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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오쇼外

다림영 2008. 9. 10.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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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방식

남미에서는 행동방식이 인간과 아주 흡사해서 언제나 리더를 추종하는 특이한 벌레가 있다고 한다.

한 과학자가 이 벌레들의 이상한 행동방식을 연구했다.

그는 테두리가 있는 둥근 쟁반에 벌레들의 리더를 올려 놓고, 그 뒤로 다른 벌레들을 원형으로 배치했다.

그랬더니 벌레들은 원을 그리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쟁반위에는 가야 할 목적지가 없었고 , 그렇다고 정지할 수도 없었다. 앞의 벌레가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벌레들은 그렇게 모두 지쳐 죽을 때까지 앞서가는 벌레를 뒤�으며 원을 그렸다.  끝없이 돌고 돌아 마

침내 벌레들은 한마리씩 쓰러져 죽었다.

먼저 늙은 벌레가, 그리고 그뒤를 따라 젊은 벌레도...

마침내 언린 벌레마저 쓰러졌다. 불과 1주일 이 지나지 않아 쟁반위는 죽은 벌레들의 시체천지로 변했다.

 

과학자는 그 벌레들이 인간의 행동방식과 매우 흡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방식이

그러한 것이다.

 

결정

삶에 있어서 어떤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부담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결정하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결정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다.

이두가지 방법은 근본적으로 결정의 책임으로 부터 벗어나려는 점에서는 똑같다. 신세대는 후자, 즉 방

임하는 쪽을 선택했고,구세대는전자를 선택했다.

 

 

그러나 그대가 뗏목을 타고 흐르는 물살에 몸을 맡긴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 스스로의 결정에 따르고 있다

고 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이 그대를 돕고 길을 가르쳐주더라도 결정은 반드시 그대가 직접하라. 왜냐

하면 그대의 정신은 그대의 결정을 통해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대가 결정을 하면 할 수록 그대는 완전하게 가까워 진다. 물론 그대가 그대를 책임지면 책임질수록 더욱

위험해질 것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라. 삶이란 원래 위험한 것이다. 그대는 기꺼이 그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대가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은 많지만 사람은 실수를 통해 배우게  마련이다. 삶이란 그 자체가 시

행착오인 것이다.

 

그대가 결정해야 한다. 결정은 숙명적이며 그것을 피할 방법은 없다. 그대는 길을 잃고 헤맬수도 있겠지

만 거기에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 길을 잃고 헤매라. 그러면 그대는 뭔가를 배울 것이며, 그대의 삶은 더

욱 풍요로워 질 것이다.

 

그대는 돌아올 수 있으며, 오히려 길을 잃었던 것을 다행으로 여길 것이다. 왜냐하면 길을 잃어버림으로

써 수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은 그대가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용기를 지니고 있

을 때 그렇다. 그리고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라는 것. 그 한가지만을 기억하라!

 

性이 사랑의 출발점이라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진리다. 또한 성은 사랑에 이르는 여로의 시작이자 사랑

의 기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옛날부터 성을 인간의 적인 양 터부시해왔다.

모든 문화의 종교, 성직자들은 맹렬히 공격해 왔다.  그리하여 저 도도한 '성의 강' 은 억눌린 채로 끊임

없이 흘러왔던 것이다.

 

범죄자를 뒤�는 고함소리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성은죄악이다. 성은 비종교적이다. 성에는 독이 스며

있다고! 사람들은 삶을 여행하면서 사랑의 바다에 이르는 것이 궁극적으로 성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사랑은 성 에너지가 변형 된 것이다. 성이라는 씨앗으로부터 사랑의 꽃이 피어난다는 사실

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여기서 잠깐 석탄에 대해 생각해 보자

석탄이 변형된 것이 바로 다이아몬드라는 사실을 당신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석탄덩이 속에 있는 성

분은 다이아몬드 속에 있는 그것과 같다. 본질적으로 그 둘은 다를 게 없다. 수천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

안 석탄이 다이아몬드로 변화한 것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석탄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석탄이 집 안에서 땔감으로 쓰일 때 다이아 몬드

는 누구에게나 잘 보이게 목이나 가슴에 걸린다.

만약 당신이 검은 매연밖에 주는 것이 없다는 이유로 석탄을 반대한다면 바로 그 순간 석탄이 다이아몬

드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은 끝나 버린다. 우리는 석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이 발전할 수

있는 어떠한 가능성도 끊어지고 만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이다.

