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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럴 줄 알았다

다림영 2009. 6. 19.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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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엄마 학교도 훨씬 들어가기 전 이란다
볕좋은 어느날 외할머니 읍내 장엘 나가셨다
때만되면 시계에 밥을 주어야 겠구나 하는 얘기 노상 들었다
턱괴고 마루끝에 앉아 한참을 기다려도 외할머니 돌아오지 않으셨다
시계 밥 걱정에 동무가 불러도 나가 놀수 없었다
생각끝에 부엌으로 달려가 고봉밥을 퍼다가 가져다 놓고는
시계를 올려다 보며 배 고팠지 왜 안먹니이 먹어라아 착하지이
몇번이나 몇번이나 시계를 염려하며 나가지도 못하고 울먹이며 혼자 주억거렸다는.

2.
아직총각인 막내와 함께사는 우리엄마 기계치다
사연인즉 모월모일 이른아침 막내가 들어오지 않은날
시간을 맞추어 놓기는 했다
동네 할머니 산악회원들과 먼길 떠나기로 했다
시계는 어김없이 제 임무를 요란하게 수행했다
다음이 문제였다
시간은 저 혼자 줄달음쳐 가지
가방은 챙겨야 하지
밥 한 술은 떠야 하지
멋도 부려야 하지
이래도 안돼 저래도 못해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
겨울 솜이불 확 끄집어내어
냅다 덮어놓고 잽싸게 길을 나섰다는.

3.
우리엄마 불현듯 은실이 언제 오냐 묻는다
핸드폰에 뭐가 또 궁금한가 보다
은실이 어린이집 원장선생님 하던 내 친구다
언젠가 은실이 내게 놀러왔을때
물어보는 것마다 어린아이 가르치듯
몇번씩 웃으며 알려주었다
할머니세계에서 신세대로 통하는 우리엄마
은실이 선생님 손꼽아 기다린다
많이 늙으셨다.


온종일 생각났다


어린아이처럼 맑은 여자 하나 보았다
동 직원 아내였다
어쩜 저리 순하고 맑을 수가 있을까
남자얼굴에 행복이 철철 넘쳐 흐른다
오염된 우리 땅에 저런 여자 있었나
그렇지
우리말이 서투르기만 하다
장가못간 우리동생 온종일 생각 났다.

 


나 이럴줄 알았다 /


돼지띠 복스러운 선배님
이른아침 문밖에서 서성이며 날더러 나오란다
그런것이 아니여 장사하는집에는 그렇게 들어가는것이 아니재
손에 쥔 호박떡은 나줄 요량은 아닌듯하건만
선뜻건네고 나서야 아쉰소리 쏟아낸다

하품을 일삼고 있었다
얼굴맑은 친구가 기별 없이 찾아왔다
이런저런얘기를 풀어놓던중 화들짝 달려나간다
군밤과 옥수수다
이런

저녁을 놓치고 있었다
참한 단골노처녀 내게 들렸다
얘기끝에 저먹으려고 산 단팥 빵 선뜻 내놓는다

아 알수 없는 일
나 이럴줄 알았다
먹을복 터질줄 알았다.

 


한쪽에서 좋을적에는/


새해첫날부터 금반지 하나를 주웠다
호들갑을 떨며 엄마에게 자랑하였더니
우리 엄마 이런 말씀하신다
한쪽에서 좋을적에는 그 반대 편에선 슬픈것이여.

 


 빨간손수건/

 

휴일의 출근길 전철 안은 한가롭다
햇볕마저 한자리 잡고 제집처럼 다리를 뻗고 있다
환승역 금정에 도착하자 사람들 파도처럼 몰려온다
그들 뒤로 한남자 무겁게 들어오더니 무대를 만들고 연설을 시작 한다
남자가슴엔 노란 이름표 달려있고
높이든 한 손엔 고지의 깃발처럼 빨간 손수건 휘날린다
자 이 천원에 모십니다 여러분의 한 끼 식사 값에도 미치지 못 합니다
불현듯 그남자 육중한 사진첩  펼치니
납작한 공간 수많은 장애우들 기우뚱 앉아 분주하다
귀퉁이에 기대서서 무심히 바라보다  낡은 주머니 뒤적일때
안내방송이 흐르고 화들짝 문 열렸다
마음천근 전철 안에 부려놓고 서둘러 내린다
환한 세상 혼자만 건너간다
빨간 손수건  사방에서 종일 팔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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