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풍경

가을산행에서

다림영 2008. 9. 29.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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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암 해우소를 다녀오다 문득 올려다 보았다.

빨래는 없고 빨래집게만 오롯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염된 내속의 것들을

염불암 해우소한켠에서 힘껏 빨래하여 헹구어  탁탁 털어

저 단단한 집게에 의지하여 반듯하게 널어 둔다면

가을바람과 햇살 속에서

희고 눈부신 마음이 될지도 모르겠다.

 

 

 

늦은 출발이었다. 삼막사에 다다르니 두시가 넘었다. 배가 많이 고팠다.

나의 가방엔 막걸리와 김치만 달랑 들었고 먹을 것들은 모두 그의 가방에 들어있었다.

그가 도착하려면 족히 이십분은 있어야 했다.

아이들이 먹다 둔 호밀식빵 두조각을 넣은 것이 생각났다.

삼막사 커피가 그렇게 맛날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떤 지적인 여자가 계속 나를 바라봄이 의식되었다.

그녀역시 단풍잎이 그려진 종이 커피잔을 쥐고 있었다.

아마도 나의 한손에 들린 그 식빵 때문이었으리라.

그녀가 옆에 앉아있었다면 선뜻 건네었을터

그러나 그녀는 내게서 너무 멀리 있었고

또한 나는 어느결에 게눈감추듯 다 먹어가고 있었다.

 

 

백팔번의 절을 꼭 해야 하리라고 나섰드랬다.

세시간넘은 산행과 막걸리를 한탓으로 약간의 취기가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렸으나 마음조차 흔들거렸으나

무사히 절을 마치고 신발끈을 묶다가 불현듯 그들을 만났다.

가슴한가득 흰꽃은 들어차고 

그 오후엔 향기로 내내 출렁였다.

 

 

 

하얀획 하나를 그으며 비행기는 산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내 마음에도 흰 줄 하나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생의 전반전과 후반전이 나뉘는..

자 이제 生의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항아리안의 그 무엇처럼 발효가 되어가며

변화된 모습으로 나는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가.

아니면 오랫동안 고여있어 썩어가는

버릴수 밖에 없는 무엇을 지니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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