 

성에너지는 사랑으로 승화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인류의 위대한 사상가드을 포함한 많은 사람

들이 그것을 반대해왔고 지금 역시 반대하고 있다.

이것은 잘못된 관념의 산물이다. 이제 새로이 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정리하여 올바른 시각을 가져야 한

다.

 

사랑에 도달하는 가르침이어야 하는 성이 사랑의 최고 목적지를 향해 가야 하는데 곁길로 빠져 엉뚱한 곳

에서 방황하고 있다. 이제성을 바른 길로 이끌어 성의 본래 목적인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오쇼라즈니쉬-

 

 

 

무한한 시간속에서 한 인간이 차지하는  인생이란 순간에 불과하며 그의 존재는 끊임없이 윤회한다. 또한

그의 깨달음은 우둔하고 혼탁하며, 그의 육체는 이내 썩어 문드러질 운명을 지니고 있다. 운명은 예측불가

능하고, 영혼은 한 줄기 회오리 바람이다.

 

다시 말해 육체에 속한 모든것은 굽이치는 물결이고, 영혼에 해당하는 것은 꿈과 환상과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삶은 하나의 전추이며 후세에 남는 명예란 망갈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무기력한 인간을 깨우치고

인도할 힘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오직  하나, 바로 철학이다.

그렇다면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 정신과 영혼속에 신성을 안치시키고,그것을 모독하거나, 해치는 일없이 욕망과 쾌락을 초월

하여 행동하고, 거짓과 위선을 행하지 말며, 행동이나 의사에 흔들림이 없는 것이다.

 

또 모든 정해진 운명을 자신과 같은 원천으로 부터 나온것으로 자각하고 무엇보다 모든 생물이 그 구성

분자로의 환원에 불과한 죽음마저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죽음은 각 생물을 구성하고 있던 원소의 분해작용이다. 그것은 자연의 한 현상이며, 자연에 종속되어 있

는 것이니 두려움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와 부딪혀도 굳건하게 버티고 서 있는 저 바위언덕을 닮아라. 끄떡없이 버티기만 하

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거칠던 파도도 곧 잔잔해진다.

'이런일이 닥쳤으니 나는 얼마나 불행한 놈인가. 라고 절대로 말하지 말라. 오히려'이런일이 나에게 일어

났지만 나는 행복하다. 나는 고통으로 부터 자유롭고, 현재의 시련에 흔들리지 않고, 미래의 공포에도 압

도 당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라.

 

뜻밖의 일이 생기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모두가 침착하게 그 상황을 이겨내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번뇌에 시달릴 때마다 반드시 기억해두고 적용해야 할 원리가 있다. '이것이 불행이 아니다. 이

것을 남자답게 잘 참고 견디어내는 것이 오히려 행운이다'라고.

 

언제나 지름길을 택해 나아가라. 그 짧은 길이야 말로 자연이며, 자연이 가르쳐 주는 길이다. 그리고 행동

과 말에 있어 이성에 순응하도록 하라. 그것이 번뇌와 투쟁, 일체의 기교난 허세로 부터 당신을 해방시킬 것이다.

 

무한하고 헤아릴 수 없는 시간중에 각각의 인간들에게 할당된 시간은 얼마나 짧은가. 그것은 순식간의

영원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우리는 각자의 물질 전체에서 얼마나 작은 일부분인가.

우리의 영혼은 우주 전체의 영혼중 얼마나 미세한 일부분인가.

지구 전체에 비하면 당신이 기어다니는 땅은 또 얼마나 보잘것 없는 가.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당신의 이성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고, 보편적 본성이 가져오는 것을 인내하는 것

외에는 그 무엇도 위대하지 않음을 늘 기억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우정에 대하여

그대들의 친구란 그대들의 모자람을 채워주는 존재다.

사랑으로 씨를 뿌려 감사로써 수확하는 그대들의 들.

또한 그대들의 식탁이며 아늑한 집이다.

그대들의 친구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 그대들은 자기만의 생각으로'아니야' 라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고, '그렇지'라는 말을 억제하지도 말라.

 

그가말없을 때라도 그대들의 가슴은 그의 가슴의 소리를 들으려고 애써라.

