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노자 p31

다림영 2008. 7. 2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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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은 사냥꾼에게만 흉기일 뿐이다. 맹수의 입장에서 보면 제 목숨을 보호하려는 보신용이고 먹을 만큼의 먹이를 얻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므로 농부의 손에 들린 괭이나 같다. 배고

프면먹이를 찾아 나오고 배부르면 바위 구멍에 숨어 잠을 자는 호랑이는 살생을 않는다. 다만 호랑이의 털가죽은 탐하는 인간이 호랑이를 독하게 만든다.  이렇게 생각하면 맹수가 왜 갓난 아이를 할퀴지 않고 독수리가 갓난아이를 채가지 않는다고 말한 노자의 심중을 짚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갓난아이는 마음 그 자체일뿐이고 몸 그 자체일 뿐이다. 마음 그 자체도 자연이요, 몸 그 자체도 자연이다. 더할 것도 없고 덜 것도 없는 것이 생각의 무위가 아닌가! 팔이 안으로 굽즌다는 생각은 곧 인위의 시작이다. 그래서 미운 놈 고운놈이 생겨나고 내 편 네 편이 생겨 시비를 걸고 다툼을 벌인다.'조막손으로 젖통을 꼭 잡은 채 입술로는 젖꼭지를 쪽쪽 빨아 젖을 먹고 있는 갓난아이를 보라. 사는 일 그 자체를 할 뿐 다른 생각이나 다른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노자는 갓난아이를 덕의 덩어리로 보았다.

젖가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곡 잡는 갓난아이의 조막손을 보라. 남녀의 성교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오줌을 쌀 때면 꼿꼿이 서는 갓난아이의 고추를 보라. 그리고 젖을 달라고 아무리 울어도 목이 쉬지 않

는 갓난아이의 목줄기를 보라. 이것을 통해 노자는 덕의 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덕의 힘이란 무엇인가. 정지지와 화지지라고 노자는 밝혀주고 있다.

조화의 힘이 지극한 것이란 무엇일까 생명 그 자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생명 그 자체를 영혼이

라 하기도 하고 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천지는 정려의 집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집의 주인은 누구인가.

노자는 도라고 했다.

 

조화의 어울림이 지극한 것이란 무엇일까. 생존그 자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네 목숨을 내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것보다 더한 어울림은 없다. 내 목숨이 소중한 것처럼 독사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생각을

갖는다면 그보다 더한 어울림의 지극함은 없을 것이다. 서로 어울려 살 뿐 싸울것도 없고 빼앗거나

빼앗길 것도 없으면 천지에 즐겁지 않을 것이란 하나도 없다.

서로 어울려 싸우지 말고 살라. 나만 잘살고 너는 못살아야 한다고 하면 할 수록 서로 살수가 없다. 함께

다같이 어울려 살라. 이것이 함덕지후의 가르침이다.

 

무엇이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인가

불행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행복할 수 없으면서도 행복을 바라는 것이다.

그것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행복은 밖에 있다고 여기는 데서 비롯된다

행복이 있다면 어디에 있는가 내 안에 있다.

불행이 있다면 어디에 있는가 행복을 밖에서 찾는데 있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한다. 등잔 �을 밝게 해보라.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품안에

있다. 그러므로 내 품안을 밝혀라. 그러면 그렇게 바라는 행복은 내 마음을 어떻게 간직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만족할 줄 아는 이가 부자이다 라고 노자가 말한 것은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이

어디에 있는 가를 살펴보게 된다.

누가 불행한 사람인가

행복은 권력이 보장해 준다고 여기는 사람은 불행이다.

명성을 얻으면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불행하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 또한 불행하다.

왜냐하면 생존의 행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그 안이란 것을

잘 모른다.

인간의 안이란 무엇인가. 정신이다.

정이란 무엇인가 . 자연의 짓이다. 밤나무에는 밤을 맺는 힘이 있고 감나무에는 감을 맺는 힘이 있다.

감나무는 밤을 맺는 힘을 바라지도 않고 탐하지도 않는다.

신이란 무엇인가. 자연의 길이다. 지렁이는 물기가 많은 진탕을 집으로 삼고 개미는 물기가 없는 모랫속

을 집으로 삼는다. 목숨을 부지 하게 하는 것은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숨통은 개미이든 지렁이든 다

막혀 있지 않고 트여 있다. 신은 목숨의 숨구멍이나 같다.

인간의 밖이란 무엇인가?물질이다.

물질은 무엇인가. 이익이 되게 하고 힘을 쓰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물질을 익사라고 불러도 된다.

물질로 하여금 이익을 더 많이 내게 하고 쓰게 될 힘을 더 세게 하려는 것을 소유라고 한다.

