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꽃신./김용익

다림영 2009. 6. 1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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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신/김용익

 

그래도 나는 시장에서 노인의 앞 판자 위에 놓인 꽃신을 보다가 오고 또오곤 했다.
앞으로는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결심이, 올 때마다 이시장 모퉁이에 더 오래 있게
한다.  다시오면 꽃신이 한켤레씩 눈에 띄지 않았지만 사려고 머뭇거리는 사람은
볼 수 없었다. 슬퍼서는 안 될 일이 슬프게 되어 버린 어떤 결혼의 내 추억처럼 꽃
신을 사가는 사람은 눈에 잡히지 않았다.

 

 

 

지금 저 판자 위에 꽃신 다섯 켤레만이 피난민으로 가득 찬 시장의 공허를 담고 있
다. 그것이 다 팔려가기 전, 한 켤레 신발을 위해 돈주머니를 다 털어버리고 싶지만
결혼 신발 아닌 슬픔을 사지나 않을까 두렵다.

늦가을 채소장수와, 외롭고 미신을 좇는 얼굴을 보며 중얼거리는 점쟁이 사이에 앉은
신장수, 시장에 햅쌀을 찾아다니던 그날 나는 이 노인을 보고 가까이 다가갔다. 내가
부산에 오기 전, 우리집 울타리 뒤에 살던 신집 사람이라 알았을 때 걸음은 멈춰졌다.
전쟁을 피해 꽃신을 메고 온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가슴이 철렁하고 쓰라렸다.나
는 원한에 찬 말을 마음으로 울부짖었다.

 

 

 

 

'3년묵은 빈대가 탄다면 삼이웃이 불타도 좋다!'
신집사람-그의 달에 대한 청혼을 거절하고 저희 세업을 자랑하며 백정인 우리를 모욕
하던 그 입, 슬픔이 복받쳐 굳게 주먹이 쥐어진다. 신집 부인이라면 인사를 했을지
모르지만 저 노인에게 내가 인사를 하다니, 결코 그의 집에 갔엇던 날이 어제같이 생
생하다. 못자리에 비친 그림자처럼 언제나 내 마음에 그림자를 던져 주었고 어디로
가든 그 일은 내눈에 앞선다.

 

 

 

별안간 비바람이 불던 다음날, 마을을 둘러싼 네개의 언덕과 푸른 하늘 사이에 공기
는 맑고 풍성하여 꿈꿀 수 잇는 그 거리, 농부들이 황금빛 새 짚으로 단장한 마을 초
가들은 젊고 매끄럽게 보였다.  우리집 처마끝에 집을 짓고 사는 시끄러운 참새들이
수수밭으로 날아가기 전, 이른 아침 아버지는 암소를 사러 부산으로 떠났다.  그날
아침 농부 몇 사람이 자식들 혼인날에 쓸 갈비, 쇠대가리 등을 구하러 왔었다. 그들
은 밭 너머 저편에 있는 사람에게 얘기하듯 경쾌한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모두 중매
쟁이 입에서 나온 듯 싶은 좋은 얘기만 하면서 아들 혹은 딸 사돈이 될 집안 자랑을
하고 있었다. 

 

 

 

'우리 혼인날 다음에 메뚜기가 짝을 지을거요.'
늙은 농부가 말했다.
'햅쌀은 났고 설렁설렁한 바람이 두 사람을 이불 속에 몰아 넣을 거요, 잔치음식은
쉬지 않지, 온 마을 사람은 잔치에 왔다가 달이 훤한 언덕을 넘어 돌아갈 때 장고 같
은 배를 두들기며 우리 신랑 신부 잘 살라고 노래 하겠지.'
그들은 해가 언덕과 하늘 복판 사이에 걸린 술때까지 말하고있었다.  떠날 때 그들은
신집 지붕에 누운 커다란 호박을 보고 하는 말이,'호박이 너무커서 지붕이 내려앉지
나 않을까?'

