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말없이 해야 할 일을 한다.
옛날에는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켜준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굽은 소나무가 돈벌이가 된다고 한다.
소나무를 정원수로 심게 되면서 나온말이다. 고층빌딩 사이에 손바닥 만한 터를 마련해 놓고 산야에서
편안히 살았던 소나무를 뽑아다 심어 놓고 등걸을 새끼줄로 칭칭 감아 적토를 발라 두기도 하고, 시들시
들 하면 소나무 껍질을 파고 무슨 영양 주사를 꽂아 놓는다. 그리고 조경회사들은 소나무가 정원수로 아름답다고 선전하나다. 뽑혀서 강제로 끌려와 정원에 꼽힌 소나무는 사는 것이 아니다.
못죽어 사는 꼴에 불과하다. 산야에 그대로 그냥 있는 소나무는 청청하고 끌려온 소나무는 시름시름 하는
것은 무슨 차이인가. 산야의 소나무는 천지의 것이고 정원의 소나무는 인간의 것으로 전락한 까닭이다.
여기서 묵연이선모의 참뜻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우주를 말한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우주 안에는 태양계도 있고 은하수도 있다. 일월은 조롱 속에 든 새라
고 두보가 말했던가. 두보가 말했던 그 조롱이 바로 천망일 게다. 그 조롱에서 빠져 나갈 새는 한마리도
없다. 그새는 무엇인 가. 만물이 아닌가.
도둑이 남의 집 돈궤를 훔치고 달아났다고 할 때 인간의 법망을 빠져 나갔을 뿐 천망을 빠져 나갈 구멍
투성이다. 그러나 하늘이 쳐놓은 그물은 넓고 넓어 성글지만 어느것 하나 빠져 나가지 못한다. 어디 빠
져 나가려고 할 것이 있는가. 하늘이 쳐 놓은 그물은 감옥이 아니라 어머니의 품안과 같은 곡신인 까닭
이다. 곡신은 보금자리요, 둥지가 아닌가.
다투지 않고 잘 이기는 것 때문이요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응답하는 것 때문이요.
소환하지 않아도 저절로 오는 것 때문이요.
그저 말없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때문이다.
이처럼 만물의 보금자리인 천망을 누가 갈기갈기 찢어내고 있는가
노자는 인간이 그런 짓을 한다고 말했다. 노자의 고발을 이제는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다.
엄연한 사실인 까닭이다.
<원문의역>
과감한 것에 빠져 용감하면 죽고, 과감한것에 빠져들지 않고 용감하면 산다. 이 두가지의 용기는 이롭기
도 하고 해롭기도 하다. 천하기 싫어 하는 까닭을 어느 누가 알 것인가.
이러하므로 성인도 그 점을 어려워 한다.
하늘의 도는 다투지 않고 잘 이기며, 말을 하지 않고도 잘 응하며,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오고, 잠자코
가만히 있어도 뜻을 잘 세운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 성글지만 어느것 하나 빠져 나가게 하지 않는다.
<도움말>
제 71장은 인간이 서로 다투어 승리를 쟁취하려고 하는 짓을 경고하고 있다. 인간들이 유위가 빚어내는 작폐들을 버리도록 성인이 천지의 무위를 따르는 연유를 밝혀 주고 있다.
용어감이살의 용은 생각과 행동의 쓰임새를 말하고 그 쓰임새가 치우치면 불선하고 두루 통하게 하면 선
이 된다고 보았으며, 감은 결과 통하고 결은 하나로 단정하는 것을 뜻하므로 감은 이념의 고집같은 것이다.
그리고 살은 망해 버리는 것으로 통한다.
불감은 중용이나 중도 같은 것으로 이해해도 될 것이며 장자의 자유나 노자의 지부지의 뜻으로 만나도 될
것이다.
소오는 싫어하는 것을 뜻한다.
회회는 넓고 넓은 것을 뜻한다.
소는 촘촘하지 않고 성근 것을 뜻한다.
불실은 잃지 않는 것이므로 빠져나갈 수 없는 것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74장 자연을 따르되 범하지 않는다
고문따위로 협박하지 마라
백성의 입에 재갈을 물려 놓고 세상을 다스리면 겉보기로는 조용하지만 백성의 속을 들여다 보면 재갈
을 물리게 한 자를 원수로 생각한다. 힘으로 세상을 다스리려고 하면 할 수록 위아래로 힘을 앞세우는 무리
들이 망나니 처럼 설쳐 세상을 살벌하게 하고 험하게 한다. 못난 치자일수록 무서운 법을 만들어 놓고 그
법을 힘의 칼처럼 생각한다. 칼자루를 쥔 것을 권력으로 생각하고 백성으로 하여금 칼날을 쥐게 한다음
다음 세상을 도마 위에 올려 놓는다.