말없이. 우정속에서는 모든 생각, 모든 욕망, 모든 기대가 갈채 받지 않아도 기쁨으로 태어나고 나누어지는

것. 친구와 이별할 때도 슬퍼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대들이 친구에게서 가장 사랑하는 점은 그가 없을 때 더욱 뚜렷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마치 산을 오르는 이에게 산은 벌판에서 더욱 선명하게 보이듯이.

 

그리고 우정에 영혼의 심화외에 결고 어떤 목적도 두지 말라. 왜냐하면 자신이 신비를 드러내는 것외에

또다른 무엇인가를 찾는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므로, 단지 던져진 그물에 지나지 않을 뿐. 오직 무익한

것만 걸려드는 그물.

 

그러므로 그대들의 친구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라.  그가 그대들 마음의 조수의 썰물 때를 안다면 밀물때도

알게 하라. 단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찾는 친구. 그런 친구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언제나 시간을 알리기 위해 친구를 찾아라.

그대들의 요구를 만족시킴은 곧 그의 요구도 만족시키는 것,결코 그대들의 공허를 채우는 것은 아니기에.

 

그리하여 부드러운 우정속에 웃음이 깃들게 하고 기쁨을 나누어라.

하찮은 이슬방울 속에서도 마음은 아침을 찾아내고 다시 불타오르기에.

 

사랑에 대하여

사랑이 그대를 부르면 따르라. 비록 그길이 험하고 가파를 지라도.

사랑의 날개가 그대를 감싸안을 때는 그 사랑에 몸을 맡겨라. 비록 사랑의 날개 속에 숨은 칼이 그대를

상하게 할지라도.

사랑이 그대에게 속삭일 때는 그말을 믿어라. 비록 북풍이 저 뜰을 폐허로 만들듯 사랑의 목소리가 그대의

꿈을 무너뜨릴 지라도.

 

왜냐하면 사랑이란 그대에게 빛나는 영예의 관을 씌우는 만큼 그대를 괴롭히는 것이기에. 사랑이란 그

대를 성숙 시키지만, 또 그만 큼 그대들을 괴롭히는 것이기에. 사랑이란 그대를 성숙시키지만, 또 그만

큼 그대들을 잘라버리기도 하는 것이기에.

 

심지어 사랑은 그대 속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 햇빛에 떨고 있는 그대의 가장 부드러운 가지를 어루만

져 주지만, 또 한편 그대 속의 저 밑 뿌리로 내려가 땅속에 엉켜 있는 그것들을 마구 흔들어 대기도 하는 것

이기에.

 

사랑은 마치 곡식 다발처럼 그대를 자신에게로 거두어 들이는것.

사랑은 그대를 두들겨서 벌거벗게 하는 것.

사랑은 그대를 체로 쳐서 껍질들을 모두 털어버리게 하는 것.

사랑은 그대를 찧어서 하얗게 변하게 하는 것.

사라응ㄴ 그대를 부드러워질 때까지 반죽하며. 신의 고결하고 숭고한 향연을 위한 빵이 되도록 성스러운

불꽃위에 올려 놓는것.

 

사랑은 이 모든일을 그대에게 행하여 그대로 하여금 마음의 비밀을 깨닫게 하고 , 그 깨달음으로 삶의 가슴

의 한 파편이 되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두려움 속에서 사랑의 평화와 기쁨을 찾으려 한다면, 차라리 그대의 알몸을 가리고 사랑의

타작 마당으로 나가는 게 나을 것이다. 계절도 없는 세상으로 , 그대가 마음껏 웃고 싶어도 웃을 수 없는,

그대가 마음껏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곳으로.

 

사랑은 저 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으며, 저 외에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것.

사랑은 소유하지도 소유당하지도 않는것.

사랑은 단지 사랑 하나로만 충분할 뿐.

사랑할 때, '신은 나의 마음속에 계시다'라고 말해서는 안되리라. 그보다 '나는 신의 마음속에 있다'

라고 말해야 하리.

 

또한  그대가 사랑의 길을 지시할 수 있다고 생각지 말라. 만약 그대가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된다면

사랑은 그대의 사랑을 지시할 것이므로.

사랑은 스스로를 충족시키는 것. 그 외에 다른 욕망은 없다. 그러나 그대가 사랑하면서도 다른 욕망을

품지 않을수 없다면 다음의 것들이 그대의 욕망이 되게하가.

 

녹아서 밤을 향해 노래하며 흘러가는 시냇물이 되기를.

