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이른아침 배추 열다섯 포기 김치를 담그며

다림영 2008. 8. 2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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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시였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부엌에서는 물소리가 하염없이 들려왔다.

누가 문은 열어놓은 것일까

나의 시계는 계속 울려대고 있었고 나는 일어났지만 일어나기 싫었다.

책을 읽을 때보다 더 빨리 일어나게 된 것이 약이 올랐다.

 

 

부러 문을 열어 놓았지 싶었다.

다 알아서 하는데 들어라 하고 아들내외 방문을 활짝 열어 놓으시다니..

화가 나서 나는 다시 돌아 누워 버렸다. 조금더 자고 일어나야지..

요렇게 얌체짓을 하고 삼십분 더 누워 있었다.

 

그러나 잠은 이미 다 깨어 버렸고  부엌의 물소리는 더 크게 들려 왔다.

애구.. 관두자.. 하고 나는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려 김치만드는일에 합세를 했다.

대부분 어머니가 준비를 다 해놓으신다. 사실 나는 그냥 거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휴일날 하면 얼마나 좋을 까 하는 생각과

종일 밖에 있다가 밤늦게 들어왔는데 그 이른 아침에 일을 하라 하다니 하는 생각,

또 출근할 사람에게 이런일로 아침부터 피곤하게 하다니 하는 생각 ..

기타 괜한 마음이 치고 올라와 늑장을 부려보았다.

언제나 그러한 줄 알면서도 말이다. 잘 하면서도 말이다.

 

뚝딱뚝딱.... 말 한마디 없이 훌러덩 다 해버렸다. 사실 난 손이 참 빠른 사람이다.

한시간정도 걸리면 다 끝나는 일이었지만

사실 어머니가 준비하는 일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고생하셨단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내 수고로움만 생각했다.

 

일을 끝내고  그 아침에 청소기를 다 돌렸다.

책도 읽지 못했고 운동나가기도 그렇고 해서 청소나 하자 하고 식구들이 자거나 말거나

윙윙 큰소리를 내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눈하나 깜짝않고 자는 남자들이다.

피식 웃음이 났다.

먼지를 치우고 나니 집안이 말끔해졌다.

내안의 먼지도 없앤듯 그전의 마음은 오간데 없이 사라졌다.

 

종일 아이들 뒷치닥거리에 허리가 휠 어머님이시다.

그런데 나는 그 고마움을 잠시 잊고말았다.

출근하면서 큰소리로 인사를 하고 현관을 나섰다.

어쩌면 모든것이 어머님의 힘으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일게다.

항상 그 고마움 마음속에 심어 놓고 웃는 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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