 

 

 

 

몇해 이엉을 갈지 않아 빛깔이 거무칙칙하고 호박의 무게도 겨웁게 보였다. 농부는
말을 이었다. '우린 풋고추 시절에는 꽃신없이 혼인 못할 거로 알았지. 우리보다 자
식놈들이 더 똑똑하다 생각지 않소? 그놈들은 돈먹는 꽃신보다 고기를 사라하니.'
우리집은 조용해졌다.  어머니는 그들이 떠들지 말았으면 했다.  그들이 와서 자식
혼인 얘기를 하고 가는 날이면 신집 사람은 술을 마시고 밤늦게 돌아와 온 동리를 잠
못이루게 했다. 나는 그가 상심해하는지 알고 있다. 꽃신을 맞추러 가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젊엇을 시절, 아니 몇 가을 전만 해도 농부들은 꽃신부터 맞추러 갔었다. 농부
들은 신집에서 중매쟁이 말ㅇ르 하며 쌈지의 담배가 다 떨어져야 겨우 일어섰다. 그
러고 나서 그들은 울타리 너머 우리를 불러 고기가 얼마 필요하다는 말을 건넸다.
마을 아낙네들은 곧잘 찾아와 신집사람에게 누가 꽃신을 맞췄는지 그가 들은 얘기를
묻곤 했다.  신집 사람은 마을일을 다 알고 있어삳. 어머니는 손님을 기다리면서 한
숨 쉬고 부러워 했다.

 

 

 

 

'신집 문턱은 손님들 발로 닳아빠지는데...'
이제는 해마다 울타리 너머로 신집 찾는 손님이 적어졌다.  그것은 오래 전 일이 되
었다. 그 대신 그들은 우리 집에 와서 고기를 주문하며 혼인 얘기를 했다.

그날 무엇이 나를 구혼하러 가게 했는지. 붉고 검스름한 단풍잎 사이의 살랑부는 가
을 바람탓일까? 아름다운 하늘빛 탓일까? 결혼얘기에 내 마음이 설레인 탓일까? 아마
도 화사한 그날을 엮을 오색무지개 가락이 오랜 세월 머뭇거렸던 내 발길을 그집으로
돌려 놓앗을 게다. 신집은 그 닾에서 마을 아낙네가 '엎어지면 코닿을 곳이 백
정네 집이오' 하고 나그네에게 가르쳐 줄만큼 가까웠다.

 

 

 

 

그러나 구혼할 것을 생각할 때 신집은 언덕 너머로 물러가 버린다.  내 마음은 여러
해를 걸쳐 많은 언덕을 넘어왔으며, 그날 저녁 마침내 목적지 가까이 닿은 것이다.
신집 딸은 어느 일갓집 부엌아이로 가고 없었다. 신집 사람도 출타 중이었고 그의 부
인이 고추를 따면서 인사했다. 처음에 내 마음을 이야기하기 전 다른 말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내 목은 메어 말이 나오질 않았다.  부인의 빠진 볼에는 문 앞에
빚쟁이가 왔을 때 볼 수 있는 슬픔을 띠고 가을 햇빛 아래 있었다.  드디어 나는 빚
진 돈 때문에 온것이 아니라는 말을 했으나 다음말이 안 나왔다.  숨막히는 몇 순간
이 흘렀다.

 

 

 

'따님한테 장가들겠소!'
소리쳤다. 나는 부인을 바라보지 못했다. 아이 아버지와 상의하겠다는 말이 들려왔다.
나는 눈을 들었다. 부인의 얼굴에는 기쁜 응낙이 있었다.  다음, 부인이 무슨말을 했
는지 기억할 수 없다. 그 자리를 떠났을 때 나는 부인의 행복스런 얼굴에 모든 내 감
정을 담은 눈을 남겨 놓고 온 느낌 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말했을 때 그
는 자신있게, '요다음 네가 그 집을 찾아가면 신집 사람은 한 바짓가랑이에 두다리를
끼고 서둘며 널 맞이할 게다.'

