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P168~

다림영 2008. 8. 22.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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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세상이 무섭게 된 것은 가슴속이야 썩어 구린내가 나든 말든 비싼 보석으로 목걸이를 걸치고 은행금고

에 돈이 많으면 된다는 현대인의 기질 탓이다.

노자여! 갈포옷을 입고 서울에는 오지 마라. 헐벗은 거지라고 내치고 말뿐 현대인은 그대가 가슴에 품고 있는

도덕이란 옥을 모른다.

 

<원문의역>

말에는 근원이 있고 일에는 근본이 있다.

내가 하는 말은 아주 알기 쉽고 아주 행하기도 쉽다. 그러나 세상은 내 말을 알아 듣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하

는구나! 나에게는 다만 무를 아는 것만 있다. 이때문에 세상은 나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를 알지 못하는 사

람들이 적다면 그만큼 나는 귀한 것이다.

그래서 성인은 갈포옷을 입고 옥을 가슴에 품는다.

 

<도움말>

제 70장은 인간이 올바름을 잃어 버리고 치우침에 빠져 버린 사실을 상기해 준다. 인간의 치우침은 인간의 욕망

에서 비롯된 것이며, 성인은 이러한 치우침에서 떠나 있음을 밝혀 준다. 따지고 보면 무위자연의 도덕은 인간

의 치우침을 떠나 생각하고 행동하며 사는 것이다.

 

연유종의 종은 시초와 뿌리를 뜻한다. 즉 종은 근원인이다.

사유군의 군은 기준을 세워 법을 존중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군은 근본을 뜻한다.

무지는 무를 아는 것이며 유지는 유를 아는 것이다. 노자는 무를 유의 근원으로 보았다. 존재하는 것은 있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두루 갖춘다. 존재하는 것은 생성과 소멸의 사실이다.

 

지아자회의 회는 수가 적어 드물다는 뜻이다.

아귀의 귀는 노자가 자랑한 삼보를 생각나게 한다. 사랑함과 검소함 그리고 겸손함을 잘 간직하게 하므로 귀하게

된다는 뜻이다.

 

피갈회옥의 피갈은 갈포옷을 입는 것을 뜻해 겉치장을 하지 않음을 암시하고, 회옥은 가슴에 옥을 품는 다는 것

을 뜻해 귀한 것을 과시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제 71장 알고도 모르는 것처럼 한다.

모르면서 아는 체 하지 마라

아는 것이 탈이다. 알면 병이고 모르면 약이다. 왜 이러한 속담이 생겼을 까. 아는 것을 힘인 것처럼 부리고 , 모

르면서 아는 체하여 탈을 내는 까닭이다.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것이 곧 지라고 했

다. 불가의 선에서도 머리에다 머리를 더하지 말고 입에다 입을 더하지 말라고 한다.이는 모두 아는 것을 재주

로 삼지 말 것이며 모르는 것을 숨기지 말라함이다.

 

말이 말을 낳고 말이 ㅁ라로써 고집을 부린다. 그래서 시비의 꼬투리가 생긴다. 망기라는 말이 있다.ㅇ ㅣ는 분

별하고 따져 시비를 걸려는 꼬투리를 마음에 두지 마라 함이다. 그러나 인간은 저마다 나름대로 보고 들으며

각양각색으로 한사코 느끼며 생각하고 안다는 것을 무기로 삼으려고 한다. 이러한 무기를 지성이라고 하면서

인간은 저마다 지성을 앞세우고 날카롭게 되려고 한다.

