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P142~

다림영 2008. 8. 1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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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를 걸면 험을 잡아 트집을 걸게 되지만 서로 어울리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어 좋은 일을 두 배로

늘리고 궂은 일은 반으로 줄인다. 백지장도 서로 맞들면 가볍다고 하지 않는가!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고 하지 않는가! 서로 돕고 보살피면 쉽게 이루어진다.

세사람만 모여도 그 중에 선생이 있다고 한다. 선생을 하겠다고 자청하는 것 보다 서로 제자가 되겠다고

하면 시비를 걸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서로 선생을 하겠다고 하면 그 셋은 갈라서야 한다. 공자는사람은

서로 더불어 살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공자의 和이다. 그러나 노자는 만물이 서로 어울려 살아

야 한다고 했다.ㅇ ㅣ것이 노자의 和이다. 그리고 장자는 걸림없이 자유롭게 살라고 했다. 이것은 장자

의 自遊이다.

 

불감위선 不敢爲先이란 무엇인가?

만물이 서로 어울리게하는 것이다.

노자여! 그대는 불감위선을 보물로 지녔으므로 자가선전으로 난장이 된 세파를 쓰다듬어 잠재울 수 있

는 할아버지와 같다.

현대는 노자가 밝힌 세 가지 보물이 없다. 물론 현대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이미 노자가 살았던

시대 역시 그 보물이 없었던 모양이다. 만일 목숨을 사랑하는 마음과 물자를 소중히 하는 마음과 자기 비하의 마음이 있었더라면 구태여 노자가 그것들을 보물이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래 흔한 것은

보물이 될 수 가 없다.

 

목숨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고 용맹을 앞세우면 만용이다. 인간이 저질러 대는 전쟁이야 말로 최대의

만용이 아닌가!

물질을 소중히 하는 마음을 버리고 풍족하기를 바라면 그것은 남용이다. 인간의 허세와 허영이 빚어내

는 거품경제의 남용이야말로 최대의 창진이 아닌가!

물러 설줄 모르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려고만 하므로 서로 다투게 되어 목숨을 잃고 만다. 싸움에는

영원한 승자란 없다고 하지 않은가!

 

가짜를 보석이라고 고집하지 마라.

목숨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용맹을 과시하지 마라. 적을 만들 뿐이다. 물질을 소중히 하는 마음이 없

는 풍요를 누리지 마라. 결국 궁해질 뿐이다. 자기 비하를 모르고 자기 선전만 일삼지 마라. 허풍선이가

될 뿐이다.

대결하지 않고 서로 어울리고 싶으면 노자의 자를 빌려라.

궁하지 않고  부족함이 없게 살고 싶다면 노자의 검을 빌려라.

듬직한 사람으로 신용있게 살고 싶다면 노자의 불감위선을 본떠라. 노자는 이렇게 우리들에게 하소연

하는 것 같다.

그러자 어느 누가 노자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이려고 할까? 그렇게 하자면 나부터 자가 발전기의 출력을

줄이는 것이 먼저 일뿐, 노자의 삼보를 비웃어서는 안된다.

 

<원문의역>

세상 사람들은 내가 말하는 도가 크다고 하면서 어딘가 모자란 데가 있다고 한다. 무릇 큰 것은 크기 때

문에 모자란 것처럼 보인다. 모자란 것같은 것이 오래 간다. 만일 온전하게 큰 것임을 알 수 있다면 이미

그것은 작은 것이다.

나에게는 세가지 보물이 있다. 나는 그 보물을 지녀 잘 간직한다. 첫째의 보물이 사랑이요. 둘째가 검약

이며, 셋째가 다투어 나서지 않는 것이다.

사랑하므로 용감할 수 있으며, 검약하므로 풍족할 수 있고 다투어 앞서지 않으므로 사물을 좋게 이룩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랑의 마음을 버리고 한사코 용기만을 추구하고, 검약의 마음을 버리고 한사코 풍족하

기만 바라며, 뒤로 물러서기를 버리고 한사코 앞에만 서려고 한다. 그래서 망하고 만다.

그러나 사랑의 마음으로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며, 사랑의 마음으로 하늘의 뜻을 지켜야 한다.

 

<도움말>

제 67장은 난세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먼저 변화해야 함을 살피게 하는 장이다. 노자가 밝

힌 세가지 보물은 황금의 보물이 아니라 마음의 보물이다. 만물을 사랑하고 물질을 소중히 하고 자기를

앞세우려 다투지 않는다면, 세상은 자연스럽게 될 것을 밝혀 주고 있다.

