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몇 푼에 달랑 매달려 살던 청춘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주말이면 들로 산으
로 여행을 떠났다. 배낭 하나 둘러메고 청량리 역 에서 밤 열차를 타고는 했다.
우리들의 배낭에는 감자, 쌀, 라면, 김치, 호박, 커피...... 그러한 것들이 물기
가 채 가시지 않은 채 들어 있었다. 산에서 밥을 해먹던 시절이었다. 고작해야
일박이일의 여정에도 먹을 것들을 짊어지고 다녔다.
스물둘!
아 우리에게도 그런 나이가 있었다. 아름다운 봄 이슬 같은 눈물겨운 나이가 있
었다. 엊그제 본 영화처럼 눈에 선하기만 하다.
청량리에서 밤 열한시인가 그곳으로 가는 마지막 열차에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엔 사람들의 알싸한 냄새가 구름처럼 떠다녔다. 기타반주로 서정적인 노래
를 부르는 청춘들도 있었고 가위 바위 보 하며 게임을 하는 아이 같은 젊은이도
있었고 따스한 얼굴로 어깨를 기대고 손을 마주 잡은 채 창밖을 내다보는 다정한
연인들도 있었다. 이젠 어디서 그러한 풍경을 다시 만날 수가 있는 것일까. 기
차 안에서 각별한 인연이 맺어지기도 하는 시절. 어쩌면 우리는 그러한 애틋한
소망 하나 저마다 가슴에 품고 기차에 올랐을지도 몰랐다.
풍기.
암담한 새벽 1시를 조금 넘긴 시각 기차는 그곳에 도착했다. 몰려오던 졸음은 차
갑고 시린 공기에 화들짝 깨어났다. 옷깃을 여미며 역을 나서니 사방은 적막하고
고요했다. 우리들의 발자국 소리조차 쿵쿵 사위를 울렸다. 소백산 입구까지는
걷기에는 멀었다. 우리 뒤에는 시커먼 남자 몇 명이 따라오고 있었다. 우리는
무서움도 없이 무언가를 물을 요량으로 다가가니 그들이 문득 동행을 하자고
했다.
깊은 새벽 택시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면 새벽산행을 감행하는 이들
이 종종 있는가 보았다. 택시는 소백산으로 거침없이 달렸다. 그곳으로 가는 길
의 어둠은 칠흑 같았다. 그 깊이 가 어느 만큼인지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어느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했다. 단 두 대의 택시만이 새벽의 정적
을 뚫고 바람을 일으키며 달렸다.
입구에 도착하니 우레와 같은 계곡의 물소리가 먼저 반겼다. 헤아릴 수 없는 수
많은 별들이 눈처럼 쏟아질 것 같았다. 북두칠성을 찾아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투명한 밤이 있을까. 시리고 시려서 작은 눈은 얼음처럼
차가워지고 느슨했던 몸은 푸르르 떨며 깨어났다.
무슨 짐승의 소리인지 알길 없는 소리 또한 쉼 없이 들려왔다. 오싹해지는 등
허리를 느끼며 맨 뒤가 되지 않으려고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예의가 바르
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우리를 가운데로 두고 앞뒤로 보호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두어 시간 올랐을까 그들이 쉬었다 가자했다. 우리를 생각해서 하는 소리였다.
그들은 정석으로 산을 타는 사람들인지 몸에 지닌 장비는 철저했다. 우린 등산
화를 갖춘 것이 전부였다. 조금은 부끄러운 생각도 있었다.
여기저기서 작은 덤불을 모으고 불을 지폈다. 지금 같으면 쇠고랑 찰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엔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편편한 자리를 잡고 동그랗게 둘러앉아
모닥불 을 피웠다. 얼마나 근사한 새벽이었는지…….
