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장지오노/나무를 심는 사람

다림영 2009. 8. 29. 19:42
728x90
반응형

약 40여년 전의 일이다. 나는 여행자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고산지대로 먼 여행을 떠났다. 그곳은 알프스 산맥이 프로방스 지방으로 뻗어 내린 아주 오래된 산악지대였다. 이지역은 동남쪽과 남쪽으로는 시스테롱과 미라보 사이에 있는 뒤랑스 강의 중류를 경계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드롬 강이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디까지 이르는 강의 상류가 그 끝이고 , 서쪽으로는 콩타브네생 평원과 방투 산의 산자락이 뻗어내린 곳을 그 경계로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곳은 바스잘프 지방의 북부 전부와 드롬 강의 남쪽 및 보클뤼즈 지방의 일부 작은 지역에 걸쳐 있었다.

나는 해발 1,200~1,300미터의 산악지대에 있는 헐벗고 단조로운 황무지를 향해 먼 도보여행을 떠났다. 그곳엔 야생 라벤더 외에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다. 폭이 가장 넓은 곳을 가로질러 사흘을 걷고 나니 더없이 황폐한 지역이 나왔다. 나는 뼈대만 남은 버려진 마을옆에 텐트를 쳤다.

 

 

마실물이 전날부터 떨어져서 물을 찾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폐허가 되어 있기는 했지만 낡은 말벌집처럼 집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니 옛날엔 이곳에 샘이나 우물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과연 샘이 있긴 했지만 바싹 말라붙어 있었다.

 

 

비바람에 사그라져 지붕이 없어져 버린 집 여섯채, 그리고 종탑이 무너져 버린 작은 교회가 마치 사람들이 사는 마을 속에 있는 것처럼 서 있었다. 그러나 그곳엔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6월의 아름다운 날이었다. 그러나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나무라고는 없는 땅위로 견디기 어려울 만큼 세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뼈대만 남은 집들 속으로 불어닥치는 바람소리는 마치 짐승들이 먹는 것을 방해받았을 때 그러는 것처럼 으르렁 거렸다.

 

나는 텐트를 걷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서부터 다섯 시간이나 더 걸어 보았어도 여전히 물을 찾을 수 없었고 , 또 그럴 희망마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곳이 똑 같이 메말라 있었고 거친 풀들만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저 ㅁ러리에서 작고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림자 같은그 모습이 홀로 서 있는 나무의 둥치가 아닌가 착각했다. 그것을 향해 걸어가 보니 한 양치기가 있었다. 그의 곁에는 양 30여 마리가 뜨거운 땅 위에 누워 쉬고 있었다.

 

 

그는 물병을 나에게 건네 주었다.그리고 잠시 후 고원의 우묵한 곳에 있는 양의 우리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는 간단한 도르래로 깊은 천연의 우물에서 아주 좋은 물을 길어 올렸다. 그 사람은 말이 거의 없었는데, 그것은 고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 차 있고 확신과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이런 황무지에 그런 사람이 살고 있다니 뜻밖이었다.

 

 

그 양치기는 오두막이 아니라 돌로 만든 제대로 된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 집의 모습으로 보아 그가 이곳에 와서 망가진 집을 어떻게 혼자 힘으로 되살려 놓았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지붕은 튼튼했고 물이 새는 곳도 없었다. 바람이 기와를 두드리면서 내는 소리가 마치 바닷가의 파도 소리 같았다.

 

 

살림 살이는 잘 정돈 되어 있었다. 그릇은 깨끗했고, 마루는 잘 닦여 있었으며 , 총도 잘 손질 되어 있었다. 불위에서 수프가 끓고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그가 산뜻하게 면도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옷에는 단추가 단단히 달려 있으며, 눈에 띄지 않게 옷이 세심하게 기워져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내게 수프를 떠 주었다. 식사가 끝난 뒤 내가 담배쌈지를 건네자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개 또한 주인처럼 조용했으며, 살살대지 ㅇ낳으면서도 상냥하게 굴었다.

 

 

나는 그 집에서 그날 밤을 묵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장 가까운 마을이라 해도 하루 학 반을 더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지역에는 마을이 드물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 마을의 사정도 잘 알고 있었다.

 

 

이곳 고산지대의 기슭에는 너덧 마을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마을들은 마찻길이 끝나는 곳의 떡갈나무 숲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에는 숯을 만드는 나무꾼들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곳이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견디기 어려운 날씨 속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서로 밀치며 이기심만 키워 갈 뿐이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그곳을 벗어나기를 바라는 부질없는 욕심을 키워 가고 있었다.

 

 

남자들은 마차에 숯을 싣고 도시로 갔다 돌아오곤 했다. 아무리 굳센 사람이라 할지라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좌절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다. 여인들의 마음 속에서도 불만이 끓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놓고 경쟁했다. 숯을 파는 것을 두고, 교회에서 앉는 자리를 놓고서도 경쟁했다. 선한 일을 놓고 ,악한 일을 놓고, 그리고 선과 악이 뒤섞인 것들을 놓고 서로 다투었다. 바람 또한 쉬지 않고 신경을 자극했다.

 

 

그래서 자살이 전염병처럼 번지고 여러 정신병마저 유행하여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양치기는 조그만 자루를 가지고 와서 도토리 한 무더기를 탁자위에 쏟아 놓았다. 그는 도토리 하나하나를 아주 주의 깊게 살펴보더니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따로 골라 놓았다. 나는 파이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도와주겠다고 했으나 그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가 그 일에 기울이는 정성을 보고 나는 더 고집할 수 없었다. 우리의 대화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아주 굵은 도토리 한무더기를 모으더니 그것들을 열개 씩 세어 나누었다. 그러면서 그는 도토리들을 더 자세히 살펴보고 그 중에서도 작은 것이나  금이 간 것들을 다시 골라냈다. 그렇게 해서 상태가 완벽한 도토리가 100개 모아졌을 때 그는 일을 멈추었고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이 사람과 함께 있으니 마음이 평화로웠다. 다음 날에도 나는 그의 집에서 하루 더 머물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그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무엇도 그의 마음을 흐트러뜨릴 수 없다는 인상을 나는 받았다. 반드시 하루 더쉬어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호기심을 느꼈고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그는 우리에게 양떼를 몰고 풀밭으로 갔다. 떠나기 전에 그는 정성 껏 골라 세워 놓은 도토리 자루를 물통에 담갔다.

나는 그가 지팡이 대신 길이가 약 1.5미터 정도 되고 굵기가 엄지손가락만한 쇠막대기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걸으며 쉬며 그가 가는 길을 따라갔다. 양들의 풀밭은 작은 골짜기에 있었다. 그는 양 떼를 개에게 돌보도록 맡기고는 내가 있는 곳을 향해 올라왔다. 내맘대로 올라왔다고 꾸짖으로 오는 것 같아 두려웠으나 그게 아니었다.

 

 

그가 가는 길에 내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나에게 달리 할 일이 없으면 자기와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는 거기서 산등성이를 향해 200미터쯤을 더 올라갔다. p27

 

 

 

반응형

'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를 심는 사람/장지오노  (0) 2009.09.03
장지오노/나무를 심는 사람  (0) 2009.09.01
검은고양이  (0) 2009.07.10
검은고양이  (0) 2009.07.09
검은 고양이/애드가 엘런 포  (0) 2009.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