지나친 다정함의 고통을 알게 되기를.

자기 스스로 사랑을 깨달음으로써 상처 입게 되기를. 그리하여 기꺼이 기쁘게 피 흘리게 되기를.

날개 달린 마음으로 새벽에 일어나 사랑의 하루를 향해 감사하게 되기를 .

 

정오에는 쉬면서 사랑의 황홀한 기쁨을 생각하기를.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질 무렵 감사하는 마음으로 귀가하게 되기를.

그런후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마음속 깊이 기도하고 그대의 입술로 찬미의 노래를 부르며 잠들게 되기를.

 

-칼릴 지브란-

 

 

어떤 우정은 아주 쉽게 깨어져 그 성분에 결함이 있음을 드러낸다. 그것은 거짓과 반감으로 가득찬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기분은 농담도 진담도 견디지 못하고, 자기 눈동자보다 더 연약하다. 의미 없는 사소한 일에

결말도 못보고 기분이 상한다.

 

그들과 교제하는 사람도 극도로 주의해야 한다. 항상 그들의 연약함에 신경쓰고 표정도 살펴야 한다.

조금만 나쁜일에도 불쾌함을 드러내는 그들은 대부분 아주 괴짜다. 자기 기분의 노예가 되어 모든 것을

내팽개친다.  스스로 환상에 빠져 명예를 우상처럼 숭배한다. 반면에 사랑하는 사람의 감정은 다이아몬드

처럼 단단하고 오래간다.

 

친구는 여러차례 시험하고 선택해야 한다. 단지 끌리는 마음이 아닌 통찰에 의해서. 시간을 메우기 위한

친구들도있지만 대부분의 친구는 우연히 생긴다. 사람은 그 친구를 보고 평가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좋아지더라도 그와 절친한 친구관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그의 능력을 신뢰해서라기보다는 그와의 여흥에서 오는 호감일 수 있으니까.

진실한 우정과 진실하지 못한 우정이 있다. 후자는 오락을 위한것. 전자는 훌륭한 생각과 행동의 결실에

서 오는 것이다. 친구 한명의 유능한 통찰은 다른 많은 사람들의 선의 보다 더 쓸모가 있다.그러니 우연에

맡기지 말고 자신이 선택하라.

 

타인이 완전히 나의 것이 아니듯. 나역시 완전히 남의 것이 될 수 없다. 친척간에도,친구간에도 아무리

서로 은혜를 입은 사이일지라도 서로를 완벽하게 소유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완전히 신뢰하는 것과 호

의 를 보이는 것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예외는 있으며, 예의를 차린다고 우정에 금이 가는 것은 아니다. 친구도 그만의

비밀이 있고, 심지어 아들도 자기 아버지 앞에서 감출일이 있다.

어떤일은 남에게 알리고 어떤일은 감추어야 한다. 똑같은 일이라도 상대방에 따라 감출것과 알릴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뜻하지 않은 절교로 우리의 명망은 많은 상처를 입기 쉽다. 떨어져나간 그 친구는 어쩌면 최악의 적이될

지 모른다. 그들이 대중에게 남의 과실을 확대해 보이면서 자신의 과실을 덮으려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보고, 자기눈에 보이는 대로 말하기 마련이다.

 

남들이 우리를 질책하면 그것은 우리가 애초에 주의가 없었거나, 마지막에 인내심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친구와 헤어져야 할 때가 오면 우정이 저절로 서서히 식도록 하라. 이것이 서로 분노를 폭발하며 끝장

내는 것보다 백 배 낫다.

 

남들에게 호의를 베풀 때는 그들이 그것을 다시 갚지  못할 정도로 베풀어서는 안된다. 너무 많은 것을

주면, 이는 베푸는 것이 아니라 파는 것이다.

또 남이 그거을 완전히 알아주기도 바라지도 마라. 자기 분수에 넘게 베푸는 것을 남이 알면 그는 교제를

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지나치게 주려고 하다가 다 잃고 많다. 그것을 받는 사람들은 그 부담을 두려워하여 몸을

삼가고, 결국에는 은혜 입은 자에게 적으로 돌변한다. 따라서 무엇을 주더라도 남이 갈구하되 부담이 적

은 것을 주는 것이 훌륭한 수완이다.

