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검은고양이

다림영 2009. 7. 10.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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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고양이에 대한 나의 혐오감과는 아랑곳없이 그놈의 나에 대한 편애는 더욱 커져만 가는 듯했다. 그놈은 독자들이 이해하기 곤란할 만큼 끈덕지게 내 발뒤꿈치를 따라다녔다.

 

 

내가 앉아 있을 때는 의자 밑에 주그리고 앉아 있든지 내 무릎위에 뛰어 올라와 진저리나는 애무로 나를 핥아대는 것이었다. 일어나서 걸을라치면 내 발 사이에 끼어들어 사람을 넘어뜨릴 뻔하거나 길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옷을 붙들고 가슴패기까지 기어 올랐다.

 

 

 

이럴때면 나는 한 대 쳐서  그놈을 죽이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전에 저지른 죄가 생각나서 주저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정작 그 이유는 -당작 고백하자면- 그 짐승이 끔찍하게도 무섭기 때문이었다.

 

 

이 두려움은 정확히 말헤서 체형體刑을 가하는 죄악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달리 그것을 정의할 방법을 모르겠다. 창피를 무릅쓰고 고백해야겠는데-그렇다.이 흉악범의 감방에서 마저 고백하기가 얼굴 뜨거운 노릇인데- 이 짐승이 나에게 기친 공포와 전율은 그저 있을 수 있는 단순한 망상으로 인해서 더 커졌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이 새로 태어난 짐승과 전에 죽여 버린 놈 사이에 눈에 띄는 유일한 차이점은 하얀 털이 있다는 사실인데 아내는 여러 차례 이에 대해 주의를 환기 시켰다.  독자 여러분은 이 점이 크긴 하지만 본래부터 흐릿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차츰차츰-거의 눈에 띄지 않게, 더구나 오랫동안 내 이성으로는 환상이라고 애써 부정하려들었지만- 그것은 드디어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것이 이제는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는 어떤 물체의 형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더구나 이것 때문에 나는 그놈을 혐오하고 두려워해서-용기만 있었다면 그 괴물을 없애버렸을 것이다.  그것은 정말 소름 끼치는 -그리고 무시무시한-교수대의 형상이었다!-아, 슬프고 무서운 공포와 죄악-그리고 고뇌와 죽음의 형틀이여!

 

 

그래서 나는 참으로 보통 인간이 겪을 수 없는 지독한 비참함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데 잔인한 짐승이-저의 친구를 깔보고 때려죽였다고 해서-잔인한 짐승이 나를 위해서-높으신 하나님의 형상을 본따 만들어 놓은 인간인 나를 위해서-이토록 참을 수 없는 고뇌를 만들어 놓다니!슬프다! 밤이고 낮이고 안식의 축복을 이제는 더 알지 못하겠구나!

 

낮에는 그 짐승이 한시도 나를 혼자 놔두지 않았고 밤이면 시간시간 형언할 수 없는 악몽에서 깜짝 놀라 깨어나면  그놈의 화끈거리는 입김이 내 얼굴을 뒤덮고 있고, 그 지독한 무게는-도저히 떨쳐 버릴 수 없는 그 악몽의 화신은- 끝없는 나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이와 같은 고통의 압력에 짓눌려 내 몸속에 겨우 남아 있던 갸날픈 선의善意는 질식되고 말았다.악독한 생각만이 나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한없이 캄캄하고 악독한 생각만이, 평소의 내 변덕스런 기질은 세상만물과 온갖 인간에 대한 혐오를 더할 뿐이었다. 불쌍하게도 툭하면 갑작스레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해 나오는 분노로 갈 데까지 가버린 나라는 인생의 횡포에 대해서 가장 고통을 받고 참아야 하는 사람은 아내였다.