 

불초不肖의 초는 모습을 뜻한다. 모습이 온전치 못한 것이 불초이다. 처지는 것 같고, 비루한 것 같으며

굽실거리는 것 같고. 치졸한 것 같은 것이 불초이다. 도를 인간이 형언하려고 하면 할수록 도는 이지러

진 데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인간이 도를 알 수 없는 까닭이다. 이를 노자는 빗대고 있는 셈이다.

기세야부其細也夫의 세는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을 뜻한다. 인간이 알수 잇는 것은 작은 것이라고 노자는

보았다. 장미는 장미꽃만을 피우고 도 는 온갖 초목에 온갖 꽃을 피우게 한다. 장미는 작고 도는 크다.

慈는 세상만물을 고루 사랑하는 마음이다. 자는 천하를 하나의 가정으로 여기고 인류를 제 몸처럼 여긴

다. 불가의 자비와 같은 경지이다.

 

儉은 세상만물을 소중히 하는 마음이다. 검약하면 허세, 허영, 허욕은 없어진다. 그러면 세상은 바르게

된다.

불감위선 은 겸손하고 신중하면서 사양하는 마음으로 처신하는 것이다. 일에는 앞뒤가 있다. 억지로

앞서서 일을 끌고 가려고 하면 자기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을 부리게 된다. 그러면 일은 제대로 될 수

가 없고 세상은 혼란 스럽게 된다.

사기자차용의 勇은 만욕과 객기. 무모함 등을 말한다.

사기검차광의 廣은 남용과 탕진, 과소비 등을 말한다.

능성기장의 器는 사물, 물질, 문명, 물건 등을 말하고 長은 바람직스럽게 되는 것을 뜻한다.

 

제 68장 덕은 저절로 강성하게 한다

졸장은 덕장을 미워한다.

병영이 들어선 자리에서 가시가 돋고 흉년이 들어 백성이 굶주리게 된다고 노자는 말했다. 세력을 넓

혀 천하를 통일 하겠다고 임금이 야심을 품게 되면 아까운 목숨이 수없이 생죽음을 당하게 된다. 노자

는 이를 괴로워 했다. 노자의 고뇌는 생명을 소중히 하라는 말로 압축된다.

노자는 전란의 생명을 소중히 하라는 말로 압축된다.

 

노자는 전란의 태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던 시대에 살았다. 전란의 시대에 생명을 소중히 하라는 절규

보다 인간의 목숨이 상할 수 없다는 도덕 사상 때문이었다.

노자의 도덕사상은 어떤 것인가?

생명은 도덕의 것이지 의지의 것이 아님을 밝히는 사상이다. 이러한 사상은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노자의 사상은 바로 생명의 존엄성에서 그 근본이 드러난다. 인간의 생명만 소중한 것이 아니

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것이 곧 노자의 도덕 사상이다.

 

목숨을 성명이라고도 한다. 性은 하늘이 내리고 命은 땅이 주는 것을 말한다. 천지가 준 목숨을 어떤 인

간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성명은 밝힌다. 군왕이 전쟁을 도모하는 것은 곧 성명을 어기는

꼴이 되고 만다. 소중한 목숨이 생죽음을 당하는 까닭이다.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인다. 백성들이 아무리 이렇게 말해도 나라는 마치 인간의 목숨이 나라의 수중에

있는 것 처럼 하려고 한다. 노자는 만리장성을 축조한 진시황 따위를 경멸한다.

근대가 강한 나라는 망하게 된다. 왜냐하면 군대의 강한 힘만 믿고 전쟁을 일삼기 때문이다. 이것이 노

자의 주장이다. 나라를 강하게 하고 튼튼하게 하는 것은 백성의 배를 부르게 하고 백성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데 있다고 노자는 주장한다.

 

진시황 을 생각해 보라. 칭기즈칸을 생각해 보라. 히틀러를 생각해 보라. 군대의 힘을 믿고 전쟁을 일삼

다가 그 전쟁으로 망해 버리지 않았던가! 그 러나 인간의 역사는 덕을 믿지 않고 힘을 믿으려고 한다.

이러한 역사는 군웅들에 의해서 점철 되엇고 군웅의 야먕과 야심은 평화롭게 살고 싶어하는 백성의 꿈

을 앗아 버리곤 했다. 백성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군웅이 되고 싶어하는 치자가 전쟁을 일으킨

다.