백원보다 천원이 이익이 더 많고 쓰이는 힘이 더 세사. 그래서 물질은이익을 놓고 다투게 하고 힘을

놓고 투쟁을 하게 한다.

 

정신은 소유되지 않고 물질은 소유된다. 현대인은 소유되지 못하는 것을 멀리하고 소유되는 것을 가까

이 하려고 발버둥친다. 이것이 현대인을 불행하게 하는 근원이다. 물질에 대한 탐욕을 한없이 부리면

서도 행복을 바라는 것을 비행기를 타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정신을 편하게 하는 것을 화기라고 하며 정신을 불편하게 하는 것을 강기라고 한다. 화기는 서로 어울

리게 하는 힘이고 강기는 서로 거북살 스럽게 하는 힘이다. 왜 사람은 서로 다투고 싸우는가.

저마다 부리는 강기 탓이다.

강기는 소유의 탐욕을 부리게 한다. 그러한 까닭에 사람들은 서로 어울리지 못한다. 이는 저마다의 몫

을 소유하려는 욕심 때문이다. 소유의 욕심은 마음을 사려고 한다. 풀욕 탓으로 마음을 팔아 버리고

사는 것이 익생이요. 심사이다.

 

재물이 많으면 많을 수록 잘 사는 것이라고 하면 그것이 곧 익생이다.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많이 벌고 이익을 많이 남기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것이 곧 심사이다. 이러한 심사에서 벗어나면 허심

이나 무심이다.

 

마음싸움으로 날을 보낸다고 하는 것은 마음을 부리는 것의 불길이다. 마음은 본래 다 타버린 재처럼

될 수가 있다고 한것은 허심의 모습이다.  화는 마음을 허심의 모습으로 이끌고 강기는 마음을 심사로

몰아친다.

화기를 아는 것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변덕을 화기는 부리지 않는 까닭이다.

이익이야 손해냐를 두고 저울질 하지 않으므로, 그 마음속은 항상 욕심의 파도가 변덕을 부리지

않으므로 그 마음속은 항상 욕심의 파도가 변덕을 부리지 않으므로 고요하고밝고 맑은 것이다 .

명이란 마음속의 때를 쓸어내는 빗자루와 같다고 여기면 될 것이다.

어울림을 아는 것은 도를 아는 것이나 같다. 도는 변함이 없으므로 상이라고 한다. 왜 도를 상이라고 할까. 도는 자연의 정신을 낳는 어머니요, 만물을 하나로 끌어안은 품안인 까닭인다. 열손가락을 깨물어

아프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엄지를 소중히 여기고 검지를 미워 할 수 없다. 이러한 마음을

알면 곧 상명과 같다.

그러나 익생과 심사는 항상 변덕스럽다. 정신에 물욕의 너울이 일렁이며 욕심의 불길이 타올라 짙은

연기를 뿜어 내다. 맑을 수가 없고 어둡기만 하다. 이익이 나면 기쁘다고 날뛰고 손해가 나면 죽일 듯이 험한 눈길을 보낸다.  그리고 별의 별 수를 써서 이익을 내고 겉모습을 찬란하게 하려고 인생을 치장

하려고 한다. 겉치장으로 눈부시게 하는 것을 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보다 더 상스럽게 하려고 마음을

태우고 졸이고 애를 쓰는 것을 강이라고 한다.

풀꽃 반자 하나로 사랑의 정표로 삼고 만족하는 남녀는 화기로 맺은 부부가 되는 것이나 같다. 화기의 부부로 살면 행복할 것이요 강기의 부부로 살면 어느날 이혼할지 모른다. 익생이면 살고 그렇지 못하면

서로 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익생이란 무엇인가. 몸을 기준으로 사는 인생이다. 몸보신이란 것이 익생이다. 몸이란 젊다가 늙는것

이다. 정신이 나간 몸이란 물질이다. 한번 성하면 한번 쇠하는 것이 몸이요. 물이다. 본래 다다익선

이란 없다. 그것은 허무맹랑한 인간의 욕심일 뿐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변덕스러운 물욕에 놀아나지 말

고 변함없는 도를 생존의 길로 삼아달라고 다음처럼 말한 것이다.

어울림을 아는 것을 상이라 하고, 변함없음을 아는 것을 명이라 한다. 그러나 사는 것만을 위하는 것을

상이라 하고, 마음이 기운을 억지로 부리는 것을 강이라 한다.

 

뱀사람이란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는그 별명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는 몸보신에는 뱀처럼 좋

은 것이 없다고 단언하며 살았다.

그는 뱀을 달여서 탕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잇는 뱀을 껍질만 벗겨 회로 쳐서 먹었다. 생으로

먹지 왜 삶아 먹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몸에서는 자주 기생충이 꿈틀거리며 나왔다. 뱀속에 있던

기생충알이 그의 몸속에서 부화해 버러지가 되었던 것이다.