 

가장 현명한 살마도 이따금 어리석음을 이용할 줄 안다. 또한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가장

좋은 지식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우둔한 사람들 앞에서 현명한 체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그 사람에게 맞는 언어로 이야기 하는것이 중요하다.

 

 

공개된 카드로 게임을 하는 것은 유리 하지도 유쾌하지도 않다. 자신의 의도를 곧바로 밝히지 않음으로서

상대방의 기대감을 고조시킬 수 있다. 특히 높은 직위에 있으면서 사람들의 관심대상이 될 때는 더욱 그렇다.

모든일에 뭔가 비밀스러운 것을 엿보이고 그것이 지닌 폐쇄성자체로 경외심을 불러 일으켜라. 자신을 드

러낼 때조차 평범한 모습은 피하라. 사람들과 교제할 때도 자기 내면을 낱낱이 열어 보이지 말라.

 

신중한 침묵은 지혜의 성역이다. 이미 입밖으로 한번 새어나간 의도는 결코 높이 평가되는 법이 없으며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기 쉽다.  마치 우주의 섭리를 만든 신처럼 자신의 의도를 감춰라. 사람들로 하

여금 츠측케 하고 불안케 하라.

 

열정을 다스려라. 열정은 위대한 정신의 속성이다.

그 뛰어남은 일반의 감명을 산다.

자신의 열정을 다스리는 것보다 더 큰 권세는 없다.

이는 자유의지의 승리다. 혹 열정이 사람을 지배하더라도 그가 하는 일까지 지배를 당해서는 안된다.

 

행복을 얻는 데는 나름대로 규칙이 있다. 지혜로운 자에게는 모든 것이 우연으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노력이 행복을 뒷받침한다.

어떤 살마들은 행복의 여신이 문턱까지 가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만족한다. 또 어떤 사람은

좀더 노력하여 앞으로 나가 자신들의 영리함과 대담성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용기의 날개를 타고 여신앞

까지 날아가 은총을 얻어온다.

그러나 오랜 철학적 고민을 해보면 미덕과 조심성의길 외에 행복의 여신에게 이르는 다른 길은 없다.

 

누구나 자기가 지혜로운 만큼 행복하고,  지혜롭지 못한 만큼 불행 한 것이 세상의 이치다.

- 발자크 그라시안-

 

 

인간의 삶중 가장 시적이며 알므다운 삽화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행동이 완전히 달라진다. 모든일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며 항상 들

떠 있기 마련인데 , 그것은 사랑이 삶에 대한 의욕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사랑의 비밀 속에는 장막같은게 쳐져 있다. 그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은 연인의 사랑을 받을 수만 있다면

무한한 행복이 찾아오리라 믿는다.

 

그대는 결코 다른 어떤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대는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대의 내면을 잘 이해하면 할 수록 행복의 땅에 보다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행복의 영지는 자기 스스로

에게 만족하는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운명의 지배를 받고 있다. 이세상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 우리의 소유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운명은 우리의 물질적인 재산과 가족, 사랑에 대해서까지 절대적인 권리를 행사한다.

 

행복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손짓하고 있다. 그 거리를 좁히면서 가까이 까지 접근하면 어느사이에 그

것은 희미한 그림자처럼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불행은 우리에게 아무런 환상을 심어주지 않는다.  불행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것은 바로 불행 그 자

체다. 그러나 행복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또 다른 불행일 뿐이다.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부터 인내를. 수다스러움으로 부터 침묵을, 불친절로부터 친절을 배워라.

행복과 불행이 반반의 확률일 때 천성이 우울한 사람은 불행한 결말을, 쾌활한 사람은 행복한 결말을 예상

한다.

우울한 성격의 살마은 열가지 게획 가운데 아홉가지가 성공하면 성공한 아홉가지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실패한 한가지 일에만 집착하면서 고통스러워 한다. 그러나 쾌활한 사람은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간다.

 

행복과 불행을 받아들이는 성향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한다. 인생을 행복한 것으로 만

드는 몫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

 

행복과 불행에 대한 생각은 한번 시작하면 좀처럼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거센 풍랑에 휩쓸린 것처럼 제멋

대로 자라는 것이 상상력의 특징이다.

행복과 불행에 대한 상상을 억제하라. 그것은 마치 모래성과 같다.  상상의 모래성은 많은 열정만 낭비할

뿐이다.

 

상상력으로 세운 건물은 단 한번의 한숨으로 무너져 내릴정도로 허망하다.