그리고 못난 치자는 법을 어기면 살아 남지 못한다는 것을 백성에게 주지 시켜 두라고 한다. 그래서 못난 치자 밑에는 살인을 무서워 하지 않는 무리들이 진을 치게 된다.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이렇게 인사를 나누어야 하는 세상은 죽임의 공포가 보이지 않는 그림자처럼 드리
운 세상이다.
칼자루를 쥔 자의 눈에 나면 밤사이에 붙들려가 매를 맞고 나오면 겁먹은 벙어리가 되거나 아니면 쥐도
새도 모르게 실종자가 되는 일들이 빈번해 밤사이 안녕했느냐는 인사말을 나누게 된다.
소를 잡는 백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살마 잡는 백정도 있고 그런 놈을 악한이라고 한다. 악한은 여러부
류가 있다. 밤중에 남의 집에 들어가 잠자는 사람의 목에 칼을 대고 목숨을 위협하는 강도라든디, 회칼을
들고 다니면서 공짜로 돈을 뜯어가는 양아치 등이 악한의 무리들이다. 이러한 악한들은 남의 목숨을 위협
하여 붙어사는 기생충과 같다.
그러나 이러한 악한들보다 더 무서운 부류가 있다. 그거은 독재권력의 비호를 받는 조직속의 악한들이다.
그 조직속에는 갖가지 고문 기술자들이 있고 그들은 권력자의 개노릇을 서슴치 않는다. 백성은 강도나 양
아치 무리보다 권력의 비호를 받는 개들을 싫어한다. 그 개들은 백성의 목을 무는 것을 도맡아 하는 일꾼
이다.
폭정의 개들이 백성을 계속 물면 결국 백성은 그 개들의 주인을 물어 버린다. 이를 역성혁명이라고 했다.
본래 사람을 잘 무는 개는 맞아 죽는 법이다. 그러나 권력의 칼질을 함부로 하다 제 목에 칼을 맞는다. 이
보다 더한 어리석음이 어디 있을 것인가.
백성을 죽임의 공포로 떨게 하면 할 수록 결국 백성은 죽음을 두려워 않게된다. 이것이 노한 민심이요. 노
한 민심은 하늘을 두려워 할 뿐 권부의 폭정이나 학정을 무서워 하지 ㅇ낳는다. 노자는 이를 다음처럼
밝히고 있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죽임따위로 백성을 두려워 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만일 인
간으로 하여금 목숨을 위협하여 못된 짓을 시키는 자가 있다면, 내가 그런 놈을 잡아 죽이고 싶다. 하지만
누가 감히 죽이는 짓을 하겠는가
신문에 이근안이름이 등장하면서 고문기술자란 무서운 낱말이 나왔다.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서 죽이는 짓
을 고문이라고 한다. 고문하는 기술을 업으로 삼는 자도 있고 돈을 받고 살인을 맡아 하는 청부살인자도 있
는 것이 험한 세상이다.
강도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살인자이고 고문 기술자는 법이 보호하는 살인자인 셈이다. 권력이 고문
기술자를 고용하면 권력 자체가 고문하는 집단이란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50년 대 지리산 자락에 살았던 백성은 사람의 목숨이 파리 목숨만도 못하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밤이면
산에서 빨치산이 내려와 목숨을 위협했고, 낮이면 자치대가 찾아와 빨치산과 내통하지 않았느냐고목숨을
위협했었다. 그 틈새에서 백성의 목숨은 실낱 같았다.
거창 신흥면 사건을 아는 사람은 다 알것이다. 마을 사람들을 국민학교 운동장에 모이라고 한 다음 빨갱이
들이라고 모조리 죽였다. 그리고 한 구덩이에다 죽인 사람들을 모조리 묻어버렸다.어디 백성이 신흥면에
서만 몰살 당했던가. 제주도의 43사건에서도 남자의 씨가 마를 정도로 살인이 자행되었고 여순사건에서도
죄없는 백성이 떼 죽음을 당했었다.