 

 

 

 

그날 밤 잠을 못이루었다.  나는 신집 사람이 돌아왔는지 알려고 여러번 들락거렸다.
서리 맞은 낙엽과 귀뚜라미 울음 속에 나는 내 생애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예고해 줄
그의 발소리를 기다렸다. 언덕 위의 반짝이는 별들이 어찌나 가까이 보이던지 연이
닿을 것만 같았다.  나는 내 결혼의 방해가 될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이웃 사
촌이라면 그들이야말로 가장 가가운 사촌이겠지. 두 집 담사이에 자란 표주박은  싸울
것없이 나누었고, 아버지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옛부터 신집에 쇠가죽을 팔아왔다.

요즘에 와선 코높은 그는 오지 않고 부인을 보내서 다음날에 돈을 갚을 테니 쇠가죽
한 가음을 팔라 했다.  우리는 지불할 능력이 없음을 알면서도 두 켤레 신발을 만들
수 있는 쇠가죽을 가져가게 했다.  신집사람은 신발재료가 없어지면 흥겨운 노래도
슬픈갉으로 투기며 술이 취해 밤중에 돌아와서 마을 사람을 깨웠다.

 

 

 

 

 

신집 부인은 길에서 나와 부모를 우연히 만나면 별안간 엉뚱한 동리 소문을 얘기하고
도망치듯 가 버린다.  부인은 빚 얘기를 꺼낼까봐 그랬던 것이다.  신집 사람은 나를
좋아했다.  내가 울타리 높이 만큼 클까말까 했을 때 그는 일방에 흩어진 줄, 끌, 바
늘 따위를 치우고 나와 그의 딸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가 쇠가죽 바닥에 둥근
은빛 못을 박고 화려한 비단에 풀칠하여 붙이고 신발 코에 알맞은 빛깔의 장식을 하
는 것에 나는 정신이 바졌다.  그는 언젠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네가 커서장가
들때는 너하고 너의 신부, 중매쟁이를 위해 제일 예쁜 꽃신을 만들어 줄께.'

 

 

 

 

 

다시 어느날 그는 내 얼굴을 한 참 보고 있다가 자기 딸을 힐끗쳐다보며, '상도야,
너는 얼굴이 깨끗하고 잘생겨서 장차 중매쟁이 신발이 닳아지지 않겠다.  그러나 신
부집 부모는 중매쟁이가 나서기를 바란단다. 그 은방울 같은 구수한 이야기가 부모들
마음을 흐뭇하게 해 주거든." 그의 눈은 꽃신 쪽으로 내려갔으나, 미소를 머금은 입
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언제나 나는 신랑 신부, 중매쟁이 얘기를 하는 그의 비뚤
어진 입에 마력을 느꼈다.  그때 그는 한 달에 꽃신, 적어도 신랑, 신부, 중매쟁이의
꽃신 세 켤레를 만들어 생활했다.

 

 

 

그의 딸과 나는 훗날 언덕을 두 개 넘어 학교에 같이 다녔다.  신집 사람은 딸에게
꽃신을 신겨 학교에 보냈다.  그녀만이 꽃신을 신었기 때문에 다른애들처럼 뛰지 못
하며 그녀는 가끔 꽃신 신기를 좋아하지 않앗다.  신집 사람은 담뱃대를 물고 한 켤
레의 신발을 내밀며, '상도야, 옥색비단과 빨간 치례가 예쁘지 않어? 내딸이 이걸
신으면 더 예쁘지'

나는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엿다. 내가 만일 여자로 태어난다 할지라도꽃신 신는것 이
외에 좋은 일이 있을 성 싶지 않았다.  마을 아낙네들은 부처님처럼 그녀 눈사이에
난 사마귀와 볼의 보조개를 보고 남자깨나 끌겠다했지만, 나는 그녀의 얼굴을 생각
해본적이 없고 다만 그녀가 신은 꽃신을 좋아했다.  그녀는 발이 부르틀까 봐 흰버
선을 신었는데 학교로 가는 좁은 길에서 나는 가끔 그녀보다 뒤져가며 꽃신에 담긴
흰 버선발의 오목한 선과 배모양으로 된 꽃신을 바라보았다.  그선은 언제나 달콤한
낮잠을 자고 있는 느낌을 주었다.

