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집 부근에서 가볍게 살고 있는 것들을 사랑했다. 병아리떼 오리떼 새떼 염소떼나 물 속의 송사리떼 비바람 속의 옥수수떼, 그런 것들...
찬란한 봄은 찬란한 만큼 그늘을 가지고 있다. 어느계절보다도 봄날의 공기 속에서 막 잠에서 깨어나거나 잠들려 할 대, 이 세상엔 아무 희망이 없이도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상기한다.
어렸을 때 나는 사랑하는 것은 서로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아주 깊은 속에 있는 아주 내밀한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서로에게 옮겨주듯 말해주는 것, 비밀을 나눠 갖는 것이라고. 다른 사람은 못 알아듣는 이야기를 그는 알아듣는 것이 사랑이라고... ....
좀더 자라... 우리가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사랑은 영원해도 대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아야 했을 때, 사랑이란 하찮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다가갈 수 없는 것, 금지된 것, 이제는 지나가버린 것,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향해 그리움은 솟아나는 법이다.
사랑을 오래 그리워 하다보니 세상 일의 이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성과 소멸이 따로따로가 아님을, 아름다움과 추함이 같은 자리에 있음을, 해와 달이, 바깥과 안이, 산과 바다가, 행복과 불행이.
그리움과 친해지다 보니 이제 그리움이 사랑같다.
흘러가게만 되어 있는 삶의 무상함 속에서 인간적인 건 그리움을 갖는 일이고, 아무것도 그리워 하지 않는 사람을 삶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으로 받아들이며, 악인보다 더 곤란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그리움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게 됐다.
그리움이 있는 한 사람은 메마른 삶 속에서 도 제 속의 깊은 물에 얼굴을 비춰본다, 고.
사랑이 영원하지 않은 건 사랑의 잘못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의 위력이다.
존재의 가장 깊숙한 곳을 관통해 지나간 이름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말하여질 수 없는 것들, 마음을 붙이고 싶은 신기루들, 붙잡으려 하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것들, 다가왔다가 멀어져가는 것들, 끝끝내 암호처럼 남을 견뎌야 할 것들.나는 막막함에 휩싸여 눈먼 소의 등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어주며 음매거렸다.
"드가는 언제나 혼자 있다고 느꼈고, 혼자 있었다. 성격 때문에 혼자 있었고, 특출난 본성 때문에 혼자였고, 성실성 때문에 혼자 있었고 오만한 엄격성 때문에 혼자였고, 굽히지 않는 원칙과 판단 때문에 혼자였고, 자기 예술, 다시 말하자면 자신에게 자신이 요구한 것 때문에 혼자였다."-폴 발레리.
이렇게 힘이 잘못 들어가 피투성이가 뙈버린 시절이 있었다.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땐 이미 잘못된 대로 너무 친숙해져 있어 돌이킬 수 가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잘못됨을 껴안을 수 밖에. 껴안고서 점점 더 잘못되어갈 수밖에. 거기에도 바닥이 있었다. 그 바닥까지 가지 않았으면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시간은 잔인하지만 공평하다. 잠들어 있는것, 깨어 있는 것, 여기에 있는 것, 저기에 있는 것, 모든 것들 위로흘러간다. 모두에게 어린 시절을 주고 모두에게 청년을 주고 모두에게 노년을 준다. 나와 그를 가리지 않는다.그러니 무서워 하지 말자.
예기치 않았던 슬픔이 있다면 또 예기치 않았던 기쁨도 있겠지. 그러겠지, 하는 데도 끈질기게 소슬해진다.
..
꿈은 오로지 사라지기만 하는 건 아닐 거다. 육체는 오로지 낡아가기만 하는 건 아닐거다. 사라지고 낡아가면서 남겨놓았을, 생에 새겨놓았을 비밀을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뿐일 거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함부로 살지 않는일. 그래, 함부로 살지 말자, 할 수 있는데 안 하지는 말자, 이것이 내가 삶에게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적극성이다.
기어이 잊어야만 하는일을 벌써 갖지 말자. 왔다가 가버린 것, 저기에서 진이 빠져 마침내 숨을 죽인것, 여기에서 다시 생기를 줘 살게 하자. 시간에 빼앗기기 전까지 아무것도 잊지 말자. 겉도는 주장으로가 아니라, 이 흘러가는 시간의 무상함 속에서 그를 기억하는 직관으로.
꽃은 여전히 순한데 우리는 이제 익명이 되었습니다.
꿈은 샘물과 같이 소리없이 와서 그의 절망을 적셔 주었다.
시간은 되풀이 되지 않지만 지나가는 일도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사소한 일이라도 그들은 지나가며 생김새와 됨됨이를 새로 갖는다.
이제 슬픈꼴을 버리고 다른 사유를 원한다.... 라고 썼던데, 슬프다고 쓰면 되냐? 아프다고 썼어야 맞지. 슬프다는 말은 이미 체념한 사람이나 옛날 일은 이미 지나갓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선량하고 고귀하게 행동하는 인간은 단지 그 사실 하나만으로 불행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내 삶으로 입증하고 싶다"-베토벤
새로운 시간은 완전히 다른 시간 속에서 오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의 기쁨과 지금까지의 슬픔을 바탕으로 해서 온다. 아무리 새롭다고 해도 그 바탕 위에서 시작된다. 지나가는 시간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몇 통의 연하장에 우표를 붙이고 국경 바깥의 친구를 한번쯤 더 생각하고 다다리 조금씩 보내던 기아대책 기구의 후언금을 단지 잊어버린 탓에 두 달쯤 거르고 있는 것을 깨닫고 다시 한번 챙기게 되는 정도가 아닐런지.
자라보면 설명할 수조차 없는 이별이 많아...헤어져야 할 사람이 만날 사람보다 더 많아....다시 만날 수 없는 줄도 모르고 네자신이 떠나게 될 때도 있을 건데....울지마라.
내가 살아낸 시간들인데, 마치 남의 추억을 들여다보듯 보고 있다. 어떤 것속에선 무슨 생각이 날 듯 날 듯 하기도 하다. 추억에 붙들려 있으면 슬퍼지기도 한다. 겨우 사진 한 장으로 남아 있는 그를 볼 적엔 눈물이 돌기도 한다. 책상이나 선반 서랍 속이나 노트 속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어제들.
친구를 갖고 싶어 편지를 쓰던 밤시간도 나를 통과해 가버렸다.
..
많은 것들이 그 시간속으로 스쳐지나갔다.
싸울일이 있으면 입을 다물어 버렸고, 상대편이 고갤 쳐들면 묵묵히 숙여버렸다. 한순간을 모면하는 것들로 나는 시간 속을 지나왔다.
당분간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좀 낯설 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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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늘 이렇듯 가슴에 들어왔던 글을 적는다.
돌아서면 잊고 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읽어보는 글귀들이다.
그녀의 글을 지속적으로 읽다보니 그녀를 조금은 알수 있을 듯하다.
말이 없고 싱거울 것 같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고 정스럽고 은근하고 그저 보통사람일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 눈에 띄지도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너른 들판 ..바람에 일렁이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들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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