그러나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은 불행을 상상하면서 걱정하는 일이다. 바로 눈앞에 불행이 닥치기 전에는

절대로 미리 걱정하지 않는것. 그것은 지혜로운 자의 행동이다.

 

우리의 인생은 수많은 조력과 고통의 연속이다. 그러므로 어떤일에 성공했다고 해서 자만할필요가 없고

실패했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가 없다.  성공과 실패는 행복과 불행처럼 번갈아가며 우리를 찾아오기 때문

이다.  불행에 대해 두려움을 품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불행하다.

 

불행한 사람은 영원히 불행을 두려워 하는 사람이다. 행복과 불행은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는 가에 달려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특별한 쾌감을 느끼는 것은 단조롬움이 행복의 요건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증거다. 행복은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 우러난다. 단순하고 단조로운 생활은 삶의 무거운 짐을 덜어준다.

단순함을 실개천에 비유한다면 이 실개천은 사나운 풍랑에도 변함없이 조용하게 흘러 바다에 이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마음의 동요가 적을 수록 고통도 줄어든다.

행복이란 고통이 없는 상태라고 말할 수도 있다. 활동의 영역을 좁히면 외부의 자극에 대한 마음의 동요

를 줄일 수 있으며, 정신적인 활동을 제한하면 불안에 대한 자극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인 활동의

제한은 안정을 주는 대신 우리를 권태에 빠지게 한다.

 

고통이 없고 동시에 권태가 없는 삶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삶이다. 그것이 바로 행복의 절정이다.

 

늙은 떡갈나무는 사나운 폭풍에 부러지기 쉽고, 높은 곳에 있는 허술한 성채는 허물어지기 쉬우며, 산봉우

리에는 벼락이 떨어지기 쉽다. 그러나 연약한 갈대는 부러지지 않으며 견고한 짐은 허물어지지 않는다.

 

행복에 대한 욕망은 고뇌의 씨앗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보다 고뇌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세상 어디에도 그대가 꿈꾸는 낙원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행복한 낙원에서 태어났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행복과 쾌락에 대한 온갖 허황한 욕망과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운명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결코 피할수 없는 촘촘한 불행의 그물이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ㅣ지혜라는 것을 알고 있다. 눈이

착시현상을 일으키면 똑바른 사물이 삐뚤어져 보이는 것처럼 세상의 가치를 거꾸로 보는 실수를 저지르

지 말아야 한다. 지혜야 말로 삶의 구원병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쇼펜하우어-

 

 

 

불필요한 말이나 무익한 말을 결코 입밖으로 내지 말것. 그러나 중요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과감하게

말할것. 냉담하고 거만하거나, 적어도 그렇게 생각되는 침묵을 악착스레 고집하지 말것.

 

이와 같은 태도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말은 행동과 비견될 정도로 많은 재앙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만일 신

의 은혜가 없다면 무익한 말로 개개인이 쌓는 죄는 산처럼 높을 것이다. 그 전체를 눈앞에서 본다면 누구

라도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그 나무를 잘 가꾸는 도리

밖에 없다.

 

침묵으로 실패하는 사람은 없다. 라는 말은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내 친구가 항상 입에 떠올리던 말이다.

실제로 아주 많은 귀찮고 불쾌한 인생의 분쟁도 왕왕 이 침묵의 방법으로 쉽게 타개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많은 사람들이 애호하는 이른바 자신의 의견발표는 대개 쌍방의 의견차이를 한창 두드러지게

할 뿐이다. 때로는 사태를 수습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잘 생각해 보자 는 말만으로도 매우 민감하거나, 기분이나 결심이 변하기 쉬운 사람에게는 종종 기적적인

효과가 있다.

편지의 경우에도 대답하고 싶지 않은 것에는 답하지 않고, 또 재촉을 받아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 많은 불

쾌한 논란을 제거하는 확실한 방법이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번을 못참고 이 결심을 번복하고

만다.

 

그러나 바로 잡을 수 있고, 또 바로 잡지 않으면 안되는 명백한 부정에 대해서까지 침묵을 지켜서는 안된다.

부정을 미워하면서 잠자코 있는 것도 잘못이다.

 

 

 

아침 잠이 깨는 동시에 제일먼저 의식에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인가 하는 것으 매우 중요하다.

