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검은 고양이/애드가 엘런 포

다림영 2009. 7. 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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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제부터 쓰려고 하는 가장 끔찍 스럽지만 역시 가장 솔직한 이야기에 대해서 믿어주기를 기대하거나 간청하지 않는다. 내 자신도 믿지 못하는 사건을 믿어주기를 기대한다면 그거야말로 내가 미친 것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미친것도 아니고-분명히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내일이면 나는 죽는다. 그래서 오늘 내 영혼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나의 단도직입적인 목적은 평이하고 간결하게, 그리고 설명을 붙이지 않고 세상 사람들 앞에 일련의 단순한 가정 사건을 내놓으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들 사건이라는 것들은 나를 무서워 떨게 했고-괴롭혀댔으며-파멸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그 때위 사건들에 설명을 붙이지는 않겠다. 나에게 그 사건들은 공포밖에는 준 것이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는 무섭다기보다는 별스럽게 비친 것 같다. 이후에 아마도 어떤 지성인이 나타나서 나의 환상을 보잘것없는 평범한 일쯤으로 대단찮게 여길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보다 더 침착하고 논리적이며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지성인이 있다면 내가 두려운 마음으로 상술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흔해빠진 일련의 아주 자연스러운 인과관계라는 것밖에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온순하고 인정이 많은 성품을 가진 아이로 이름나 있었다. 나는 유별나게 다정다감해서 친구들한테 놀림감이 될 정도였다. 게다가 유독 짐승을 좋아해서 부모님은 갖가지 애완 동물을 구해주셨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 동물들과 함께 보냈고 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귀여워해주는 시간보다 더 행복한 때는 없었다.

 

 

성장하면서  이러한 나의 괴벽한 성질도 자라나서 어른이 되어서는 그것을 나의 가장 큰 쾌락의 원천으로 삼게 되었다. 충실하고 영리한 개에게 애정을 주는 사람에게는 이런 데서 나오는 만족감이 어떤 성질의 것이며 얼마나 강렬한가를 애써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안다.

 

 

 

이런 짐승에 대한 욕심없는 희생적인 사랑 가운데는 단순한 인간의 하찮은 우정과 거미줄 같은 신의를 시험해볼 기회를 자주 가져본 사람의 마음과 직통으로 통하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일찌감치 결혼했다. 그런데 내 아내의 성질 가운데도 내 성질과 같은 것이 있어서 다행으로 여겼다. 아내는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에 대한 나의 편애를 알고는 기회를 놓칠세라 마음에 드는 동물들을 사들였다. 그리하여 새, 금붕어, 예쁜개, 토끼, 꼬마원숭이, 그리고 고양이를 갖게 되었다.

 

 

맨 나중에 갖게 된 이 고양이는 유달리 크고 예쁜데다 몸이 온통 까맣고 놀라울 만큼 영리했다. 내가 그놈이 영리하다고 말할 때면, 마음이 적지 않이 미신으로 물들어 있는 아내는 옛날 사람들 말을 빌려 검은 고양이는 모두 마녀가 모습을 빌려 나온 거라고 번번이 은근하게 말했다.

 

 

 

아내가 이 점에 대해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닝ㅆ다. 다만 내가 그 문제에 대해 이제 막 기억났다는 이유밖에는 없다.

플루토<로마 신화에 나오는 명부冥府의 신神-이것이 고양이 이름인데-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짐승이며 놀이 친구였다. 그놈을 나 혼자만 키웠고, 그래서 놈은 내가 집 안에서 어딜 가나 따라다녔다.

 

 

놈이 길거리까지 내 꽁무니를 따라다니느것을 못하게 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우리의 우정은 이런 식으로 수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 기간동안에 나의 기질과 성격은-무절제라는 악마 덕분에=<고백하기 얼굴 뜨거운 노릇이지만>못된 쪽으로 마구 변해버렸다.

 

 

날이 갈수록 나는 더욱 변덕스러워지고 게다가 참을성이 없게 되어 다른 사람의 기분 따위는 더욱 아랑곳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아내에게 마구 욕지거리를 해대게 되었다. 종국에는 손찌검까지 하게 되었다.