 

 

 

 

 

비가 온 다음날 물이 괸 길에서 나는 그녀를 업고 넘어지지 않으려 애썼다.  그녀는
청개구리처럼 등에 꼭 매달렷는데 나는 내 허리 양켠에서 흔들리는 꽃신을 얼마나사
랑하였던가. 내가 진급하자 차츰 신집 사람을 보기 힘들엇다. 나는 집 밖의 일에 관
심을 갖게되었고 신집 사람도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았다. 내가 누구신
발을 만드느냐고 물어도 그는 입을 봉하고 말이 없었다. 하루는 그 입이 갑자기 열
리어 나를 놀라게 했다.

 

 

 

'요즘 혼인은 너무 서둘러서 메뚜기 헐레식이다. 혼삿날에 양화고무신을 신거든. 내
딸은 고무신을 백날 신기느니보다 단 하루라도 꽃신을 신기겠다." 그때서야 주문도
받지 않고 꽃신을 만들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꽃신의 코를 바라보고 있으면 무엇을
보고 있늕, 잊어버린다.  아직 덜 돈 꽃신은 점점 커져서 해도 없는 바닷가에 사공
잃은 배가 떠내려가는 것 같았다.  나는 왜 농부들이 저렇게 아름다운 꽃신을 원치
않는지 알수 없었다.  신집 사람은 목덜미를 붉히며 말을 이었다.

 

 

 

'그놈들은 꽃신 한 켤레 값이면고무신 세켤레 살 수 있다고?'  난 그들이 고무신 백
켤레 갖다 주어도 내 꽃신 한 켤레하고 바꾸지 않을 끼다.' 어린 내 마음에도 그가
자꾸 가난해 지는 것을 짐작했다. 그의 딸이 아주 적은 돈으로 고기를 사러 왔을 때
나는 얼마나 아버지가 덤을 많이 줄것을 원했는지...아버지는 꼭 덤을 주었다. 여름
이 다갔을 무렵 태풍경고에 설레이고 잇는데 신집 부인과 딸은 조심스레 꽃신을 한
보따리 싸가지고 우리집에 와서 밤을 지새웠다. 그들은 그들집의 지붕이 날아갈까
봐 두려워 했던 것이다.

 

 

 

 

봄철 어느날 그녀가 학교를 그만두고 부엌아이가 된다 했을 때까지 나는 그렇게 딱
한 줄은 몰랐다.  나는 그녀에게 떠나지만 않는다면 집에서 고기를 훔쳐내겠다고 말
하며 애원했으나 기어코 떠나 버렸다. 그녀는 기와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른 길에 나는 그 기와집옆을 지나지만 안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나는 울
타리하고 집 사이에 난 틈에서 발돋움을 하고 목을 뽑아 한 번만이라도 그녀가 마당
에 나올것을 기다렸다.  특히 비라도 심하게 온 다음이면 겨우 꽃신만이 치마밑에보
인다. 왔다갔다 하는 꽃신은 공중에 춤추는 것 같아 얼마나 아름다웠나! 나는 기와
집에서 내 꽃신을 빼앗아 갔다고생각했다.