감기나 잔병 따위를 모르고 산다고 큰소리를 쳤던 그가 갑자기 정신을 잃어 입원했다. 버러지 한마리

가 뇌속의 골을 쑤시고 들어갔다는 진단 을 받은 것이다.

머리에서 버러지는 끄집어 냈지만 그는 멍청한 인간으로 탈바꿈되어 퇴원했다. 그는 넋나간 천치처럼

멍하니 눈만 뜨고 사는 살덩이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몇년을 버티다가 그는 결국 몸이 쇠락해 죽어

버렸다.

강기는 철봉에 매달려 있는 손아귀의 힘이나 같다. 매달려 있는 것은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매달리지

않으면 떨어질 걱정은 없다. 몸보신하는 것처럼 사는 것은 강기를 부리게 된다. 깡다구로 산다는 사람

보다 더 바보는 없다.

밖에서 얻는 힘이 곧 상이다. 그러나 자기의 안을 살펴서 자연스럽게 아는 것이 명이다. 상은 돋보이게 하려고 억지를 부리고 명은 있는 그대로를 만족한다. 있는 그대로를 만족하면 그것이 곧 자연이요,

무위이다.

자연이나 무위를 어떻게 헤아리면 될까. 어울림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젊음을 기뻐하고

늙음을 슬퍼할 것은 없다. 몸이 젊고 늙는 것이지 갓난 아이의 마음처럼 살고 있다는 즐거움을 누린다면

억지로 익생하자고 강짜를 부릴 것은 없다. 이 얼마나 만족스러운 마음인가.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은 변

덕을 모른다. 변덕을 모르면 변함없는  도의 이웃 사촌은 될 수 있는 셈이다.

현대인이여. 잠깐이라도 익생의 손익계산서를 버리고 마음속을 좀 편안하게 씻어낼 수 없는가. 행복은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는 이를 모르고 강기를 부리고 인생을 생뱀인 것처럼 회로 쳐서 먹으려고 하므로

불행의 기생충에 감염되어 생존의 현실을 암담한 병동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무엇으로 그 병동

을 밝게 비출수 있을까. 노자는 화기라고 말하고 있다.

<원문의역>

품은 덕의 두터움은 갓난아이와 같다.

독이 있는 벌레는 갓난 아이를 쏘지 않으며 사나운 짐승도 갓난아이를 할 퀴지 않고, 매서운 새도 갓난

아이를 채가지 않는다.

쥐는 뼈대는 약하고 근육은 부드럽지만 힘은 굳세다. 남녀의 성교를 모르지만 갓난아이의 고추가 서는

것은 조화의 힘이 지극한 것이며, 온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 것은 조화의 어울림이 지극한 것이다.

어울림을 아는 것을 상이라 하고, 변함없음을 아는 것을 명이라 한다. 그것을 강이라고 한다. 사물은 성하다가 쇠한다. 이것은 변함없는 도가 아니다. 도가 아닌 것은 오래 갈 수가 없다.

<도움말>

제 55장은 덕을 품는것을 깊이 생각하게 하는 장이다. 덕은 곤혹스런 일을 없애며 해가 되는 것을 막아준다. 덕에는 우군도 없고 적군도 없다. 덕은 화기를 낳는다. 화기란 무엇일까. 제 55장은 갓난아이를 비

유해 화기를 헤아리게 한다.

함덕지후의 함은 품어 간직해 베푸는 것을 뜻하고 후는 덕을 베품에 도탑고 넉넉함을 뜻한다.

적자는 갓난아이를 뜻하며 그 갓난아이의 심중을 생각하게 한다. 갓난 아이의 심중에는 칠정오욕이

없어 텅 비고 깨끗하다.

독충불석의 독충은 독침을 가진 벌 같은 벌레이며 석은 벌레가 독침으로 쏘는 것을 뜻한다.

확조불박의 확조는 독수리 같은 새이며 박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나꿔채가는 것을 뜻한다.

악고는 손아귀의 잡는 힘이 강함을 뜻한다.

최작의 최는 어린아이의 성기이며 작은 성기가 꼿꼿하게 서 있는 동작을 뜻한다.

정지지의 정은 자연의 짓이며 그 짓을 정기라고 하며 생명을 이루는 근원을 뜻한다.

화는 더할 바 없이 순수하고 더할 바 없이 온전하며 더할 바 없이 부드럽고 더할 바 없이 순하여 서로

어울릴 뿐임을 뜻한다.  화는 어울림이요. 그 기운이다. 화기를 가장 큰 어울림의 기라고 한다. 화기

는 천지에 있는 음약의 정기가 되고 생물에 있는 원기가 된다고 보는 것이 동양의 조화이며 창조론이요.

