터였다. 그렇지만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나의 아내는 한때 나의 뛰어난 특징이었으며 내게 수많은 단순하고 순박한 기쁨을 안겨주던, 인정미를 지닌 사람이었다.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그녀에게는 오직 사랑스러울 뿐이었다.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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