 

 

 

그해 온 봄철 동안 청개구리가 논에서 울 때 나는 그 공중에 뜬 꽃신을 보러갔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내가 뜰안을 기웃거리는 것을 본 턱이 두개 있는 기와집 뚱
보영감이 앵두나무를 심어 울타리의 틈을 가려버렸다.  해가 저물면 마을 집들에 등
잔이 켜지듯 소문은 퍼져서 사람들은 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  열을 띤 신집사람
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상도야, 나는 결코 값을 내리지 안 할 끼다. 나는 내 딸
에게 부엌에서도 꽃신을 신기겠다.  그리고 딸이 시집갈 때 꽃신을 다 주어 보낼끼
다.'

 

 

 

 

그가 말하는 시집가는 날은 여러 산을 넘어야 할 그런 먼 일로 생각되었다. 나는 실
망하며 내가 장가들 날까지 몇 켤레의 짚신을 갈아 신어야 할 것인지. 신집 사람은
굵은 손가락으로 내 턱을 치켜올리고 내 눈을 들여다 보며 희망에 찬 듯, '요다음
가을에는 어느 혼가에서 꽃신을 사겠지. 그러면 내딸도 집에 돌아 올수 있을 거야.'
그해부터 앵두꽃은 다섯번이나 지고 둥근 열매를 맺었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고 도리어 멀리있는 다른 집에 가서 일하게 되었다. 이제 내가 청혼했으니 내일
큰 쇠가죽을 가지고 가서 그의딸을 위해 가장 아름다운 꽃신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
하리라. 혼인날이면 가마 타는 대신 이웃집끼리니 우리 가족은 집에서 짠 하얀베를
깔아 꽃신이 그 위를 밟게 할 것이다.

 

 

 

 

가을 밤은 조용히 깊어갔고 나는 차가운 뜰을 몇바퀴 돌았는지 그때 거칠고 취기어
린 신집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자신이 만든 비꼬는 노래에 곡조를 실어서 부
르고 있었다.  '농부가 나에게 인사를 했다. 가을날이 참 좋군요. 여보 신집 사람
댁 호박은 잘 자랍니까?' 잠시 후 네모진 미닫이에 그림자가지나갔다.  신집 부인
이 남편을 마중하러 일어났을 거라 생각했다. 몸이 떨렸다.  부인이 남편에게 전할
내 청혼얘기를 듣고자 나는 울타리에 기대어 귀를 기울였다.  싸움소리가 들려온다.
미닫이는 바람이 불어서 그런것처럼 확 열리며 노기 띤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내 딸은 백정네 집 자식에겐 안 주어!'

 

 

 


나는 그다음 말을 들을 때까지 내 귀를 의심했다.  '백정녀석에 빚진게 있다구 내딸
을 홀애비가 부엌뚜기 해먹듯 쉽사리 할려구 했지 백정녀석이 중매쟁이 있다는걸 알
리 있나. 내딸은 일곱마을에서 가장 훌륭한 꽃신장이 딸이야.' 그말은 그릇이 와그
락와그락 깨지는 것 같았다.  부인은 말을 막으려고 미친듯 소리를 질렀으나 남편
의 큰소리에 눌린다.  '쇠고기 덤이나 좀 있을 까해서 혀끝으로 한 좋은 말이 백정
녀석 마음을 크게 했어.  나는 혼인식때 신는 꽃신장이다!'

'어떻게 하려는 거야.'

 

 

 


나는 내 손에 백정 칼을 들고 대문간에서 떨고 잇는 자신을 보았다. 어머니는 칼을
빼앗았다.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힘이 센 줄은 몰랐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놀랄만
큼 엄했다.  '너는 손톰을 가지고도 남을 해치지 못해. 다른사람들이 우리 백정을
어떻게 생각하겠니?'
내 심장은 갈쿠리로 긁는 것 같이 아팠다.  나는 내 팔을 깨물고 그 아픔을 잊으려
했다. 이것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쓰라림이라 깨달은 나는 땅을 치고 울었다. 여러
날 나는 집안에 틀어박혀 처녀가 아이를 밴 것처럼 햇빛을 피하였다.  해가 저물었
을 때 나는 가가운 언덕에 가서 풀밭에 얼굴을 묻고 태산 같은 슬픔에 내가 찌그러
지지 않았는가를 의심했다.

