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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의 글

다림영 2009. 6. 1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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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

 

 

 꽃들의 향연으로 들뜬 세상이었다. 그와는 정 반대로 나는 삶의 질곡에서 고뇌하고 있었
다. 그러하던 어느 날 친구의 느닷없는 부름이 있었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친구였다. 나는
 그 누구와도 어울릴 수 없었던 마음이었지만 달려가야 했다. 그 친구는 봄보다 따뜻하고 환
한 여자였다.

 

 


 그녀가 초대한 몇 명의 친구들은 세상 돌아가는 얘기, 끈끈한 가족 얘기, 자신들의 소소한
아픔 그리고 슬픔을 떨어뜨리며 술잔을 주고받았다.
난생 처음 지축이 심하게 흔들렸다. 노래한곡 제대로 불러보지 못했으나 몸과 마음 날개를
단 듯 가벼웠고 유쾌했다. 격이 없는 친구들의 만남이란 그랬다. 고단한 현실이지만 철저히
 잊게도 되고 어디론가 날아가는 꽃잎의 우리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간신히 눈을 뜨고 일어난 아침, 아뿔사....
 내 기막히던 모습이 영화 필름 처럼 연속 상영 되니 숨고만 싶었다. 함께한 친구들에게 사
과의 메시지를 보냈다. 다들 웬 용서를, 하며 즐거웠던 시간들만 언급 했다. 오호라, 갑자
기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는데 이렇게 친구들은 봄의 기운으로 어루만져 준
다. 그 온기로 기지개를 펴게 한다.

 전화벨소리조차 우렁차게 들렸다. "숙희야 점심 언제 먹을 거니?"
그렇지 않아도 답답하고 달랠 수 없는 속으로 고민하던 차였다.

 

 


 "기다려...."
 집을 옮겨야 하는 분주하고 고단한 일정에도 맹꽁이 같은 친구를 위하여 속 풀이 국 을 양
은냄비 뜨겁게 달구어 살뜰히 담아 차에 싣고 달려왔다.
 "어여 먹어, 식기 전에...."

 


 그러고 보니 친구는 엄마 같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있어 언제나 따뜻한 봄이다. 봄은 나를
어린 아이처럼 챙겨주고  얼음 같던 일상들을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모든 사물이 다정하게 보인다. 드디어 내게도 봄이 왔나보다. 오늘 이 걸음엔 씩씩함 또한
묻어있다. 첫 아이를 낳고 친정엄마의 전화 한 통화에 눈물에 젖어들듯 그저 감동스러운 물
결로 출렁인다. 따뜻한 국물을 흠뻑 들이 마신다. 혼자 넘길 수 없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하
고 내가 먹는 국물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나는 누구에겐가 봄처럼 다가간 일이 있었던가. 돌아보니 나를 두고 친구만을 위한 생각
은 해 보지 못했다. 가까워도 거리를 두었고 항상 내 안위가 먼저였고 봄의 온기로 스며들
지 못했다.
아득하고 아득해서 눈물겹던 봄날, 계절이 옷을 바꿔 입은 지 긴 시간이 지났으나 나는 겨
울 속에 틀어박혀 있었다. 불황의 파도에 휘말리며 두려워 옴짝달싹 하지 못했다.
 친구라 불리 우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꽃이 내게 각별한 웃음과 눈부신 봄을 선뜻 안겨주
었다. 잊고 지내던 소중한 행복에 다시금 눈을 뜬다.
 출근길, 우아한 목련이 담장 너머로 미소를 보낸다. 목련보다 희고 환한, 친구라는 꽃에 입
을 맞추어본다. 더없이 깊어가는 봄이다. 어디선가 라일락 향기가 실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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