 

인간이 알면 얼마나 알까. 아는 것을 우주 만물에 비하면 백사장의 모래알 한 낱에 불과함을안다면 어느 누가

감히 아는 체할 것인가. 우주 속에서 기생하는 인간은 누구나 우물 안 개구리와 같다. 전문직종의 사회가 되

면서부터 인간은 더욱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우물안의 개구리는 하늘이 우물 구멍만한 것

이라고 여긴다. 그러면서도 우물 안 개구리는 하늘을 안다고 한다.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두루 통하고 비추어 주며 모나지 않고 밝은 것 을 지라고 한다. 과연 인간이 이러한 지를

소유할 수 있고 쟁취할 수 있을 까. 이렇게 자문해본다면 내가 지니고 있는 지식이란 것이 보잘 것없고 하잘

것 없다는 것을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깨우침이 조금만이라도 있다면 지적 오만을 부릴 수 없는 일이

다. 유지는 지식의 오만을 부르고 무지는 그러한 오만을 부끄러워한다.

 

장자는 큰 앎과 작은 앎이 있다고 밝혔다 . 소지는 어떤 것을 의지해야 하는 것이고, 대지는 걸림없이 노닐 줄

아는 것이다. 무엇을 의지해 야 아는 것은 거지가 구걸한 동냥과 같다고 본 셈이다. 노자가 앞 장에서 말한 무

지는 구걸한 지식으로 치장을 하지 않는 것임을 여기서 짐작할 수가 있다.

 

자연 과학의 이론은 항상 새롭게 변화 한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를 미지의 부분을 서서히 정복해 가는 과정으로

인간은 자위하려고 한다. 사물을 관찰한 지식을 쌓아가면서도 인간을 알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여전히 바깥

만 밝히면서 등잔 밑은 어둡게 내버려 두고 있는 실정이다.

 

모르는 것이 약이다. 이 속담은 무를 헤아리게 한다.  그리고 알아서 탈이다. 이 속담은 유를 짚어보게 한다.

식자들은 세상을 다스린다면서 한번도 인간을 편하게 하는 세상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은행에 거액의 예금이

있고 편리한 문화용품들이 집안에 다 갖추어져 있다고 해서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 인간은 마음

편하게 삶을 누리지 못할 까.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노자는 다음처럼 진단하고 있다.

 

알되 모르는 것처럼 하는 것은 위이고,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것은 병이다. 무릇 병이라고 알면 그것이 병통이

아니다. 성인에게 병통이 없는 것은 이때문이다.

 

조령 남 쪽 어느 한 고을에 만석을 하는 부자가 살았다고 한다. 그 부자는 늙어가면서 재물이야 남부러울 것이

없지만  머리 속이 썩어간다는 걱정으로 하루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는 늙어 노망하는 것은 머리가 썩

는 것이라고 제멋대로 생각했고, 그 생각은 틀림이 없다고 다짐했다.

 

그는 머리카락이 희게 되는 것도 머리 속이 썩어가는 것이고, 이마위에 검은 점으로 피는 노인꽃도 그렇게 해서

번져간다고 여겼다.  명의를 불러들여 온갖 보약을 지어 머리 속을 썩게 하는 늙음을 막아 보려고 발버둥을 쳤

지만 그럴 수록 점점 더 정신은 흐려지고 치매 증세까지 도져갔다. 그리고 그는 앓아눕게 되었다.

 

늙는다고 해서 머리 속이 썩는 것은 아니라고 여러사람들이 타일러 보았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고집을 부리

면 부릴 수록 병이 더해간다는 말도 아랑곳 없이 그는 그저 머리 속이 푹푹 썩어간다고 낙담했다. 결국 그는 그

렇게 앓다가 죽어갔다.

 

알면서 모르는 것처럼 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이는 알면서 속아주거나 알면서 모른 척 시치미를 떼는 것은 아니다. 아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 과시하지 않는

것 뿐이다 . 지부지는 없는 것을 안다는 것의 모습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무지나 지부지는 무식한 것처럼 보이

지만 속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알면서 모르는 것처럼 하는 것과 무지는 무언과 통한다. 말이 가볍거든

그 사람을 믿지 마라고 하지 않는가!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하는 것은 왜 병이 되는가.

두루 통하지 못하고 치우치며 모가 나는 앎을 부지라고 한다. 한쪽으로 치우쳐 기울면 사달이 나고 모가나면

시비를 일삼게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을 앎의 병이라고 한다. 서툰 목수는 집을 기울게 하고 반 풍수 집안을

망친다고 하지 않는가!