 

 

 

 

여러 사람들이 언덕을 넘어갔다. 어던 늙은 부인의 흙묻은 그 모양없는 신발에 나는
구역을 느꼈다.  그가신은 신발도 한때는 꽃신이엇던가. 그 신발은 내 가슴처럼 무
겁게 움직엿다 가을이 언덕을 넘어 멀리 갔다 햇볕이 내리쬐는 밭에서, 사방 언덕
에서, 나는 가을을 찾아볼 수 없었다.눈이 와도 놀라지 않을 어두운 날 신집에 들
어가는 중매쟁이를 보았다 이미 밑바닥에 깔린 내 마음은 더 이상 내려앉을수 없다

 

 

 

다만 딸의 결혼에 쓸 거라고 쇠고기와 꽃신을 만들 쇠가죽을 사러올 부인을 보는 것
은 참을 수 없다. 어머니는 내 괴로움을 다 알아차렸지만 아버지는 얼마만큼이나알
아차렸을 까. 아버지는 부산 쇠고기 시장에 있는 삼촌에게 나를 보내려 했다. 부모
는 내가 이 골짜기를 빠져나가기만 하면 마음을 잡고 바람 부는 대로 방향을 바꿀
수 있을 것을 바랐다.  어디로 가나 여자가 잇다는 말을 하려고 애썼다.  아버지는
내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해가 짧은 겨울에도 걸어갈 수 있는 부산을 향해
떠날 때 그는 애매하게 부채질하는 투로, '도회지 여자들과 바람을 피워라.그러면
한 여자만 생각하지 않게 될걸.'

 

 

 

 

봄은 동해로부터 부드럽지만 다소 매운 바람을 싣고 부산에도 찾아왔다. 봄바람은
도회지여자들의 치마를 이리저리 나부끼게 했지만 나는 여자들과 봄바람을 좇지않았
다.내 마음은 언제나 어렸을 때 신집 일방에서 꿈꾸던 아름다운 꽃신 곁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나는 이미 과거에 묻혀 버린 장차 신부를 그려 볼 수 없
엇다.

 

 

그녀와 그녀의 꽃신은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그녀뒤를 따랐으며
꽃신 뒤축과 그녀의 흰 버선 뒷모양만 멀리 도망칠 운명에 있는 것처럼 고개를 넘
고 또 넘어 달아났다.  나의 행복을 담은 꽃신은 결코 똑바로 나를 보고 걸어오지
않았다.  전쟁이 부산에 번져왔을 때까지 나는 꽃신뒤축을 좇는것 을 단념할수 없
었다. 부모는 골짜기집에서 피신하여 내 곁에와 살고 있었다.  쏟아지는 피난민.
다들 집 문을 닫았으니 그들 말대로 길...먼지 많은 거리의 손님이었다.  밀려오는
전쟁통에 농민들은 백정에게 개 값으로 소를 팔았다.  인플레 지전은 나에게 기쁨
없이 나뭇잎처럼 호주머니를 부풀게 했다.

 

 

 

 

나는 이제 꽃신을 잊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여름이 추억하나 남기지 않고
지나갔다.  나는 가을이 다 지나갔을 때까지 가을이 온 지도 몰랐다.  추수를 마
친 논밭에서 남쪽으로 떠나는 새떼들 그림자가 내 마음 구석에 옮겨졌다.  그래서
나는 멍청하게 햅쌀을 구하러 장마당을 헤매었다. 그때 내 눈은 판자 위 꽃신에 끌
렸다. 꽃신의 코는 나를 향하여 노려보았다. 왜 다가갔는지 이유를 모르겠다.이유
를 따짐으로써 내 마음은 다시 노여움과 쓰라림에 찼다.