 

 

 

어느날, 집안일로 가난에 쪼들려 어쩔 수 없이 살게 된 옛날집의 지하실로 아내와 함게 내려가게 되었다. 고양이가 내 뒤를 따라 가파른 층계를 내려오다 하마터면 그놈 때문에 나는 거꾸로 떨어질 뻔했다. 그래서 나는 미칠 지경으로 화가 치밀었다.

 

 

 

도끼를 번쩍 쳐들고 화가 치밀어 여태까지 내 손을 붙들어왔던 어린애다운 두려움을 잊어버리고 그 짐승에게 일격을 가하려고 노리고 있었다. 물론 생각대로 내려치기만 했다면 그놈은 즉사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의 손이 그 일격을 막아냈다. 그 방해에 자극을 받은 나는 악마보다도 더 간악한 분노가 불타올라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도기를 아내의 골통에다 내리치고 말았다.  아내는 끽 소리 한마디 못 지르고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

 

 

이 흉측한 살인을 저지르자 나는 당장 주도면밀하게 시체를 감추는 작업에  착수했다.  낮이건 밤이건 간에 이웃사람에게 들키지 않고 시체를 내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여러가지 계획이 마음에 떠올랐다. 시체를 토막토막 잘게 썰어 불에 태워버릴까도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하실 바닥에 무덤을 파서 묻어버릴 결심을 하기도 했다. 또는 마당에 있는 우물에다 던져버릴까-혹은 흔히 하듯이 상자속에 상품처럼 포장해서 짐꾼을 시켜 집에서 내갈까도  궁리했다. 결국에는 이 모든 방법보다 훨씬 더 편리하다고 여겨지는 방법이 번득 떠올랐다.

 

 

 

중세 승려들이 자기네가 죽인 희생물을 벽에 넣고 발라버렸다는 기록에서처럼 나도 지하실 벽 속에 넣고 발라버리기로 결정을 했다.

이와 같은 목적을 수행하는 데 지하실은 안성맞춤이었다. 그벽은 엉성하게 쌓였으며 회벽칠을 대충 한 것이 얼마 안된데다 공기가 눅눅해 아직 굳지 않았다.

 

 

 

더구나 한쪽 벽은 가짜 굴뚝이나 벽난로 때문에 불쑥 나와 있었는데 메워져서 다른 벽들과 비슷하게 되어 있었다.  나는 이 부분의 벽돌을 들어내고 시체를 처넣은 다음 전과 같이 싹 발라치우면 누구 한 사람 수상한 점을 찾아내지 못하리라 확신하게 되었다.

 

 

이 계산은 어긋나지 않았다. 나는 쇠지렛대를 써서 벽돌을 쉽게 헐어내고 벽 속에 시체를 조심스럽게 세워놓은 다음 그다지 애먹지 않고 전과 똑 같이 벽 전체를 쌓아 올렸다. 나는 모르타르와 모래와 털을 구해 와 매우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서 옛것과 구별할 수 없는 회반죽을 만들어 아주 조심스럽게 새로 쌓은 벽돌 벽에 발랐다.

 

 

일을 끝내고 나니 모든 게 다 잘되었다는 만족감이 들었다. 그벽이 새로 발라졌다는 흔적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널린 쓰레기는 깨끗하게 치웠다.

나는 의기양양해서 사방을 둘러보고 혼자 중얼거렸다.

 

 

"적어도 이쯤 되면 공연한 애를 쓴 건 아냐."

다음 단계는 그 엄청난 불행을 초래한 그놈의 짐승을 찾는 일이었다. 나는 끝까지 그놈을 잡아 죽여버리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 그놈을 만날 수 있었다면 그놈의 운명은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교활한 짐승은 내가 화가 나서 발광을 부리자 기겁을 해 나의 이런 감정 앞에는 나타나기를 꺼리는 것 같았다.

 

 

그 기분나쁜 짐승이 보이지 않자 내 가슴속에 일어났던 그 깊고 축복받은 안도감은 어떻게 묘사하고 상상해야 할지 모르겠다.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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