 

한나라의 통치자가 전쟁을 일으키면 상대국의 통치자도 맞붙어 싸워야 한다. 한나라의 통치자가 전쟁을

일으키면 상대국의 통치자도 맞붙어 싸워야 한다. 그래서 아무리 전쟁을 하지 말자고 해도 전쟁은 도처

에서 일어나게 마련이다. 전쟁의 와중에서 목숨을 소중하게 보호하자면 무사의 손에 달려 있다. 무사도

하나 같지 않다.  덕장도 있고, 지장도 있으며 용장도 있는 가 하면 졸장도 있다.

 

전쟁이 터지면 오직 덕장만이 병사의 목숨을 소중하게 할 줄 안다.  용장은 병사의 목숨을 쏟아부어 승

리할 수 있는 꾀를 찾아내려 하며, 졸장은 병사의 목숨을 칼날 앞의 풀잎처럼 쓰러지게 만 하고 패망을

자초하게 된다. 그러므로 전쟁이 인간의 역사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덕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덕장은 어떤 무사인가? 이에 대하여 노자는 다음처럼 밝힌다.

 

훌륭한 무사는 무력을 믿지 않고, 전쟁을 잘 치르는 자는 노기를 품지 않으며, 적을 잘 물리쳐 승리를

더둔 자는 과시하지 않으며, 사람을 잘 쓰는 자는 남의 밑으로 들어간다. 이러한 것들을 다투지 않는

덕이라고도 하고, 사람을 쓰는 힘이라고도 하며,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며 옛부터 있는 극치라고

한다.

 

전쟁이 나면 충무공 같은 무인은 여러 갈래의 말을 듣게 마련이다. 왜군의 장수들은 충무공을 지장으로

무서워 했다. 명나라 수군의 장수였던 진린은 충무공을 용장으로 존경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충무공을

덕장으로 모셨다.  그렇지만 충무공이 왜 백의 종군하게 되었던가? 궁궐 안의 소인배의 주둥이에서 쏟

아지는 음해 탓이었다.

 

침략을 당하면 적을 물리치는 것이 제일 급하다. 그러나 소인배의 치자는 전쟁이 끝난 다음의 제 몫만

챙기려고 한다. 그런 못난 짓들이 충무공을 죄인으로 만들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명장을 졸장이라고 음해했던 간신들의 거짓말을 믿었던 선조는 바보같은 임금과 다를 바가 없었다.

충무공이 떠난뒤 조선 수군의 해전은 패전만 거듭하게 되자 다시 충무공을 장수로 앉혔다. 그러자 피

난갔던 백성들이 충무공을 믿고 모여 들었다.  임진 왜란 때 남해의 백성은 나라를 믿는 것이 아니라

충무공을 믿었던 셈이다.

 

지금도 한려수도에 가면 충무공은 해신으로 추앙되고 있다.  그만 큼 남해 바닷가 백성들은 충무공을 잊

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백성은 졸장만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용장도 싫어한다. 승전

의 대가로 목숨을 남용하는 까닭이다. 지장도 무서워 한다. 지장 역시 승전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성은 덕장을 사랑한다 . 왜냐하면 덕장은 승전이전에 먼저 백성의 목숨을 소중히 지켜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왜 충무공은 남해 부근 어부의 후손들이 신앙하는 신이 되었는가? 충무공이 덕장이었다는 증거인 셈이

고, 노자의 말을 빌리면 配天의 깊은 섭리를 따랐던 무인이었다고 생각된다. 충무공에게 나라 사랑은 곧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배천의 현실적인 실천이 아닌가!

 

불무不武란 무엇인가?

그것은 총칼을 믿지 않고 사람을 믿는 것이며, 힘으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덕으로 보살피는 것이다.

힘의 손에 들린 칼은 무섭고 덕의 손에 들린 칼은 든든하다. 그래서 무력은 백성을 겁나게 하지만 불무

는 백성을 안심하게 한다.

불노 不怒란 무엇인가?

성급하지 않고 조금하지 않고, 조바심이 없는 마음은 신중하다. 신중한 마음이 신중한 행동으로 이어지

는 것이 곧 불노이다. 성급한 마음은 앞뒤를 분간 못하며 조급한 마음은 처음과 끝을 분간치 못하며 조

바심은 무모한 짓인 줄 모르고 일을 망친다.  그러나 신중한 마음은 사태의 전후를 살피고 시종을 따져

미리 후환을 없앤다.  불노는 후환을 사전에 짚어낼 수 있는 신중함과 같다.