 

 

 

그때 심정같아서는 꽃신을 모조리 사서 그에게 보라는 듯 신발속에 돈을 가득 채우
고 싶엇다. 판자 앞, 몇 발짝 되는 곳에서 내 걸음은 멈춰졌다.  신집 사람 얼굴에
는 어찌나 많이 주름이 갔던지. 비뚤어진 입은 기름기 없는 초심지 같았다.  저 입
은 다시 큰소리를 치지 못하겟지. 나는 누가 꽃신을 사는지 보려고 기다렸다.  그
러나 물건값을 물어보지 않고 못배기는 장돌뱅이 이외 누구 하나 눈여겨 보려는 사
람조차 없엇다. 장돌뱅이 한사람이 소리쳤다.

 

 

 

'퇴물인 꽃신을 가지고 하늘값을 부르니, 여보노인.당신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게
아니오?'
그는 장돌뱅이욕지거리에 무관하며, 아직 꼬부라지지 않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으나 그의 배는 등에 닿을 것같이 보였다. 꽃신은 한켤레 두켤레 없어졌다. 나
는 오고 또 오곤 했다.  노인의 물건이 차츰 줄어들자 그에 대한 날카로운 내 감정
은 식어갔다.  그 대신 슬픔이 차지하였다.  날씨가 차지자 노인의 비뚤어진 입은
흰 입김도 없이 기침을 했다.  꽃신을 다 팔고 나면 그는 어떻게 될지 걱정스러웠
다.  내마음에도 기침하는 그 입이, 한 때 따뜻한 일방에서 자신의 결혼얘기를 하
며 미소 짓던 입으로 변해 있었다. 그때 꽃신은 얼마나 가벼웠던가.

 

 

 

나는 장터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이 들어 사람을 헤치고 걸어나왔다.  여러종류의 신
발-구두, 고무신, 징을 박은 군화-모두 무겁게 보였다.  아마도 사는 사람 기분에
따라 신발의 무게는 달라지겠지. 이나라에는 꽃신을 채울 기쁨, 그런 기쁨을 가질
겨를이 없고 공허뿐-공허뿐.  때때로 나는 노인이 나를 알아보기를 바랐다.  그러면
나는 부인과 딸에 관한 말을 물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햇다. 그의 깜박이지 않는 눈에는 알아보는 흔적이 없었고 나도 먼저 말을 걸지 않
았다.

 

 

 

 

나는 꽃신이 다른 사람에게 다 팔려 가지 전 한 켤레 가지고 싶었지만 꽃신 아닌 슬
픔을 사지나 않을까 두렵다. 나는 먹구름 속에 자취를 감추기 직전 길을 더듬어 보는
눈초리로 꽃신ㅇ르 바라보았다. 꽃신이 세켤레 나앗을 때 나는 그곳에 차마 가지 못
했다. 예쁘게 꾸며진 꽃신의 코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훌쩍 뒤돌아설 것 같아 애
처롭다. 불현듯 나는 빠른 걸음으로 시장으로 달려갔다.

 

 

 

그때 노인이 꽃신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으면 싶었으나 한편 꽃신이 있었으면....
장모퉁이 가까이 갔을 때 가슴이 뛴다. 검은 우산 아래 놓인 판자. 두켤레의 꽃신이
나를 보고있다.  기뻤다.  그 기쁨을 나는 두손에 꽉 쥐었다. 그런데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휘어진 어깨에 노란 담요를 걸치고 한 부인이 눈을 맞고 앉아 있었다. 신집
부인이었다. 눈은 비스듬히 내린다. 어서 신발을 싸서 돌아가지, 부인은 왜 저리 앉
았는지.

양복 웃저고리에 한복바지를 입은 사나이가 발을 멈추고 안경너머 꽃신을 보고 있다.
흥정하는 것 같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돈을 찾는다. 나는 달려갔다. 손에 쥘 수
잇는 대로 돈을 꺼내어 부인앞에 내놓았다.'여기있소. 이 꽃신 내겁니다!'