 

병을 병이라고 알면 병이 아니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는 공자의 말을 연상 시킨다. 지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곧 지라고 말했다. 이렇게 하면 알아 병이 될 이는 없을 것이다. 노자와 공자가 지에 대하여견해가

다른 것은 앎을 드러내느냐 아니면 속에 간직하기만 하느냐의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노자는 지를 드러내지 말기를 바라고 공자는 아는 것이 분명하다면 드러내라고 하는 셈이다. 알수 없어 모른

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러한 앎이야 말로 자기를 알고 있는 것이다. 자기를 알려고 하는 것은 명이라고 한 노

자의 말을 새겨 들으면 병을 병이라고 알면 왜 병이 아니가를 살 필 수가 있다. 사물을 알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기를 알라고 하지 않는가.

 

성인은 마음의 병을 앓지 않는다. 두루 통하려고 할 뿐 어느 한편으로 기울어 치우치지 않는 까닭이요, 자기를 과

시하여 독단을 부리지 않고 무모한 짓을 멀리 하므로 모가 나지 않는까닭이다. 성인은 항상 푸근하고 넉넉히

자연의 마음을 누린다.  이러한 성인에게 무슨 마음고생이 있을 것인가.

 

현대인은 몸 하나 편하자고 마음 고생을 사서 한다.욕망의 다툼보다 더 고생스러운 것은 없다. 마음을 초조하게

하고 약점이나 헛점이 드러날가보 전전긍긍하면서 살얼음판 위를 걸어가듯이 사는 것보다 더한 중병은 없다.

그러나 현대인은 재벌을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대인은 병을 병인 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욕망이 사나우면 탐욕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욕망의 노예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

한다. 그래서 현대인은 탐욕의 희생물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현대인의 중병을 치유하자면 편작의 침

술로는 안 될 것이다. 성인이 불병하는 처방을 본받아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먼저 지부지를 날마다 곰곰히

생각해 보는 생활을 한다면 성인이 불병하는 처방을 알아낼 수도 있는 일이다.

 

<원문의역>

알되 모르는 것처럼 하는 것은 위이고,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것은 병이다. 무릇 병을 병이라고 알면 그것은 병

통이 아니다.

성인에게 병통이 없는 것은 병을 병인 줄 알기 때문이며 이렇게 아는 것은 병이 아니다.

 

<도움말>제 7장은 무지를 터득 하게 하는 장이라고 볼 수 있다. 무지를 아는 것을 부지라고 이해하게 하는 까닭

이다. 두루 통하고 걸림이 없으며 치우침이 없는 앎이어야 탈이 되지 않음을 살피게 하는 장이다.

부지지의 부지는 두루 통하고, 걸림 없이 밝은  앎을 간직하되 과시하지 않음을 뜻한다.

 

상은 명지에서 명을 근본으로 삼는 것을 암시해 준다. 명은 '나를 내가 아는 것'이고 지는 '내 바깥의 사물을 아

는 것'이라고 노자가 밝혀 두었다.

병은 '알아서 탈이고 아는 것이 병이다.'는 속담을 상기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성인 지불병의 불병은 불가의 망기를 연상 시킨다.

마음의 작용을 잊는 것은 불도 이고 분별하는 것은 마구니의 경지이다는 말은 불병을 새겨듣게 한다.

 

 

제72장 모두 함께 삶을 사랑하다

하늘의 뜻을 무서워하는가

벼락을 맞는다. 천벌을 받는다. 이런 말은 이제 실없는 것으로 팽개쳐진다.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고 하면 비웃

고 하늘의 뜻을 말하면 시대 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일축한다. 달에 사람의 발이 놓인 지가 벌써 반세기가 다 되

어 가는 마당에 천벌 따위는 잠꼬대에 불과하다고 일소에 붙인다. 이처럼 현대인은 오만하기 짝이 없게 되었다.