참을 하자며 빵과 우유를 꺼내는 그들에게 뜨거운 국물을 나누고 싶었다. 우리
는 배낭을 열고 라면을 꺼냈다. 듬성듬성 감자도 썰어 넣고 호박도 넣고 고추도
넣었다. 알큰한 냄새가 캄캄한 숲을 휘저으며 사방으로 퍼져 갔다. 하얀 김이
시골 집 부뚜막처럼 다정하게 피어올랐다.
후루룩 후루룩…….
고단한 산행 속에서의 그 맛을 경험하지 않는 자 그 누가 알 수 있을까. 생각만
으로도 침이 절로 넘어간다. 그때를 회상하며 혼자 미소를 멈추지 못한다.
모닥불연기를 휘휘 내몰며 눈물을 서너 방울 떨어뜨릴 즈음 그들은 자신들을 소
개 했다. 그림을 공부한다고 했던가. 만화를 그린다고 했던가......
착한 남자들의 낮은 웃음소리, 스물둘의 수줍게 상기된 볼, 뜨거운 라면국물,
그리고 청춘의 향기를 피워 올리던 커피......
보잘것없던 우리 청춘의 새벽은 투명한 밤하늘의 별처럼 빛이 나고 있었다. 알
수 없던 어느 날 불현듯 만나 산을 함께 오르는 인연. 적당한 휴식을 뒤로 하고
고지를 향하여 힘찬 발걸음에 몸을 실었다.
소백산은 길고 완만했다. 몇 시간을 올랐는지 정확한 시간의 기억은 없다. 다리
는 무거웠고 머리는 시리도록 차가웠다. 정상의 고지에 올라섰을 때 날카롭고 거
센 바람은 몸을 파고들었다.
날은 서둘러 밝아왔다. 나무들은 구불구불 몸을 뒤틀어져 있었다. 낮은 산에서
볼 수 없는 형태의 나무였다. 이제 찾아보니 그 나무 이름이 주목이라고 한다.
그곳에는 천여그루가 천연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나무 사이사이로 갈대가 흐드러져 있었다. 그 흔들림 속에서 머리카락을 흩날리
며 서로 꼭 붙어 사진을 찍었다. 그들과도 ‘치즈’ 하며 함께 찍었다. 건강하고
순한 얼굴을 지닌 청년들이었다.
아득한 저 멀리 오랫동안, 끊임없이 이어진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만들어진 좁다
란 산 길. 그 정상의 길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걷다보면 누군가의 마음속
그 깊은 어딘가로 연결되어 있을 것만 같던…….
우리도 그 한 길을 따라 걸었다. 묵묵히 거센 바람을 가르며.
서둘러 하산을 했다. 그들은 서울사람들이었고 안양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후에 안양 삼원극장 지하다방에서 함께 만나기로 하고 그들과 헤어졌다. 그다음은
생각이 잘 나질 않는다. 사진을 주었는지 어쨌는지도 기억에 없다.
그들은 우리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그저 소백산의 깊은 새벽부터 몇 시간의 인
연으로 끝을 맺었다. 각별한 인연은 만들지 못하고 아쉬움을 남긴 채.
스물둘의 새벽산행은 그렇게 끝이 났고 오랫동안 가슴깊이 자리했다. 짐승소리,
깊은 계곡의 물소리, 두런두런 인간의 낮은 소리, 앞에서 불을 밝혀 안내해 주
고 뒤에서 여자들을 보호하던 남자들의 곧은 마음의 소리가 있었다. 착하고 맑
은 청춘의 소리, 그 온기 있는 소리들이 보이는 듯하다.
이제 그들도 우리처럼 하나 둘 깊은 주름을 만들어가며 세파에 시달리며 살고
있으리라. 가끔 산행을 계획하고 정상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기도 하리라.
청량리 발 늦은 밤기차를 타고 풍기역에 성큼 발을 내딛던 우리들의 스물둘은
추억의 숲속으로 사라졌다.
문득 눈을 감으면 별이 눈처럼 쏟아질 것 같던 밤하늘과 모닥불연기를 휘휘 내
젖던 스물둘의 여린 손짓이 '여기 앉아' 하며 웃음 건넬 것 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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