당신은 평상시에 갖가지 우한 원인으로 일어나는 그때그때의 기분에 몸을 맡기는가. 아니면 자신의 생활

의 고삐를 단단히 손쉬 쥐겠는가? 오늘도 바로 눈앞의 걱정거리나 괴로운 일로부터 시작하는 가. 아니면

새로운 생명의 아침에 대한 감사로부터 시작하겠는가?

 

신과의 맺음을 새롭게 하려고 하느가. 아니면 자기만의 힘으로 생존경쟁을 재개할 생각인가?

어느쪽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날의 운명이 결정된다.

 

 

사랑없는 사람과 사귀는 것은 영혼을 해치는 결과가 된다.

그러므로 부득이한 경우 교제를 줄이던가 차라리 그것을 아주 끊어야 한다.

동정심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여성의 경우 중대한 성격상의 특징이 된다. 그러한 특징을 발견했다면

그 사람을 조심하는 것이 좋다. 또 인간에 대한 지나친 사랑은 여성에게 가장 피하기 어려운 함정이다.

 

不可知論은 고급빵이 구워 질 듯한 실로 고운 밀가루처럼 보이지만 막상 체험해보면 유리가루에 불과하다.

이것은 정말 진리다. 사람은 불가지론으로 살수 없다. 그것은 다만 보기에 아름다울 뿐이며 자기만에

알맞을 뿐이다.

그러나 칼라일 자신도 이 사상을 완전히 초월했던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오직 딱딱하고 냉담한

스코틀랜드의 칼빈파 형식으로밖에 기독교를 몰랐으며, 그것에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희망과 사랑은 결코 성취될 수 없는 완전의 영역을 향하여 외친다. 그래도 더욱 단단히 그것을 마음속에

지닌다면 그것은 인생의 소금이 되고 지팡이가 된다.

 

우리는 기쁨보다도 오히려 고통을 사랑하고, 드디어 기쁨을 두려워 하는 것을 배우는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다.  여기까지 오면 인생 최대의 고난은 끝난 것이다.

우리가 고통을 그저 되도록 빨리 제거하려 들거나, 혹은 아주 수동적으로, 스토아주의적으로 되도록 무감

감한 태도로 이것을 참고 견디려 들거나 하는것은, 아무튼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고뇌를 씨뿌리는 시기로 이용해야 한다. 그리하면 축복의 곡식이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더욱이

이 씨뿌리는 시기는 일단 지나가버리면 그리 쉽게 같은 형태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신의 가장 큰 은총 중 하나는, 어떤 커다란 선한 일의 승리가 거의 쟁취되었을 때 비로소 그 일의 주된

어려움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누구도 싸움을 시작할 용기를 갖지 못할 것이다.

 

 

흔히 작은 것은 그것에 깊은 관심을 갖기만 하면 일반적으로 큰것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 사랑스럽다는 것

이다. 보금자리 속에서 관찰된 개미나 부지런한 꿀벌이나 피리새들은 사자나 독수리나 고래보다 훨씬

더 볼만한 가치가 있고 흥미진진한 동물이다.

 

또 작은 고산식물은 화려한 튤립이나 현대의 관엽실물보다 훨씬아름답다.

인간의 경우도 그와 같다. 이세상의 작은 것에 주목하라. 그리하면 인생이 한층 풍족하고 만족스러워 질 것이다.

 

뒤돌아보지 말고 항상 앞을 내다 보아라.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세상의 인생마저 추월하여 저쪽을 보라.

뒤를 돌아다 보는 것은 아무런 득도 안된다.

단 아직 개선할 수 잇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서나, 과거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기위해서나, 남에게서 받은

은혜에 감사로써 보답하기 위하여 뒤돌아보는 경우는 예외다.

 

 

아라비아 속담에 너무 큰 신발을 신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높은 지위에 있더라도 인생이 실패로 돌아가는 경우가 흔히 있다는 설명을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신발이 너무 크면 그사람의 발밑이 불안정해지고, 그것을 알게 된 사람들로부터 차츰 신뢰를 잃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발이 너무 작아도 발이 옹색해지고 끊임없는 통증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신발을 갈아신어야

할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그 사람의 지위가 그 성장과 역량에 딱 맞아 떨어진 때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지혜로 이루어지는 거이 아니라 오직 신의 이끄심에 대한 굳은 신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칼 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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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

선인들의 글속에서 여물어가기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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