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누나가 한 분 계시다.
누나, 하고 부르면 한 겨울의 얼음 조각 같던 은하수도 솜이불이 되어 내려올 듯하다. 밥상 보자기를 적신 동치미국물처럼 그 은하수 이부자리에 흠뻑 오줌을 싸도 누나, 하고 부르면 금세 보숭보숭 마를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누나의 삶에 짐이 될 뿐이었다. 누나는 나보다 세 살이나 위였지만 내가 여섯살의 어린 나이로 초등학교에 입학
하게 되는 바람에 학교로는 1년 선배일 뿐이었다. 그게 문제였다. 농사는 뒷전인 채 새마을 사업에만 헌신하던 아버지의 경제로는 자식 둘을 고등학교에 보낼 수 없던 터라서, 누나는 장남인 나를 위해 여고 입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한동안 누나는 완강하게 저항했다. 아버지가 술만 줄이셔도 이장직을 내놓고 돼지 세마리만 키우셔도 충분할 것이라며 눈물깨나 뿌렸다. 나는 바위같은 어머니의 한숨과, 배운 여자들 고생만 한다는 할머니의 먼산 사이에 끼여 아무말 못하고 눈치만 살펴야 했다.
누나는 마지막 결전인 양, 숟가락 하나를 들고 골방에 처박혔다. 단식투쟁에 웬 숟가락인가? 밤이 이슥해지면 문고리에 꽂아 놓은 누나의 상처난 열여섯 살에서 딸가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께서 고구마나 누룽지를 들여놓는 것이리라. 그럴때면 나는 침도 못삼킨 채'능력개발'이란 보충 문제지를 건성으로 넘겨댔고, 아버지는 마른 기침 소리만 양철지붕 너머로 퍼내고 계셨다.
1주일이 지난뒤, 아버지는 극적인 타협안을 내놓았다. 태안여상 학생들이 입는 보라색 코트 한 벌을 맞춰 줄 것이며, 1년만 농사를 거든뒤 취직을 해도 좋다는 것이었다.
노라노 양장점에서 코트를 찾아다 놓았지만 누나는 딱히 갈 곳이 없었다. 보라색 코트를 입고 무논가에 앉아 냉이와 씀바귀를 캐던 누나는 나를 한없이 슬프게 했다. 새 코트를 버리지 않으려 허리에 묶어 맨 꼬락서니 때문에 나는 더 눈물을 떨궈야 했다.
지금까지도 나는 보라색과 국방색을 가장 슬픈 색이라고 생각한다.
우울한 1년이 지나고 누나는 읍내에 있는 동화전자주식회사에 취직을 했다. 진학하지 못한 슬픔을 달래려는 듯 누나는 박봉을 쪼개 월부책을 들여 놓았다. <한국여류수필문학>이라는 책이었던 것 같다.
누나는 그 전집에 보너스로 딸려온 <한용운의 명시>라는 시집 한 권을 선물로 내게 주었다. 내가 이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만난 시집이었다. 그로부터 나는 시라는 것을 끄적거리게 되었으니, 나의 문학적 꿈은 한국 시단의 말석에 부록이나 보너스라도 되는 것이다.
해마다 홍성에서는 만해제가 열린다. 올해, 나는 '제 3회 만해 문학의 밤'에서 사회를 맡아보는 영광을 누렸다. 얼마나 기묘한 인연인가. 행사를 진행하다가 백일홍 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누나와 눈이 마주쳤다. 조명을 받은 누나의 옷이 순간 보랏빛 번개가 되어 내 눈자위를 훓고 지나갔다.
누나, 하고 부르면 언제나 내 마음에서는 보랏빛 제비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것이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보랏빛 꽃들과 은하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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