 

하늘을 무서워 하라. 이는 죄를 무서워하라는 말과 같다.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무엇일까. 목숨을 해치는 짓일

것이다. 죄를 두려워하라 함은 곧 목숨을 해롭게 하거나 해치는 짓을 마라 함이다. 그래서 전쟁은 재앙이며 오늘

날의 공해와 같은 것이 재앙이다.

 

인간의 오만이 공해를 낳고 있다.그러한 오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천치와 만물은 오로지 인간을 위하여 있

다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만일 천지는 인간의 것이 아니다고 한 노자의 말을 조금이라도 새겨듣는 세상이라면

지금 처럼 천하가 공해로 몸살을 앓지는 않을 것이다.

 

흙이 썩고 물이 썩고 공기가 썩어 인간이 살 수 없게 된다면 인간의 오만이 저지르는 장난들은 더 할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이다. 땅이 썩어 초목이 못살면 인간도 못사는 것이고, 물이 썩어 물고기가 못살면 인간도 못사

는 것이요.공기가 썩어 날짐승이 못살면 인간도 못사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하늘의 뜻이 무엇인가를 어림

으로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먹고 마시고 싸지 않으면 목숨은 살수가 없다. 무엇이든 목숨이 있는 것이라면 밥을 먹고 물과 바람을 마신 다

음 밥을 똥으로 싸고 물을 오줌으로 누고 안으로 들이쉰 숨을 밖으로 뱉아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는 이치이

다. 이러한 생리는 하늘과 땅을 떠나서 부지 할 수가 없다. 밥과 물은 땅에 있고 빛과 바람은 하늘에 있는 까닭

이다.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천지의 뜻이 무엇인가를 나름대로 헤아려볼 수 있을 것이다.

 

밥과 물과 빛과 바람보다 더 큰 위력이 목숨에게는 없다. 하늘을 두려워하라 함은 바로 이러한 위력은 생명

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다. 이러한 선물을 받고 명을 누리므로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있다고 하는것이다.

어디 인간의 목숨만 천지에 있단 말인가. 인간과 더불어 모든 목숨이 다 그러하다.

 

목숨의 선물을 내린 천지에 감사하라. 이것이 곧 하늘을 두려워하는 마음가짐이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이 되면 도덕의 이웃이 된다. 왜냐하면 목숨을 소중히 하고 사랑할 줄 아는 마음씨를 가슴속

에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인은 갈포옷을 입고 있지만 가슴속에 옥을 품고 있다고 노자가 밝혔다. 바로 그

옥은 만물을 제 목숨처럼 사랑하는 마음씨와 같다.

 

만물을 제 몸처럼 사랑하는 마음은 두려워 한다. 이러한 두려움은 공포가 아니다. 크나큰 은혜를 배신하면 두

려움은 공포가 되고 그 공포는 재앙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불행은 옛사람은 벼락을 맞는다고 했다. 지금 현대

인은 공해의 벼락을 맞고 있는 중이다.

 

왜 인간은 공해의 벼락을 맞고 있는가. 천지의 만물은 인간의 것이므로 인간의 뜻대로 마음껏 사용해도 된다는

물욕의 탓으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천지에서 인간만이 쓰레기를 내놓는 동물이다. 이는 인간의 과욕

이 저지른 뒤탈이다. 그러한 뒤탈은 천지를 얕보는 인간의 오만에서 나오지 않는가. 인간이 이러한 오만을 거

두지 않는 한 인간의 미래는 어둡다. 천지를 소모품처럼 착각하는 인간은 노자의 다음과 같은 말을 다시 새겨들

어야 한다.

 

사람이 죄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커다란 재앙을 만난다. 재앙을 맞지 않으려면 사는 곳을 얕보지 마라. 그리고 삶

을 싫어하지 마라. 그러면 무엇하나 싫어하는 것이 없으므로 성인은 자기를 알되 과시하지 않으며 ,자기를 사랑

하되 대접 받기를 바라지 않는다.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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