생성론이다.

상은 무위하고 무욕하므로 변함이 없고 변덕이 없는 것을 뜻한다. 도덕의 모습이나 같다.

명은 마음 그 자체의 모습을 말한다. 칠정오욕을 벗어나 있으므로 밝고 맑은 마음 그 자체를 뜻한다.

마음이 도덕을 닮은 모습이다.

익생은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을 탐하여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삶을 말한다.도덕을 멀리하는 삶을 뜻한다.

상은 밖에서 얻어지는 힘을 말한다. 상기라는 것은 권력, 부귀, 명예 따위에서 오는 위세의 힘을 뜻한다.

상기는 오래 가지 못한다. 권불심년이라고 하지 않는가.

심사 기왈강 의 심사는 마음을 억지로 부리는 것을 뜻한다. 욕망과 탐욕, 질시와 질투등은 심사기에 속

한다. 강기는 무위의 강을 버리고 인위의 강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강기를 욕이라고 여기면 된다.

무위의 강은 나를 이겨내는 힘이지만 인위의 강은 나를 망하게 하는 힘이다. 강짜를 부리면 망한다고 하

지 않는가 . 물장즉노의 장은 젊고 성한 것이며 노는 늙고 쇠한 것을 뜻한다.

 

제 56장 알면 알수록 입은 무거워 진다.

앵무새는 노리개일 뿐이다.

얕은 물은 소리를 내고 깊은 물은 조용하다.

빈 수레는 요란하고 영근이상은 고개를 숙인다.

말이 씨가 되고 세치 혀가 탈이다.

왜 이런 속담들이 생겼을 까?  인간의 세상에는 알아서 탈이고 몰라서 약이 되는 경우가 말을 통해 빚

어지는 까닭이다.

완전히 알기 전에는 입을 열지 말라. 그러면 시비는 없어질 것이고 시비가 없어지면 세상은 조용할 것

이다. 다툼도 하나의 시비요, 싸움도 하나의 시비이며 전쟁도 하나의 시비이다.

시비는 경쟁을 낳고 경쟁은 승패로 갈린다. 이긴자는 기세를 떨치고 진자는 분을 삼킨다. 가시방석에

앉아 쓴 쓸개를 할ㄷ는것보다 더 한살기는 없다. 승패는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는 법. 오늘 황금의 자리에 앉았다고 환호할 것은 없다. 내일이면 가시방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승패에 판돈을

걸지 마라.

말이란 물이 바람을 만나는 것이나 같다. 말을 좇아 빚어지는 행동은 득실이 있게 마련이다. 칭찬과험

담은 동전의 앞뒤나 같다. 빛좋은 헛말은 남을 속이는 것이고 쑤근 거리는 입질은 자기를 더럽히는 것

이다. 무엇ㅇ르 좀 안다고 칼날을 보일 것은 없다.무엇을 좀 모른다고 숫돌에 무딘 칼을 갈 것도 없다.

서서 남보다 돋보이게 할 것도 없고 앉아서도 남도다 으젓하다고 오만을 떨지마라. 마음속에 소 잡

는 칼이 있다면 이미 마음은 피 냄새를 맡은 도살장이나 같다. 지성의 싸움은 도살장의 피냄새를 뿌리

게 된다. 서로 옳다고 주장하는 인간들의 토론장을 보라.

스스로 잘낫다고 나서지 마라. 천하에 절색이란 양귀비가 연못가에 서면 연못에서 노닐던 잉어들은 무

서워 몸을 감춘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하지 않는가! 야심을 감추고 갈 것이아니라 텅 비우고 가라

그러면 그득하게 채우고 돌아온다. 벗을 얻는 까닭이다.

어울리되 한패거리가 되어 떠들지 마라. 이것은 장자의 말이다. 군자는 어울리되 패를 짖지 않고 소인배

는 패를 짖되 어울릴 줄 모른다. 이것은 공자의 말이다. 왜 그러한가? 이에 대한 대답은 노자가 밝혀준다.

부드럽고 연약한 것이 굳고 강한 것을 이긴다. 그러면 된다 안된다. 이거다 저거다.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 선하다 악하다 등의 분별이나 차별은 없어진다. 권력을 두고 다툴 것인가

명예를 두고 시샘할 것인가

부귀를 두고 싸움할 것인가.

이렇게 물어보면 볼수록 마음은 타고 조바심을 부리게 된다. 그러나 가을 하늘에 날리는 짐승의 털끝이

가장  크고 태산이 가장 작은 줄을 아는가. 천지는 손가락 끝에 불과하고 만물은 달리는 한마리의 말이나 같다고 털어 버린 장자의 말을 듣는 순간 나를 취하면 더럽고 나를 버리면 깨끗하다는 마조선사의

말도 들린다. p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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