 

 

 


사나이는매우 불쾌한 눈초리를 보냈는데, 눈송이가 그의 안경을 가리지않았다면 사
나이의 노여움을 독똑히 보앗을 게다. 부인은 담요를 땅에 떨어뜨리고 마치 위조지
폐로 그녀를 속이기라도 하는 듯 몸을 뒤로 사렸다.  잿빛 눈동자는 피곤해 보였고
슬프게도 무표정하며 앞으로 그림자 하나 더 받을 수 없는 겨울 길처럼, 나는 급히
말을 이었다.

'상돕니다.아저씨는 어디 계시오?'

 

 


부인은 넋빠진 사람처럼 나를 쳐다 보았다.  그의 입술은 떨리기 시작하면서 이빨이
다 빠진 잇몸이 드러났다. 겨울바람처럼 메마르고 소리 죽인 울음이 들렸다.  나는
가족들을 잃은 늙은이의 우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절망적인 일이 일어난 것을 알
았다.  나는 부인이 떨어뜨린 우산을 주워들고 꽃신위에 받쳤다. 눈보라는 꽃신위
에 날렸다.  부인은 꽃신에 묻은 눈을 조심스레 닦고 신문지에 가만히 쌌다.

'바깥어른은 이 곷신을 낯선 사람에게 고무신 값으로 안팔려 했다.'

 

 

 

부인은 다시 말
을 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침마다 수용소에서 그를 쫓아냈지. 한 달에 겨우 한 켤
레만 싼값으로 팔고 오고 그러면 나는 다시 신을 팔라고 짜증을 내고... 꽃신이 두
켤레 남았을 때 그는 어린애처럼 꽃신을 안팔려고 고집을 부렸다.  할수 없어 장에
나가기는 했지만 언제나 꽃신은 그대로 갖고 돌아왔지. 하루는 온종일 빈속으로 떨
다가 돌아와서..'
부인은 다음말을 못했다. 부인의 뺨을 타고 내리는 것은 눈인가....부인은 누그러져
서, '그분은 꽃신이 다 팔리기 전에 돌아갔다.  그것이 소원...'
부인은 내가 내놓은 지폐를 잠시 보고 신발을 싼 꾸러미를 내밀었다.

 

 

 

 

'이 돈 가지면 이제 버젓이 장사도 치르겠다.'
나는 그 꾸러미를 받지 못했다. 잠든어린이가 꼭 쥐고 자는  버들피리를 빼앗는 것
같이 아직도 신집 사람이 꽃신을 꼭 쥐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머리를 흔들고
'당신 따님을 위해 이 꽃신을 가지시오.'
잠시동안 그녀가 결혼했는지 어떤지를 생각했으나 이제는 다 소용 없다는 것을 알았
다.  그녀는 이 꽃신을 가지게 될까. 다만 그녀가 어느곳에 있건 꽃신을 받아주었으
면 싶었다.

 

 

 

 

담요를 개켜 그 속에 돈을 넣고 꽃신이 든 꾸러미와 함께 부인 팔에 안겨 주었을 때
부인은 그것을 꼭 껴안았다가 어린애를 안고 가는듯 머리를 약간 수그리고 걸었다.
부인은 말했다. '그애는 죽었다. 그애는 지난 여름 폭격에죽었다.'
아아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오래 전 내 예감은 그녀의 죽음을.

우산을 폈다. 부인이 젖지 않게 팔을 뻗치며 그녀의 뒤를 쫓았다. 뒤에서 누가 신난
소리로 '야아! 자리가 생겼다! 판자도 놔두고 간다."
시장밖에는 바람이 눈을 휘몰았다. 바람에 날리지 않게 우산을 반쯤 펴서 꽃신을 가
진 부인이 넘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그녀의 뒤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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