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는 것이 /
그때 내 나이 열 아홉 살이었다. 냉정한 사회생활을 견디어 낸다는 것은 어리고 여렸던 나로선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매일마다 집에 돌아오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들썩이며 울고는 하였다. 돌아보면 왜 울었는지는 모르겠고 무엇이든 다 서럽기만 하였다. 나이 만큼 성숙하 지 못한 아이 같던 나였다. 끝내 나는 첫 직장을 육 개월만에 그만두게 되 었다.
수많은 갈등 속에 몇 달을 하는 일 없이 흘려 보내게 되었다. 대학으로 멋진 걸음을 내 디딘 친구들도 있었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여 눈부신 차림으로 집을 나서는 친구도 많 았다. 아침저녁으로 어머니가 일구는 밭이나 매고 빨래를 하고 집안 일을 거들었다. 공부를 하고 싶기도 했지만 내 밑으로는 자그마치 남동생만 넷이 버티고 있었다. 나는 부모님에게 대학 가겠노라 하는 말을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돌아보니 집안 일을 거들며 많은 생각의 혼란 속에 휩싸이며 흐린 나날을 보낸 것은 단순 히 시간만을 흘려 보낸 것은 아니었다. 사뭇 단단한 마음이 되어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든 주어진다면 다 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욕망으로 들떠 흔들거렸다. 하루종일 아 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한 집에서 나를 썩힐 수는 없었다.
내가 있을 곳을 찾아야 했다. 매일마다 신문을 샅샅이 훑게 되었고 찾은 곳은 남영동에 있던 큰 차트글씨 학원이었다. 일정기간 수료 후 취직을 시켜 준다는 것이었다. 다부진 마음으로 그곳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많은 청년 실업자들이 가득 했다. 매일 매일 일정기간을 수료한 학생들이 내무부로 국방부로 취직을 하고 있었고 컴퓨터 가 없던 시절 모든 서류들에 좋은 글씨를 필요로 하던 때였다.
나는 아침 아홉시에 학원에 발을 들여놓고 밤 아홉시나 되어서야 기어 나오곤 했다. 모 든 글씨가 그렇지만 챠트 글씨 역시 힘이 들어간 글씨와 그렇지 않은 글씨는 다르므로 도시락 두개를 싸들고 다니며 온힘을 기울여 종일 글씨만 썼다. 오른손 검지는 펜 자국에 움푹 들어 가 버린 기형이 되어갔고 그 살갗은 돌멩이처럼 단단해졌고 열 아홉 살 여린 여자의 손가락 엔 싸인펜 자국으로 하루도 깨끗한 날이 없었다.
그러던 육 개월을 막 넘길 즈음 어느 날 아침 내 손은 펴지질 않았다. 젓가락도 쥐지 못 할 정도로 손에 힘이 쥐어지질 않았고 힘을 조금이라도 주게되면 매우 아팠다. 두 개의 젓가락 은 천근같은 무게로 여겨졌다. 그렇게 젓가락이 무거울 때가 있었나 싶었다. 죽을 듯이 난리 를 치며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동네 이름 있는 침쟁이에게로 찾아갔다. 그 노인은 내 여윈 손을 만져보며 혀를 차는 것이다.
어쩌면 손이 그리 되도록 무슨 일을 하 였냐는 것이었다. 잘못하면 오른 손을 못쓸지도 모른다하며 당장에 글씨 쓰는 일을 그만두어 야 한다는 것이다. 눈앞이 캄캄하고 아뜩해졌다.
젓가락도 쥐지 못하는 손으 로 무엇을 한단 말인가. 그때 태어나서 처음 침을 맞아보게 되었는데 요즘
보게 되는 그런 작고 가는 침이 아니었 다. 어찌나 아프던지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어머니를 붙잡고 놓을 줄을 몰랐다.
두 손 을 다 놓아야 했다. 바보처럼 나는 눈물을 흘려대며 침을 맞으러 다녔고 글씨에 대한 미련 을 버려야 했다. 글씨는 고사하고 어쩌면 나는 일상 생활을 이어 갈지 그것도 의문이었다. 며칠에 한번씩 침을 맞아야 했다. 달포가 지나갈 무렵 나는 돌아 오는 손의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천근같던 젓가락을 쥘 수가 있었다. 손도 못쓰는 인 간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철렁하던 가슴으로 살얼음판을 걷듯 가슴 조이던 시간들이었다.
어느 날 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취직 할 자리가 생겼으니 올라오라는 것이었다. 딱히 글씨 를 쓰는 곳이 아니니 염려 말라 하였다. 생각해보니 정말 아뜩하지 않을 수 없던 나의 미친 글씨 쓰기였다.
그 후에도 열아홉 그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나는 피아노를 배우면서 그림을 그리면서 서예 를 하면서 밤을 새우거나 끼니를 놓치면서 몰두하고는 하였다. 어느 때엔 하룻밤을 꼬박 새 면서까지 미쳐 있고 는 하였다. 간혹 그때처럼 한의원에 다니는 시간들을 만나고 두 손 을 얼 마동안 다 놓기도 하면서. 내 손목은 그야말로 알 수 없는 무지한 나의 열망으로 고난 의 세월 을 살아왔던 것이다.
난 이제 다시 파스를 붙이고 붕대를 감게되는 일이 생겼다. 수월하게 쓰여지지 않는 나의 글짓기 때문에 나는 책을 컴퓨터 자판으로 쳐대며 읽자하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만들었고 일 정량을 매일매일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그렇게 읽고는 하였던 것이었다. 무엇에든 미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함을 알고 있다. 가녀린 손으로 나는 또 다시 무엇을 쥐려고 오늘 도 혹사시 키고 있는 것인가.
"대충" 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아이들이 휴일이면 기다리는 프로그램 속에서 듣던 그 말 이 세상을 떠돌고 있다. 친구들과 얘기를 나눌 때면 대충 이란 말은 어김없이 등장한 다. 저마다 삶의 질곡에서 헤어나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닐 것이다. 봄의 아늑한 바람 처럼 인생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살아가고 싶기도 하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일인지 헛갈리기도 하다. 삶의 여유를 종종 찾고 누리면서 안이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소망 하는 것을 위해 사위로 눈길을 주지 않으며 그저 그 아득한 한 길을 바라보면서 맹진 할 것인가.
어느새 사십의 중반을 넘어선 나이. 이 젊지 않은 나이에 나는 무엇을 얻으려고 몸부림 을 치고 있는 것인가. 대충 얻어지는 것은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몸을 망가뜨리면서까지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은 피해야 함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나는 아직 다 낫지 않은 손목에 붕대를 감고 자판을 치고 있다. 나이 들어 무슨 일 이든 내 것으로 만든다는 일은 얼마나 힘에 부치는 일인지 새삼스레 진작에 공부를 했더라면 하는 씁쓸한 마
음으로 진전 없는 나의 글을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