불여不與란 무엇인가?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고 짓는 개는 물지 못한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메뚜기 앞에서 힘을 과시하는 사

마귀는 까치의 밥이 된다. 과시하지 않고 허세를 부리지 않으면 그것이 곧 불여이다. 항우는 태산을

뽑을 수 있다는 힘을 과시하다 패하지 않았던가!

 

위지하 爲之下란 무엇인가?

남의 입장으로 돌아가 생각하는 것이나 남의 말을 새겨듣는 것과 같은 것이 위지하 이다. 독불장군은

언제 어디서나 주변의사람을 잃게 마련이다. 내 의견을 앞세우고 남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경시하면

스스로 아래가 되는 것 을 모르게 된다. 독불장군은 사람을 억지로 부리려들지만 위지하는 저절로 사람

을 모여들게 하여 울력을 얻는다.

 

부쟁不爭이란 무엇인가?

사람의 힘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 인력은 어울리면 강이고 흩어지면 취이다. 脆의 힘은 아무리 거세도

조각나고 부서지는 것이고 강의 힘은 아무리 연약해 보여도 끈끈하고 질기다. 재물을 보고 모여든 무리

는 취약한 것이고 마음으로 뭉쳐진 무리는 강성한 것이다.

 

강성한 힘으로 백성을 보살피고 든든하게 하여 튼튼하게 한다면 적이 넘볼수 없게 된다. 이러한 것을 부

쟁의 덕이라고 한다. 덕장은 백성의 강성한 힘을 믿지 군왕의 세력을 믿지 않는다.

 

세력은 바깥의 힘이지만 덕력은 안에서 나오는 힘이다. 남을 이기려는 힘은 역이고 자기를 이겨내는 힘

은 강이라고 노자가 이미 밝혔다.  무는 남을 이기려고 하는 힘이지만 불무는 먼저 자기를 이겨내는 힘

을 지니고 있으므로 최강이 된다.  이처럼 인간의 무리를 최강의 힘으로 뭉치게 하는 것이 곧 부쟁의 덕

인 셈이다.

부쟁의 덕은 무엇보다 목숨을 사랑하는 힘이므로 하늘의 뜻을 어기지 않고 순응을 배천이라고 노자는

말한 셈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하늘이 어디 있느냐고 비웃는다. 하늘을 따른다는 것은 백성의 뜻을 따

른다는 것이다.요즘말로 하면 국민이나 시민의 뜻을 따른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배천의 참뜻을 비웃

을 수 있는가? 없다.

 

<원문의역>

훌륭한 무사는 무력을 믿지 않고, 전쟁을  잘 치르는 자는 노기를 품지 않으며 적을 잘 물리쳐 승리를 거

둔자는 과시하지 않으며, 사람을 잘 쓰는 자는 남의 밑으로 들어간다.

이러한 것들을 다투지 않는 덕이라고도 하고, 사람을 쓰는 힘이라고도 하며,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것

이며 옛부터 있는 극치라고 한다.

 

<도움말>

제 68장 은 용병의 도를 말하고 있다. 목숨을 소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강한 무력이라도 소용이

없다는 말을 깊이 살펴보게 하는 장이다.

善爲士의 사는 武士를 뜻한다.

不武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음을 말한다.

不怒는 경박하지 않고 신중함을 뜻한다.

不與는 허세를 부리지 않는 것이며 과시하지 않음을 말한다. 여기서 여는 드러내 보이는 것으로 통한다.

爲之下는 남의 밑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며 그 속뜻은 남의 생각을 경청한다는 것이 된다.

配天은 자연에 따라 하나됨을 뜻한다. 즉 순리의 순응이다. p152

 

제 69장 兵을 함부로 쓰면 禍가 된다.

 

병의 진퇴란 무엇인가.

노자는 군사력이 막강한 나라는 망하고 만다고 말했다. 군이 막강한데도 왜 망한다고 했을 까? 막강한

군인을 하늘의 뜻에 따라 쓰지 않고 그 힘만을 믿어 못하는 일이 없다고 호언하는 무리가 나라를 뒤흔들

어 버리기 때문이다.