이것들은 자유당 정권이 사상을 앞세워 저지른 살인이었다.
4.19때 경무대 앞에서 학생들이 죽었다. 젊은 목숨에 총질한 무리는 하수인 이었고 그 무리의 우두머리들
은 백성의 목숨보다 정권이 더 중하다고 여겼던 무뢰한들이었다. 그들은 사람의 목숨보다 돈이 중하다고
여기는 살인강도와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은 자유당이 정권 유지를 위해 저질렀던 살인이었다.
정권이 살인 행위를 마다하지 않으면 오래 갈 수가 없다. 참다 못한 백성이 살인 행위를 자행하는 무뢰
한 들을 쓸어내기 위하여 주먹을 쥐기 때문이다. 온 백성이 주먹을 쥐고 일어나면 못난 정권은 바닷가의'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만다. 인심이 천심이 되면 못난 칟자들은 천벌을 받고 세상은 제 길을 찾아나선다. 이
것이 정치의 자연이다.
어찌 죽임으로 백성을 겁줄 것인가.
목숨을 소중히 하는 치자는 공포정치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권력을 독식하려고 하는 치자는 백성의 목숨을 담보로 잡아 세상을 소유하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은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다. 세상은 자연일 뿐이다. 옛날 임금들이 천하를 소유한다고 했지만
어림없는 일이었음을 노자는 알았다. 그러므로 무서운 형법을 만들어 백성을 주리틀지 말라고 위와 같이
말한 셈이다.
왜 노자는 악한을 죽이고 싶다고 했을까
생명은 천지의 것이므로 인간이 그것을 약탁하면 안된다. 생명을 빼앗는 점에서는 살인과 자살이 다를 바
가 없다. 내 목숨이므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도 생명을 준천지를 모독하는 까닭이다.
모든 생물은 섭생할 뿐이다. 생명을 받아 맡아 누리다 그대로 돌려 주어야 하는 것이 천명이요, 순천이다.
천명에 따라 사는 것을 섭생이라 한다. 유가에서는 부모가 생명을 물려 주었으므로 부모를 모시라고 했다.
부모나 천지를 음양으로 보면 한 가지이므로 같은 말이다. 여기서 왜 섭생을 잘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고
목숨을 소중히 하라는 말씀의 참뜻을 새길 수 있다.
목숨을 위협하는 짓은 천명을 어기는 짓이다. 천명을 어기는 짓이 잦으면 세상은 난세가 된다. 행복해야 할
세상을 암담하게 하는 난세를 노자는 무엇보다 안타깝게 여겼다. 세상을 난세로 몰아가는 악한들을 모조
리 잡아 죽이고 싶은 심정을 노자 역시 인간이었으므로 지녔던 모양이다. 그러나 목숨을 빼앗는 짓을 어느
누구도 감히 할 수 없다는 것을 노자는 알았던 까닭에 위와 같이 안타가운 심정을 토로했을 뿐이다.
생사는 천명이 정한다.
그래서 인명재천이란 말이 생겼다. 하늘이 부여한 성과 땅이 내린 명을 받아 생물은 태어나고 살다가 죽는
다고 동양정신은 보았다, 이러한 생각은 목숨의 근원을 알고 근본에 따라 살아야 하는 연유를 살펴보게 하
는 것이다. 태어나 갓 죽은 영아가 장수한 것이고 700년 을 살다 죽은 팽조는 요절 한 것이다. 이렇게 장자
가 말한 것도 생명은 천명이란 생각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가 목숨을 죽이는 짓을 감히 할 것인가. 하나만 알고 살상을 하면 만용이라고 이미 노자는
앞장에서 말했다. 그리고 제 72장에서는 사는 바를 싫어하지 마라고도 했다. 목숨을 소중히 하는 것은 삶을
사랑하는 것이고 목숨을 험하게 하는 것은 삶을 미워하는 것이다. 결국 살이란 삶을 미워 하는 짓일 뿐이다.
죽임을 두려워 하지않는 것에서 살기가 번져 나온다. 불외사 역시 불외위와 같다. 이는 모두 하늘의 뜻을
두려워 하라는 말이다. 외는 공과 다른 두려움이 아닌가. 겁을 주어 무섭게 하는 것은 공의 두려움이고 어
려우면서도 안기게 하는 것이 외의 두려움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 하라는 것은 목숨을 소중히 하
라는 말이다. p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