 

 

물론 내 애완동물들도 내 성질이 변한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그놈들을 돌봐주기는커녕 괴롭혔다. 그래도 나는 플루토에 대해서만은 토끼나 원숭이나 개가 무심코 내게 온다든지 귀여워해달라고 치댈 때 마구 해댄 것처럼 그러지 않고, 학대를 삼갈 아량을 여전히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병은 점점 짙어졌다.알코올 중독 같은 병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 플루토까지도, 늙어가고 따라서 앙탈을 좀 부리는-플루토란 놈까지도 내 못된 성질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어느날 밤, 거리에 있는 내 단골집에서 고주망태가 되도록 퍼마시고 집에 돌아오니 고양이가 내가 오는 것을 알고 피해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놈을 움켜잡았다. 그러자 내가 부리는 횡포에 겁을 먹고 이빨로 내 손등에 가벼운 상처를 입혔다.

 

 

 

나는 순간적으로 악마와 같은 분노에 사로잡혔다.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당장 나의 본디 영혼은 몸 밖으로 튀어나간 것 같았다. 술기운으로 터져 나오는, 악마보다도 더 못딘 악의가 전신을 떨리게 만들었다.

 

 

나는 조끼 호주머니에서 주머니칼을 꺼내 그 가련한 짐승의 목덜미를 움켜잡고 얼굴에서 눈깔하나를 유유하게 도려냈다. 이 저주받을 잔인무도한 짓을 써나가는 지금도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타며 몸서리가 쳐진다.

 

 

다음날 아침 제정신이 들자-지난밤의 취기에서 깨어났을 때-나는 내가 저지른 죄악에 대해서 두려움 반, 후회 반의 기분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기껏해야 미약하며 애매모호한 감정일 뿐 내 정신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나는 또다시 진을 곤죽이 되게 퍼마시고 내가 저지른 모든 행동에 대한 기억을 숲속에 파묻어 버리고 말았다.

그동안 고양이는 서서히 상처가 아물게 되었다. 그 도려낸 눈구멍이 흉측한 꼴로 변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전처럼 집 안을 두루 돌아다녔지만 예상했던 대로 내가 가가이 가면 공포에 질려 도망가고 말았다.

 

 

 

나는 그대로 옛날 마음이 죽지 않아서 한때 그토록 나를 좋아하던 짐승이 대놓고 싫어하는 사실에 대해 처음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금세 분노로 바뀌고 말았다. 그런 다음 돌이킬 수 ㅇ벗는 마지막 파멸에 이른 것처럼 마음이 마구 비꼬이고 말았다.

 

 

이따위 성미에 대해서 이치로 설명을 붙일 수는 없다.그러나 나는 내 영혼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만큼 변태심리란 인간의 마음에 본래부터 있는 한 가지 충동이라는 것, 즉 인간의 성격에 방향을 제시해주는 불가분의 원시적 기능이든지 감정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단순히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 때문에 악한 짓이나 멍청한 행동을 몇백 번이고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우리 는 가장 올바른  판단력을 지니고 잇음에도 단지 그것이 계율이라는 가장 올바른 판단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단지 그것이 계율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끊임없이 그것을 범하려는 성질을 지니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비틀린 마음이 나의 최후의 파멸을 낳고 말았다. 나로 하여금 그 죄없는 짐승에게 계속 상해를 입히게 만들고 결국에는 극한 상황에 이르게 한 것은 다른 게 아니라 학대에 대한 영혼의 끝없는 동경이엇다. 즉 저 자신의 성질에다 폭력을 가하고-오직 악을 위해서 악을 자행하는 그런 것이었다.

 

 

어느날 아침 나는 냉혈동물처럼 고양이 목에다 올가미를 씌워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았다. 매다는데 나의 눈에선 눈물이 마구 흘러내렸고 가슴은 칼로 도려내는 듯 쓰라렸다. 나는 그놈이 나를 무척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나를 화나게 할 아무런 구실도 주지 않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매달았다.

 

 

 

또 그런 짓을 함으로써 내가 죄를, 그것도 내 불멸의 영혼을 망쳐버릴 끔찍한 죄를 짓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매달았다. 설령 자비하심이 한량 없으면서도 무섭기 이를 데없는-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으로도 어쩔 수 없는- 그런 죄가 있을 수 있다면 바로 그런 죄를 지은 것이다.-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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