 

하늘의 뜻에 따르는 군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삶을 좋아하고 죽는 것을 싫어하는, 목숨을 소중히 하려는 군이다. 아군의 목숨만 소중하고 적

군의 목숨은 천하다고 여기면 적개심이 샘솟는다. 하늘의 뜻에 따르는 군은 적개심을 멀리한다. 오직 목

숨을 해치려는 무리가 나타날 때만 그 무리를 막으려고 한다. 이것이 참다운 용병이다.

 

그러나 군대가 한 사람의 치욕의 수중에 들어가면 탈이 된다. 군은 세상을 지키는 것이지 다스리는 것

은 아니다. 다스리려는 욕심보다 더 큰 야심도 없으며 야망도 없다. 군이 그러한 야망의 뜻에 따라 사용

되면 치세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그러면 세상은 힘으로 다스리려는 무리들로 들끓게 된다.

 

이 세상에는 잘사는 나라는 군이 정치에 개입하는 일이 없다. 못사는 나라에나 있는 현상이다. 잘사는

나라의 군은 지키는 사명에 철저하고 못사는 나라의 군은 정치를 넘본다. 군대는 힘이 있다. 그 힘을 정

치에 접을 붙이면 정치는 곧 권력이 된다. 힘을 행사하는 정치를 무단이라고 한다.

 

군은 덕을 무서워한다 그러나 군의 힘이 권력이 되면 그 권력은 덕을 무시하려고 한다. 방패막이로 쓰

이는 권력은 피아를 나누어 패를 짓고 적을 만들어야 힘을 발휘한다. 만일 적이 없다면 권력은 쓸모가

없다. 법이 있으면 치세는 족하다. 그러나 권력은 법을 제 시녀로 만들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게 한다. 그래서 권력의 횡포는 항상 법을 불신하게 한다. 그리고 세상을 무법의 천지로 만

들어 무엇이 바른 것이고 무엇이 그른것인가를 분간 할 수 없게 된다. 정사를 분간 못하는 세상을 난세

라고 한다.

 

육군 소장 박정희 소장이 5.16을 거사한 후에 최고회의 의장이 되고  억지로 대통령이 된 다음부터 비

록 배고프던 보릿고개는 없어�지만. 세상은 난세였다. 힘이 있는자는 겁없이 설치고 힘없는자는 숨을

죽이고 살아야만 하는 세상이 되었던 까닭이다.  자유 유보가 헌법에 명시되었던 것은 무엇을 뜻하는

가. 군을 정치의 도구로 사용했던 약점을 보강하려는 시도였었다.

 

군이 세상을 다스리는 주가 되면 안된다. 군은 세상을 안전하게 지키는 객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5.16

때 군은 이 세상의 주인으로 자처했었다. 나라를 지키는 수문장인 군이 나라의 주인 행사를 하게 되면

백성의 보물은 전리품이 되어 노략질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무단 시대는 언제나 정직하질 못했다. 

5.16이후 차관경제 시대의 부패상은 고려말기 무단 정치때의 부패를 연상 시켰다. 정치가 이권에 놀아

나면 이익만 노리고 백성을 혹독하게 한다는 옛말은 틀림이 없다.

 

 

중이 고기맛을 알면 절간에 파리가 없다는 게다. 군이 정치맛을 알면 못하는 일이 없다. 한때, 하면 할수

있다 라는 표어가 관청의 건물 정면에 나붙기도 했다. 전쟁터에서 돌격하는 것처럼 세상을 끌고간다

는 것은 무리를 범하게 되고 그 무리가 다른 무리로 꼬리를 물� ㅚㄴ다. 목표를 향하여 진군하는 것만

이 능사가 아닌 줄을 모른다. 한 뼘 나아갔다면 몇 발 뒤로 물러설줄 모른다. 말하자면 행동만 알지 무

행을 모른다. 무행을 모르는 군은 힘만 앞세우고 덕을 밀쳐내 탈인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병폐는 점

점 깊어져 손톱밑이 아리는 것이 아니라 심장이 곪게 된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노자의 다음과 같은

말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병을 쓰는 것에 관한 말이 있다. 나는 감히 주가 되지 않고 객이 되며, 감히 한 뼘쯤 나아가지 않고 몇 발

뒤로 물러선다. 이는 행동하지 않기를 행하는 것이며 완력을 사용하지 않고 물리치는 것이요. 병을 일

으키지 ㅇ낳고 불잡는 것이고, 적의 저항없이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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