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인간은 버려진 신발짝과 같다.~

다림영 2008. 9. 4.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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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백성을 다스리기 어렵게 되는가.

백성으로 하여금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ㅇ기게 하면 치자는 천벌을 받게 된다. 치자에게만 금강산도 배

부른 다음 인것이 아니다. 백성도 매양 같다. 백성을 굶주리게 하면 할 수록 백성은 굶주린 이리떼처럼

돌변하기 마련이다.

 

굶주린 이리떼는 호랑이도 피한다고 하지 않는가. 백성을 억울하게 하고 한스럽게 하면 백성의 마음을 굶

주리게 하면 백성의 마음을 굶주리게 하는 것이고. 백성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고 배를 곯게 하는 것은

백성의 몸을 굶주리게 하는 짓이다. 백성의 마음과 몸을 굶주리게 하면 백성은 다스릴 수 없는 장벽이 된다.

 

그 장벽은 어떠한 폭군도 허물지 못한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난치이다.

백성이 죽음을 가볍게 여긴다.

민불외사는 목숨을 얕잡아 보고 남의 목숨을 죽이는 것이고 민지경사는 혹독한 세상 탓으로 제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 것을 뜻한다. 무엇이 세상을 혹독하게 하는가. 나세를 빚어내는 무리들이다. 그러한 무리

는 악한이다. 치자가 악한 노릇을 하면 세상에는 독기가 서린다. 그러한 독기에서 유언비어도 나오고 투쟁

도 나오고 심하면 세상을 뒤집어 버리는 백성의 한풀이가 나온다.

 

 

백성의 것을 빼앗아 제뱃속을 채우는 치자가 있으면 세상은 난세가 되고 난세가 되면 백성은 삶을 절망한

다. 살맛을 꺽이고 죽지 못해 억지로 산다는 심정을 심어주는 것보다 더한 악은 없다. 이러한 악을 치자의

부정부패라고 한다. 치자의 악은 백성으로 하여금 목숨을 걸게 한다. 이것이 민지경사이다.

 

백성은 삶을 구걸하지 않는 것을 모르는가. 참을 때까지 참고 살아보는 것이 백성이다. 어제도 속고 오늘

도 속으면 서도 내일은 좀 나아지겠지 하면서 견딜 줄 아는 것이 백성이다. 빈대를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

울 수 없고 된장이 썩었다고 장독을 깰 수는 없다는 것을 백성은 안다.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 치자는 빈대

와 같고 집은 나라와 같다. 빈대를 잡아 없애야지 집을 태운ㄹ 수는 없다.

 

독안에 든 썩은 된장은 못난 치자들이고 다시 쓸수 있는 장독은 나라와 같다. 썩은 된장은 못난 치자들이

고 다시 쓸수 있는 장독은 나라와 같다. 썩은 된장을 퍼내고 새 된자을 담으면 된다. 빈대같은 치자를 잡고

집을 지키기 위하여 썩은 된장을 퍼내고 장독을 새로 쓰기 위하여 백성은 목숨을 걸 수가 있다. 그래서 노

자는 다음과 같이 밝혀 두었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구걸하지 않는것이 생에 애착을 갖는 것보다 더 현명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와 같으므로 백성의 삶을 꺾으려고 하면 꺾으려는쪽이 결국 백성에게 꺾이고 만다. 이것이 바로 치세

의 자연이다.

 

<원문의역>

백성이 굶주리는 것은 치자들이 너무 많은 세금을 받아 먹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성은 굶주리게 된다.

백성을 다스리기가 어려운 것은 치자들이 못할 짓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스리기가 어렵게 된다.

 

백성들이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치자들이 자기네들만 잘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성은 죽

음을 가볍게 여긴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구걸하지 않는 것이 생에 애착을 갖는 것보다 더 현명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도움말>

제 75장은 부패한 정치의 종말이 어떤 것인가를 살피게 한다. 제 욕심을 채우고 제 배를 불리는 것을 치자

는 결국 스스로 죽음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

기는 굶주림이다.

유위는 자기 이익과 자기 욕심에서 행하는 짓 따위를 뜻한다. 경사는 목숨을 구걸해 목숨을 천하게 하는

것보다 목숨을 버려 구차한 삶을 당당하게 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생지후는 남을 못살게 하고 자기만 잘 살려고 하는 짓을 범하는 것이다.

 

제 76장 산것은 부드럽고 연약하다.

왜 군대가 강한 나라는 망하는가.

떨어지는 것은 지는 것이고 돋는 것은 피는 것이다. 새싹은 돋는 것이고 가랑잎은 지는 것이다.

싹이 돋는 것은 잎의 새잉고 가랑잎이 지는 것은 잎의 사이다.

생의 현상을 유약이라 하고 사의 현상을 강강이라고 노자는 밝힌다.

새싹은 부드럽고 연약하지 않은가. 가랑잎은 메마르고 까칠하지 않는가. 이처럼 생사의 모습을 노자는

유약과 강강으로 밝혀주고 있다. 그리고 솟아나는 것을 생으로 보고 떨어져 지는 것을 사로 본 것 역시

노자가 자연을 살핀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기는 것은 일어나는 것이고 지는 것은 쓰러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생은 승이고 사는 패인 셈이다.

생사는 곧 존재의 승패인 것이다. 어느 생물이든 생을 바라고 사를 저어한다. 그래서 어느 생물이든 이기기

를 바라고 지기를 싫어한다.

강풍이 불면 초목은 이리저리 흔들린다. 바람이 강하고 초목은 약해 그렇게 한다고 보는 것은 힘을 따져

생각하는 것에 불과하다. 강한 힘에 맞서 버티면 부러지고 꺾여져 초목의 생명은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바람결에 따라 흔들어 주는 나무는 상처를 입지 않는다. 죽은 나무는 강풍에 쓰러지지만 살아 있는

나무는 흔들어주므로 넘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노자가 말한 생의 유약을 헤아릴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인간이 힘을 믿는 존재가 되면서 자연을 어기려는 버릇이 생겼다. 어떻게 어겼단 말인가. 강하면 살

고 약하면 죽는 다고 믿게 되엇다. 그러나 자연은 강한 것은 죽은 것이고 약한 것이 산 것임을 보여준다.

이를 두고 노자는 도의 쓰임새라고 말했다.

 

같은 물이면서도 얼면 쪼개진다. 그러나 얼음이 풀려 물이되면 쪼개질 수가 없다. 생이란 이러한 물처럼

부드럽고 약한 것이다. 슴기가 없으면 생기가 돋지 못한다고 한다.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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